[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 경제 실정(失政)에 대한 대안으로 ‘민부론(民富論)’을 발표했다. 민부론이란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國富論)’을 변형해 만든 단어로, 국가보다 개인이 전면에 나서 경제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민부론의 기조(基調)가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 경제 정책의 재판(再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약으로나마 ‘경제민주화’를 말했던 박근혜 정부보다도 뒤로 돌아가, 신자유주의적 정책 모델을 그대로 답습(踏襲)했다는 지적이다.
시장중심 경제체제…이명박 정부 정책과 흡사
실제로 한국당이 공개한 민부론의 골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유사한 데가 적지 않다. 한국당은 민부론을 통해 △소득주도성장 폐기 △규제개혁 △조세개혁 △노동개혁 △공공부문 민영화 △탈원전 정책 폐기 △기업 경영권 보장 △복지시스템 재설계 등 총 20개의 과제를 제시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흡사하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3월 19일 ‘제35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불필요한 규제는 주저 없이 풀 것”이라며 “공장 하나 짓는 데 3~4년씩 걸려서는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앞으로는 6개월 내에 공장을 지을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공언처럼, 그는 임기 내내 규제개혁을 제1과제로 내세웠다. 2011년에는 규제 개혁에 대한 정책자료집과 사례집을 발간했을 정도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정부 조직의 슬림(slim)화와 효율화를 주창하면서 공공부문 몸집 줄이기에 나서기도 했다. 이를 위해 공무원 수를 동결하고,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는 등 공공기관에 대해서도 메스를 들이댔다.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쟁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민부론과 맥락을 같이 하는 대목이다.
조세개혁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노태우 정부 34%, 김영삼 정부 28%, 김대중 정부 27%, 노무현 정부 25%로 계속 인하해오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2%까지 낮췄다. 그밖에도 소득세율과 종부세율을 인하하는 등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조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부론 역시 ‘법인세는 기업의 재투자와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에 매우 중요한 변수인 만큼 글로벌 기준과 시장 여건을 감안해 조정한다’는 목표를 명시했다.
그밖에도 민부론에는 지배구조, 차등의결권, 의결정족수 등을 자율적으로 규율하도록 해 기업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바 있는 병원 영리화 방안도 담겼다. 기업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해 경쟁을 촉진시키고, 그를 통한 경제 발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민부론과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랜들리’는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노동 정책은 오히려 더 친기업적 경향 있어
오히려 이명박 정부 때보다 친(親) 기업 기조가 강화된 측면도 있다. 노동부문이 대표적이다. 이 전 대통령은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민부론에는 △파업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삭제 등 노동조합의 힘을 빼기 위한 정책 과제가 다수 포함됐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조합 파업 시 대체근로자를 채용하는 데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사용자가 자유롭게 대체 인력을 채용할 수 있게 하면 파업을 결행하기도 어렵거니와,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는 동력도 사라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민부론은 대체근로 허용을 정책 과제 중 하나로 명시함으로써, 노조의 파업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것도 노조 세력 약화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부당노동행위란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에 대한 사용자의 방해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현재 우리 법은 사용자가 노조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고 노조와의 협상을 거부하는 행위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이러한 부당노동행위 처벌 조항이 사라지면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개입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김태훈 노무사는 24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부당노동행위 처벌 조항이 사라지면 노조가 무력화되고 어용 노조가 등장하더라도 막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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