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2%대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문재인 정부가 건설투자를 통한 경기부양 카드를 꺼냈다. 업계에서는 민간투자 활성화, 부동산시장 유동성 관리 등이 병행돼야 경기부양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민간 활력을 높이는 데 건설투자 역할이 크다. 필요한 건설투자는 확대할 것이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교육, 복지, 문화, 인프라 구축과 노후 SOC 개선 등 생활 SOC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성장 전망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등 경기침체가 심화되자 이를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건설투자를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을 살펴보면 지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前)분기 대비 0.4% 성장하는 데에 그쳤다. 이로써 연간 경제성장률 2%대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분기에 최소 0.97%는 나와야 2%를 간신히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IMF도 최근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0%로 수정했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위기일로라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건설투자를 꺼낸 건 필연적이라는 평가다. 앞선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건설투자는 건물과 토목 건설에서 모두 감소해 5.2% 줄었다. 업종별로 살펴봐도 제조업 2.1%, 농림어업 1.4%, 서비스업 0.4%가 성장한 반면, 건설업은 4.0% 주저앉았다. 문재인표 건설투자 경기부양책을 합리적인 대책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 상반기 총 104조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2020년 정부 예산안에서 SOC 예산을 22조3000억 원으로 확대 편성했다. 경기침체에 따른 재정확대 영향도 있지만 SOC 예산 증가율은 그중에서도 높은 편(전체 예산 분야 중 증가율 4위 12.9%)이다. 단순히 건설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를 토대로 전체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경제성장률 2%대를 어떻게든 고수하기 위해 GDP에 직접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건설업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 박철한 부연구위원은 건설동향브리핑에서 "인프라 투자는 정부가 침체기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정책 수단이다. 경제력 파급력이 높고 민간투자를 유인하는 효과도 크다"며 "건설산업은 고용 규모, 투자액, 기업활동 부가가치 등 여러 측면에서 GDP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1인당 소득 4만 달러 미만 국가는 정부 고정자본 투자가 민간투자를 늘리는 유인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건설투자 경기부양책이 민간투자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데에 있다. 전체 건설투자 중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으로, 재정 확대로만 전체 경기를 부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부양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민간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일선현장에서는 민간투자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2013년 7월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신규사업 또는 재정으로 추진 예정인 사업의 경우 민간투자사업 추진 가능성을 우선 검토하도록 했다. 그러나 수익형 민자사업은 2013~2017년 동안 정부고시사업(5건)보다 민간제안사업(26건)이 많고, 임대형 민자사업은 2013년 9건에서 2017년 2건으로 되레 줄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민간투자기본계획에서 '위험분담형 민간투자'(BTO-rs) 기본계획을 변경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민간투자기본계획에 '실시협약 체결 시 운영권 설정기간 중 재정 지원금 총 합계액은 환수액 총 합계액을 초과할 수 없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쉽게 해석하면 재정 지원 한도를 설정해 정부의 실질적 부담을 줄인다는 뜻이다. 위험분담에 소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정부의 자세는 전체 민간투자 활성화를 저해할 여지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건산연 박용석 연구위원은 "민자사업은 추진 절차가 복잡하고 관련 규정이 어려워 주무관청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민자사업 업무를 기피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며 "수립된 정책의 실효성있는 추진을 위해서는 범정부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시장 친화적인 민간투자 활성화 정책의 발굴과 수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재인표 건설투자 경기부양책이 성공하기 위한 또 다른 필수조건은 부동산시장 유동성 관리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수신성 자금(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금) 규모는 약 990조 원에 이른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다는 의미다. 시중에 돈이 없어서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0.25%p 추가로 인하했다. 유동성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방대한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KB부동산리브온에 따르면 이달 서울 지역 주택매매가격 증감률은 0.37%를 기록했다. 지난 4월 이후 6개월 연속 상승세다. 수도권 지역도 지난 7월부터 이달까지 4개월 연속 0.1%대 증감률(7월 0.01%, 8월 0.19%, 9월 0.16%, 10월 0.19%)을 보이고 있다. 또한 5개 광역시 지역은 지난해 12월(0.16%) 이후 처음으로 0.1%대(0.12%)를 회복했으며, 그밖에 지방 지역도 매매가 감소폭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집을 안정적인 투자처로 인식한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부동산시장에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 소비 등에 들어가 경기부양에 활용돼야 할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에 매몰되면서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염려되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섣부르게 건설투자를 통한 경기부양에 나선다면 유동성의 부동산시장 유입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건설투자를 위한 카드로 내세운 생활SOC, 도시재생 뉴딜사업, 광역교통망 확대 등은 모두 인근 집값 상승폭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정부는 건설투자를 통해 GDP를 어떻게든 2%대로 맞추겠다는 심산 같은데 이게 부동산시장 수요·공급자들한테는 잘못된 시그널(신호)을 줄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돈맥경화 현상이 더욱 심화돼 경기 불투명성이 더 커진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에 몰린 상태에서 집값 거품이 꺼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가 경제성장률 2%대를 지키기 위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은 이 같은 경고에 더 힘을 싣는다. 실제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6일 기준금리 인하 방침을 밝히면서 "만약 저금리가 장기화한다면 부동산이나 위험자산으로의 자금 유입이 확대될 가능성이 잠재한 건 사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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