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 갈 곳이 없다②> 이렇게 살아야 하나…
노인들 설 곳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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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 갈 곳이 없다②> 이렇게 살아야 하나…
노인들 설 곳은 어디에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11.16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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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젊은이들이 활개 치는 종로의 거리에 갈 곳 없는 노인들의 공간이 높은 담벼락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탑골공원 안은 노인들의 영역이다. 머리가 희끗하고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부터 아직은 혈기 넘치는 검은 머리의 ‘젊은’ 노인까지. 두런두런 어울리고 혹은 혼자 명상에 잠기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김모(76)할아버지는 벤치에 혼자 앉아 신문 쪼가리를 찬찬히 읽어 내리고 있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한 일간지의 ‘각하’ 관련 칼럼기사다. 오랜 세월 이 보수 신문만 읽어왔다는 할아버지도 현 정부를 비판한 해당 기사에 혀를 끌끌 차신다.

할아버지는 공원에서 읽을 기사 몇 꼭지를 오려 가방 속에 넣고 집을 나섰다. 신문 하나 펼쳐보는 것도 이제 힘에 부쳐 몇 가지만 스크랩을 한다. 한 시간가량 지하철을 타고 이 곳 탑골공원에 도착했다. 할아버지는 무임승차권 덕분에 지하철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중 이 곳, 탑골공원은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응당 모여 있으려니 해 마음이 편하다고.

▲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신애 기자

가깝지 않은 거리의 탑골공원까지 오는 일은 일주일에 두세 번. 이곳에 오지 않는 날은 집 근처 뒷산에 오르거나 동네 슈퍼 앞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눈다. “집에 있으면 안돼. 집에 있으면 누워만 있으니께 자꾸 소일거리라도 만들어 움직여야제.” 그래서인지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발음이 조금 엉성할 뿐 겉모습은 정정하다.

“그래도 여기저기 성치가 않어서…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는 가벼.” 주변에 당신보다 어린 사람들이 명을 다할 때는 가슴이 미어온다. 가까운 동생이 하루아침에 숨을 거두는 것을 보면 세상만사 허무하다고. 본인이 아픈 것도 이러다 끝날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하루하루 생활할 뿐이다.

젊어서는 구두닦이, 막노동,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서른 즈음 서울에 올라와 양장점에 들어갔다. 청소부터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어깨너머로 양장 기술을 배웠고 10년간 배운 기술로 자기 가게도 차렸다. 그러나 기성복이 유행하면서는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이후 줄곧 서울에서 경비원 생활을 했다. “얼마나 했는가, 몰러 한 20년 했나. 그것도 안한지 한참이여. 이제 늙어서 어따 쓴댜. 일 없다고, 처음만 좀 그랬나, 지금은 뭐… 그렇지 뭐…”

할아버지는 남양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할머니와 사별을 하고 혼자 지내면서 자식들이 모아 주는 용돈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각자 살기 바쁜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가 미안해 기초수급도 알아봤지만 자녀들이 소득이 있어 기초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별다른 수입 없이 자식들이 쥐어주는 몇 십 만 원으로 한 달을 쪼개 살아야 한다.

탑골공원이 더 좋은 것은 공원 뒤를 돌아가면 밥 한 그릇 2500원, 3000원 돈에 먹을 수 있다. 한 끼니 값으로 두 번을 해결할 수 있어 매일 지불해야 하는 밥값 부담을 줄여준다. 할아버지는 담벼락 뒤 골목을 가리키며 “그니께 괜찮제. 다른데 가봐야 뭐 먹지도 못혀. 저쪽 가면 해장국이고 곱창이고, 괜찮혀” 하신다.  
 
10년을 가까이 일이 없었을 어르신께 걱정거리를 물었다. 경제적 어려움 혹은 외로움 등을 예상했다. 그렇지만 돌아온 대답은 “걱정하고 자시고 할게 뭐있어.” 불평이 아닌 체념의 답변이다. 돈 없고 갈 곳 없이 수년을 지내야 하는 것도, 충분히 일할 나이의 50, 60대 사람들을 사회가 밀어내는 것도, 가을 뒤에 겨울을 받아들이듯 한다.

현 정부를 놓고 혀를 차지만 그것도 잘 하려니. “이러니 저러니 말하면 뭐혀. 그게 그네들 일이니 알아서들 허겄지. 쓸데없이 따져봐야 더 늙기만혀.” 이제 이들의 자리가 없으니, 무엇을 바꿀 힘이 없다. 말 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 돼버렸다. 그저 그러려니 할 수 밖에.

탑골공원이 문을 닫는 6시가 될 무렵, 해는 기울어 어스레하고 공원 안은 한산해졌다. 할아버지는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이며 젊은이들이 가득한 거리 속으로 향한다. 거리에서 딱 한 사람의 공간을 차지하며 당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할아버지가 얘기했던 공원 뒷골목은 아직 자리를 뜨기 아쉬운 어르신들이 남아 있다. 골목에 줄서 있는 노점상에서 누구는 오뎅을, 누구는 곱창을 집어먹으며 얼큰하게 소주 한 잔 들이킨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들은 서로 웃고 큰 소리로 떠든다. 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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