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지역주의는 강화, 호남 지역주의는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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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지역주의는 강화, 호남 지역주의는 완화"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10.29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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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
국감이 한창이던 지난 20일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된 시간인 오전 10시 30분 조금 전에 원내대표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원내대표가 국감기간 중 과로가 겹쳐 링거를 맞고 누워 있다며 11시로 인터뷰 시간을 늦춰야 한다는 전갈이었다. 11시가 조금 넘어 이 원내대표를 만났다.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반듯했다.

이 원내대표를 만나 제일 먼저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역등권론’이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1987년과 1992년 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외유를 떠났다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본격적으로 정치를 재개하기 1년 전인 지난 1995년 지방선거에서 ‘지역등권론’을 들고 나왔다.
 

▲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세종시는 행정효율성보다 차원이 높은 문제"라고 말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지역등권론이 부각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에서 선전하다 급격히 지지율이 떨어져 낙선한 사례는 유명하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에서는 졌지만 지역주의 극복의 상징적 인물로 급부상하면서 정치적 입지는 오히려 강화됐고 ‘노사모’로 대표되는 견고한 지지층을 결집시켜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지역등권론은 나와 무관

항간에는 지역등권론이 이 원내대표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있어 진위를 확인했다. 그는 “지역등권론과 나는 무관하다”고 간단명료하게 말하며 동국대 황 모 교수의 아이디어인데 이름이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 원내대표가 말한 황 모 교수는  황태현 교수를 지칭하는 것이다. 지역등권론은 1987년에 극에 달했던 지역분할구도를 재차 각 정파가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민주당은 현재도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는 정당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지역 정당’의 원내대표가 지역등권론의 아이디어를 낸 주인공이라면 틀림없이 할 말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지역등권론과 나는 무관하다’는 답변을 듣고 예상을 빗나가고 말았다.

지역등권론이 한국 정치지형에서 지역주의를 고착·강화시키는 부작용을 일으켜 정치문화를 후진적으로 떨어뜨리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이 원내대표는 “그런 비판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역주의는 그(지역등권론)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1차 집단의식인 지연이나 혈연은 정치를 뛰어 넘는 차원으로 깨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주의는 1차 집단의식의 발현, 깨지기 힘들 것

현재까지도 지역주의의 근간이 지속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질문에는 “호남 지역주의는 약화됐지만 영남 지역주의는 오히려 이전에 비해 강화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호남 지역주의가 약화된 원인을 묻자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서울과 수도권의 호남 출신들은 선택의 폭을 넓힌 반면 영남 출신들은 이에 반발해 더욱 공고히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 원내대표는 “‘DJP연대’의 아이디어를 자신이 냈는데 지역등권론과 혼동을 일으킨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발언이었다. 그는 “1996년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가 79석 밖에 얻지 못해 어려움에 처해 있어 DJP연대를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가 DJP연대를 꺼내들자 당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가 정치적으로 같이 갈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고 같은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성씨’뿐이라는 우스갯말들이 돌았다고 전했다.
 
DJP연대 성사과정에서 대외적 창구 역할은 한광옥 전 의원이 맡았지만 실무 작업은 이 원내대표가 주도했다는 말도 했다.
 
세종시는 행정효율성 추구보다 고차원의 문제

이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당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최대 정치 현안 중 하나인 ‘세종시 문제’에 대한 질문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자유선진당의 경우 지역구 의원 전원이 대전, 충남에서 당선됐기 때문에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고수하는 것은 당리 차원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과연 ‘국가 전체 이익을 위해’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지는 의문이 들기도 하다.

단순히 한나라당의 당론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칠 수도 있고 노무현 정권 때 추진했던 정책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수정하면 민주당의 자기부정이 될 수 있어 울며 겨자먹기 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세종시 문제는 지난 10년 동안 수도권 집중완화와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을 위해 추진된 사업”이라는 말로 세종시 원안 추진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행정 비효율성을 근거로 세종시 수정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청와대와 국회는 서울에 둔 채 행정관서만 이전하는 것에 문제의식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한나라당은 언론에는 신중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세종시 원안에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정치현상을 겉으로만 판단하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말한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     © 시사오늘 권희정


이 원내대표는 “행정수도 이전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아 지난 2005년 여야 만장일치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채택된 것”이라며 세종시 원안 추진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 원내대표는 “수도권 집중완화와 지방분권은 행정효율성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행정효율성이 문제된다면 현재 지방에 세워지고 있는 혁신도시도 모두 그만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도시의 지방 건설도 지방분권과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로  그에 수반되는 행정비효율성은 감수해야한다는 설명이다.
 
친노신당 측과는 합당을 위한 접촉 계속 중

친노신당(국민참여신당)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기자가 친노신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독자세력으로 성장한다면 민주당으로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냐고 묻자 이 원내대표는 답변을 거부하고 “정치에 가정은 없으니 그런 식으로 질문하지 말라”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친노 신당 측과 접촉하고 있는지에 대해 “친노신당은 민주당과 합쳐야 하기 때문에 계속 접촉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관련된 질문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 원내대표는 박 전 대표가 최근 TV드라마 주인공 선덕여왕에 비견되는 현상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관심 없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박 전 대표가 대권주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느냐고 하자 “아무 할 말이 없다, 기사에도 그렇게 적어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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