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과 박정희>“박정희는 부정부패의 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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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과 박정희>“박정희는 부정부패의 원조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1.12.2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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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박정희에 대한 오해와 진실Ⅱ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박정희는 깨끗하다고?

민족지라고 자부하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물론, 최고 지성인으로 알려진 언론인들과 교수들까지 박정희 대통령은 깨끗했는데 다른 대통령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글을 쓰는 것을 본다. 그 사람들이 정말 박정희가 가장 깨끗했다고 믿고 쓰는 것인지, 그렇게 장담할 만큼 알아보고 또 믿고 쓰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 사람들의 거짓말과 논설 때문에 실상이 와전되었고, 이러한 허상을 바탕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로 인해 우리나라 정치가 제자리를 못 잡고 방황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들의 거짓발표 때문에 선량한 국민들이 그것을 믿고 박정희가 제일이라고 조성해 현실정치를 하는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박정희는 모든 면에서 부정부패의 원조임에 틀림이 없다

박정희는 청와대 집무실에 대형금고를 설치하고 재벌기업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무수히 받아 ‘통치자금’이라고 이름 붙여 정치인과 예비역 장성 등 여론 형성층 요인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정치판을 오염시켰다.

오죽하면 그들끼리 몰려 사는 동네를 도둑놈 촌이라고 했을까? 박정희가 10·26으로 죽은 후 전두환은 청와대금고에서 그때 돈 8억 원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30년 전 8억 원의 현찰이라면 아마도 지금 돈으로 따지면 수백억 원에 해당하는 많은 액수다. 그가 죽었기 때문에 ‘통치자금이었다’는 말 같지 않은 말을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넘어갔다.
 
박정희의 수제자이고 군대 내의 박정희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의 전두환, 노태우가 그들의 사부격인 박정희의 전철을 이어받아 청와대에서 재벌과 기업인들을 불러들여 무한한 돈을 갈취했다. 박정희로부터 내려오는 관행인 ‘통치자금’이라고 하면서 무슨 정당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나 하는 것처럼 은행도 재벌도 기업도 거덜 내고 저희들과 가까운 사람들끼리 나눠썼다.

돈이 남아 대통령 그만두고 나올 때 수천억 원씩 가지고 나왔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에 걸려 두 사람 다 감옥살이를 하게 됐다. 그들이 그들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돈은 얼마나 될까. 천문학적인 액수일 것이고 받은 그들은 그 향수에 젖어 있지 않을까.

▲ 민주산악회에서의 YS. 좌측으로부터 황명수 김동영 최형우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제공=이성춘

박정희는 금융실명제도 없었을 때이니 얼마를 걷어서 누구에게 얼마를 주었을까. 오래 되기도 했지만 준 사람은 죽어서 말이 없고, 받은 사람은 말 할리 없다. 이제 와서 증거가 없다고 여전히 박정희는 깨끗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이다. 측근중의 측근으로 14년 동안이나 박정희를 도왔던 남덕우 전 총리가 2009년 5월 21일자 동아일보에 ‘봉투정치’라는 글을 썼다. 그중에 중요 부분을 여기 적는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분에 대한 악의적인 풍설이 나돌았다. 심지어 그가 스위스 은행에 몇백만 달러의 비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퍼뜨리는 정치인들을 볼 때 나는 서글프기만 했다. 그분이 정치자금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의 사적 목적을 위해 돈을 거두거나 쓰는 것을 나는 보지도 못했고 들은 적도 없다. 그분의 국장이 끝나자 유족들은 초라한 서울 중구 신당동의 옛집으로 돌아갔고,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축재를 했다는 흔적은 누구도 찾지 못했다.

정치자금을 거둔 것은 박 대통령이나 여당만이 아니라 야당이나 야당 지도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필자가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돼서 국회에 출석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유명한 야당 지도자가 어느 기업을 거명하면서 공무원과 결탁하여 관세를 포탈했다며 장관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즉시 조사하여 비위사실이 드러나면 가차 없이 처벌하겠다고 답변했다.

재무부에 돌아와서 참모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장관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통관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으나 불법은 아니었고 내일이면 해당 기업 관계자가 그분을 찾아가서 손을 쓸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다음 국회에 나갔을 때에는 별말이 없었다. 부정부패를 소리 높게 규탄한 야당 지도자도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편 박 대통령 이후의 두 대통령은 청와대가 직접 정치자금을 걷게 해 퇴임 후 불행한 사법 처리를 받았는데, 박 대통령은 당의 재정위원장을 통해서 정치자금을 거두었고 그 액수와 용도를 엄격히 통제하려 했다는 것은 지나간 칼럼(8회)에서 말한 바와 같다.

박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면 그분이 여러 개의 누런 봉투에 무엇인가 쓰는 것을 나는 가끔 보았다. 그것은 정치인이나 퇴역해 쉬고 있는 군부 장성들에게 돈을 보내는 봉투였다. 내가 그것을 아는 것은 나 자신도 여러 번 그 봉투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장관들이 언론대책과 국회대책으로 비자금을 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필요한 비자금 조달을 위해 장관 참모들이 접대비 계산서를 자기가 잘 아는 기업인에게 돌리는 것을 종종 봤는데 그것이 대가성이 있건 없건 부정 비리의 원류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신문기자들은 고위 공직자들의 독직(瀆職)사건이 빈발하는 마당에 장관이 별 탈 없이 지내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묻는 말이, 당신은 최장수 장관을 지냈는데 왜 스캔들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정직하게 말하면 믿어주겠느냐” 하고 말끝을 흐렸지만, 난들 별 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박 대통령이 보내준 봉투가 나를 구제해 준 것은 사실이다. 국회가 열렸을 때, 외국 출장을 갈 때마다 봉투가 내려왔고 특히 경제기획원에 있을 때에는 예산국회가 열릴 때마다 큰 봉투가 전달됐다.

나는 그것을 예산국장에게 넘겨주고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했다. 나의 참모들은 이런 돈 저런 돈으로 살림을 꾸려 나갔는데 돈이 부족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나도 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 이후의 대통령들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논외로 하고 박 대통령 식 봉투정치가 사라진 것은 민주화적 발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의 봉투정치가 국회가 돌아가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기의 직무수행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이나 야당 지도자나, 그리고 그 밑의 장관이나 모두 별 수가 없어 현실과 타협하고 지낸 셈이다.

가령 그 당시에 한사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치인이 있었다 하자. 만약 그가 국가 경영의 대임을 맡았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개탄했던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를 어떻게 요리해서 국정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말은 옳지만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 가치 있는 목적을 포기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여기에서 도덕가와 경세가(經世家)의 길이 갈리는 것 같다. 하여튼 부정부패를 없애는 것은 아직도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09년 5월21일 동아일보, 「봉투정치」남덕우 전 국무총리

남덕우 전 총리는 박정희가 돈을 거둔 것은 틀림없지만 그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또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죽은 후에 국장을 치루고 그 가족들이 신당동 옛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박정희는 축재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남덕우 전 총리는 박정희의 깨끗함을 장담했다. 남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이 돈 받은 것을 인정하고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박정희가 받고 준 돈은 모두 불법으로 거둬들인 것이다.

돈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합법이 아니면 모두가 사적인 목적을 취함인데, 총리가 변명을 하려면 어느 법 어느 조항에 맞는지를 말해야지 말도 안 되는 괴변으로 얼버무려서야 되겠는가? 박정희는 ‘국가권력을 사유화’했으니 그가 쓴 것은 모두가 반란정권 유지를 위해 사적으로 쓴 것이다. 또 청와대금고에 이름 없는 엄청난 돈이 있었는데 깨끗하다고? 박정희가 돈을 받을 때나 누구에게 돈을 줄 때 남덕우 전 총리와 상의를 했다든지 결재를 맡고 한일이 아닌 한 박정희는 부정축재자일 뿐이다.

남덕우 전 총리의 변명은 박정희에 대한 충성사로 보아 줄 수는 있지만, 다른 어떤 무엇으로도 박정희의 치부를 가릴 수는 없다. 10·26으로 비명에 갔기 때문에 박정희로부터 돈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아 큰 다행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김재규가 얼마나 고마울까? 또 남의 돈으로 자기 이름을 붙여 만든 재단 때문에 심심치 않게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영남대학교,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설립 과정 등은 현직 대통령이 한 일치고는 너무 파렴치의 극치라고 할만하다.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처럼 자신의 사유재산을 출연해 공익사업을 위한 재단설립은 권장하고 박수를 칠 일이지만, 남의 재산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 재단을 설립한다는 것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강탈이라는 의혹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시가(時價)로는 실로 천문학적 액수이니 이보다 더 파렴치한이 어디 있는가. 영남대학교를 박정희가 설립했다고? 대구대 설립자 최준 씨의 장손인 최염 씨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 회견을 자청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구대와 청구대를 강탈한 뒤 영남대를 설립해 사유화했다”고 주장했다.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 씨는 5·16후 부정축재로 수감된 상태로 부일장학회 포기각서를 썼다. 그의 장남인 김영구 씨는 “수갑이 채워진 채 포기각서를 쓴 만큼 명백히 강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헌납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하자가 없기 때문에 정권이 몇 번 바뀌었는데도 지금까지 존속해 왔다”며 “강탈이니 하는 논란이 있어서 자진 헌납해 공익법인으로 만들어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수장학회 소유자산

부산일보주식 100%, 문화방송주식 30%, 경향신문부지 723평. 부산서면 땅 10만평.

문화방송 지분

방송문화진흥원 지분 70%와 정수장학회 지분 30% 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특히 MBC는 자본금이 10억 원에 불과하지만 자산 가치는 최대 10조 원으로 평가받고 있어 이만한 금액을 감당할 주주는 손꼽을 정도다.

육영재단

육영재단은 그들 형제끼리 그 운영을 둘러싸고 심심찮게 싸우는 기사가 나서 국민을 궁금하게 한다. 부정축재를 환수했으면 국고에 넣어야지, 5·16 재단, 그건 무슨 소리고 한 다리건너 박정희의 이름으로 바꾼다는 게 말이 되는지. 헌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하자가 없다고 하는데, 강압수단과 억지로 형식적인 법 규정 절차에 맞추었다고 정상적인 헌납으로 된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 합치면 얼마나 될까? 시가로 10조원도 넘을 것이다. 가히 단군 이래의 최대부정이 아니겠는가? 장물을 경찰관이 슬쩍 제주머니에 넣고 누가 본 사람도 없고 말하지 않는다고 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박정희와 여당은 공공연하게 돈을 거둬들였다

큰 기업들이 정치자금을 바쳐야 정부공사를 따고, 외국현금 차관을 받고, 특별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가히 그들끼리의 특혜공화국이었다. 바치면 먹고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나머지 돈으로 공사를 하니 부실공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적당문화, 부실문화가 뿌리박게 되었다.

돈을 바친 기업에 국가와 국민을 담보로 이자가 싼 외국차관을 알선해주어 외국 빚을 늘려놓았다. 은행돈은 그들의 쌈지 돈이었다. 여당과 그들 실력자들에게 돈만 많이 내면, 담보능력이나 기업의 실력에 상관없이 특별융자를 해주도록 압력을 넣었고, 은행장들은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피땀 흘려 돈을 벌어 은행에 맡긴 선량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정치권의 요구대로 수행했다.

이렇게 부실금융, 부실경제로 무려 32년이나 이어오면서 모순된 경제구조가 굳어져 IMF의 싹을 틔우고 자라서 터지게 되었다. 박정희정권 18년 그 후 전두환 노태우까지 32년이나 이어오는 동안 그들의 악습은 그들도 국민도 당연한 관습으로 자리 잡게 됐다. 유감스럽게도 이 엄청난 부정부패의 뿌리에 대해 언론도, 글을 쓰는 교수들도 올바로 지적하고 반성하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중에는 IMF의 책임은 김영삼이라고 의도적으로 뒤집어씌우는 뻔뻔스러운 사람도 있다.

박정희와 여당은 정부공사, 외국차관, 특별융자 등을 통해 공공연히 의무적으로 정치자금을 갈취하는 형식을 취했다. 야당은 국회감사 등에서 트집을 잡아 조금 비굴하게 음성적으로 걷어 들였다. 남덕우 전 총리는 야당도 돈을 받았으니 공범이 아니냐고 하면서 박정희의 행위를 정당화내지 관행화 하려고 하지만 ‘고양이 쥐 생각’이며 ‘좀도둑을 발견한 강도가 좀도둑을 고발하지 않고 눈감아 주었다’고 생색내는 꼴이다.

불법 무법 부당하게 정권을 빼앗고 이를 덮어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무한한 돈이 필요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야당이 하는 비리를 못 본 척, 안 본 척, 또 은근히 도아주고는 “나도 했지만 너도 했다”고. 이쯤 되면 철면피한 부패에 대한 합리화 치고는 일국의 비리 대통령다운 변명이라고 할만하다.

돈은 거뒀는데 개인 축재는 안했다고. 법치국가의 총리가 더구나 재정을 전문으로 다룬 사람이 불법, 무법으로 대통령이 무한한 돈을 갈취했는데 축재를 안했다고 한다. 축재를 안했으면 깨끗하다고 한다. 이래서 박정희 정권은 총체적 부정부패 공화국인 것을 그들 스스로가 고백하고 있는 꼴이다. 이쯤 되면 단군 이래 최대의 부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그가 가장 깨끗하다고. 한심한 언론, 한심한 교수, 얼빠진 일부국민, 언제쯤 바른 생각, 바른 눈을 가질 런지 가슴이 아프다.

박근혜와 그 관계자들에게 충언을 드린다

합법적으로 헌납을 했다거나, 시효가 지났다거나, 그런 어설픈 변명을 하지 말고 자기들의 노력으로 이룩한 재화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 옳은 처사라고 나는 권하고 싶다. 도덕적 규범은 시효가 없음을 알아야한다.

개인 박정희가 단돈 10원인들 무슨 낯으로 헌납을 받는단 말인가. 부정축재니 정당한 헌납이니 이치에 어긋나는 억지 명분을 붙여 계속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후에 발간한 자서전에 나온 말처럼 ‘장물’을 강탈했다는 꼬리표를 계속 달고 가면서 장학금을 주면 받는 사람도 결코 유쾌할 수가 없고 영원히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좋은 일을 하면서 명예롭지 못한 처사가 되서야 되겠는가.

대통령의 신분은 도덕적, 합법적, 합리적으로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위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 시작이 불법적, 비도덕적, 비합리적 군사반란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는 늘 당당하지도 떳떳하지도 못했다. 이를 덮기 위해 억지와 만용이 있었을 뿐이다. 그들의 부모를 위해서라도 남의 것으로 영광을 누려서는 안 된다.

박정희는 처음부터 무법자였고, 헌법파괴의 명수였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다. 인간양심과 도덕적 규범이 최소한의 법이다. 법은 만인이 평등하게 지켜야하고 그래야 민주주의다. 따라서 대통령 등 권력을 가진 사람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모범적인 국가가 된다. 법을 지키지 않는 통치자는 폭군이다.

박정희는 도덕도 양심도 법도 없었다. 군인의 사명은 명령받은 진지를 사수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처럼 말이다. 민주당 정권이 무능하고 혼란하고 부정부패가 극에 달해 경제가 어렵고 안보가 걱정이라고, 총칼을 국민을 향해 겨누고 서울로 쳐들어왔다.

△ 군법을 어기고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박정희를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김성진에 의하면 그의 저서 「박정희를 말한다」 P.297~299에서 박정희는 이미 자유당시절 이종찬 장군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그에게 ‘군사혁명의 필요성’을 건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는 쿠데타의 명분과는 상관없이 호시탐탐 반란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야심가였다.

△ 반란으로 헌법파괴: 4·19후 모처럼 국민 총의에 의한 헌법을 개정하고 출범한 민주당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정당한 헌법을 파괴했다.

△ 혁명과업을 완수하고 군으로 돌아가겠다고 해놓고 2년 후 예편해 양복으로 갈아입고 내각제헌법을 대통령제로 바꾸고 대통령에 출마했다.

△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삼선개헌을해 또 한 번 헌법을 파괴했다.

△  조국근대화를 위해 유신을 해야 한다고 자기가 주도해 만든 헌법을 또 파괴하고 영구집권의 길을 열어 놓았다.

△ 말로는 이제 물러나야 하겠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또 한 번 헌법파괴를 구상하였다고 그의 일등 참모였던 남덕우 전 총리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성진은 말한다. 남덕우: 어느 날 대통령과 특보들이 식사를 같이하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정국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런데 박정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법은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어? 헌법을 개정하고 나는 물러날 거야.”

『내가 아는 한 박정희 대통령은 1983년에 하야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왜 1983년인가, 그 대답은 이러하다. 카터 미국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한 주한 미군 철수 시한이 1982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국산 무기를 자급할 수 있고 20개의 예비사단이 편성되어 자주국방 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중화학공업 건설 계획도 순조롭게 궤도 위를 굴러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임기 만료 전 해인 1983년에 하야를 하게 되면 헌법상 국무총리가 1년 동안 (잔여기간) 권한을 대행하면서 실질적인 정부 인계를 보장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 등을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심이었다.』
김성진저 「박정희를 말한다」 P.174-175
 
얼마나 한심한 얘기인가, 남덕우에게는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거는 엉터리야” 그러면서 헌법을 개정하고 물러난다고? 웃기는 얘기다. 국가를, 국민을 그리고 헌법까지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으면 이런 말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할 수 있는지, 그의 공작적 사고의 본심을 잘 들어낸 말이다.

1983년에 임기 1년을 남겨 놓고 물러나면 국무총리가 잔여기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면서 실질적인 정부인계를 보장 받을 수 있게 된다며 여러 가지 요소들을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심이라고 말했다. 물러나려면 임기를 끝내고 총선거를 하면 되는데 굳이 임기 1년을 남겨놓고 물러나려고 한 것은 또 한번의 정치공작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면죄 받으려는 초조하고 안하무인격인 얄팍한 생각을 한 것이다.

이마저도 남덕우 전 총리에게는 개헌 후 퇴진을, 김성진에게는 임기 1년을 남겨놓고 현행헌법에 맞추어 퇴진하겠다고 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정권안보가 우선이어서 퇴진을 가지고도 우왕좌왕했는데, 결국 박정희가 살아있었다면 곱게 물러날 수가 없었다. 어떻든 그의 퇴진은 비극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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