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딸아이가 드디어 학교에 갔다. 올해 고교 2학년이 된 아이는 겨울방학이 진즉에 끝이 났지만 여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고3 아이들이 먼저 등교 수업을 시작했고, 일주일 뒤인 지난주 딸아이도 학교에 가서 새로운 선생님들과 반 친구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설렘 가득한 딸아이의 새로운 학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직장이 아이의 학교와 꽤 가깝다. 나 역시 아이의 등교가 반가워 개학 기념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딸아이는 학교 기숙사에서 짐을 챙겨 나를 만나러 회사 근처로 왔다. 퇴근 후 딸아이와의 기분 좋은 데이트였다.
개학이 몇 차례 연기된 끝에 온라인 개학으로 학기를 맞았지만 갑작스러운 일상의 변화에 아이의 마음은 몹시도 심란했다. 2학년이 되며 과목이 늘어났고 새롭게 해야 할 공부가 산더미 같은데 혼자서 챙겨야 하는 일상이 불안했다. 유혹도 많았다. 유튜브며 웹툰 등을 보다가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자신을 자책하며 볼멘소리를 털어놓기도 했다. 모두가 똑같은 상황이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해보지만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집과 독서실을 오가며 답답해하는 아이를 데리고 주말에는 산에 가거나 집 근처 카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번은 벚꽃이 흐드러져 있던 동네 천변을 함께 걷고 있는데 아이는 벚꽃의 꽃말이 뭔지 아냐고 내게 물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중간고사'라고 했다. 봄볕에 눈부시도록 피어있는 벚꽃이지만 꽃구경도 제대로 못 하며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 신세 한탄을 그렇게 표현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올해는 그 많던 벚꽃이 다 떨어지도록 아이는 중간고사를 보지 못했다.
북한산 등산길에 피어있는 꽃을 보자 아이는 학교의 교정이 생각났던 모양이었다. "우리 학교에도 꽃 진짜 많이 피는데…"라고 말했다. 딸아이는 봄에 태어났다. 지난해 생일, 기숙사 기상 시간에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그 덕분에 정말 많은 친구로부터 종일 축하를 받았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이번 생일에는 선물을 많이 받았으니까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행복했던 그 날의 추억은 학교에 대한 그리움이 됐다.
아이는 내게 영상 하나를 보여준 적이 있다. 학교 선생님이 아침에 출근하면서 직접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선생님은 동영상에 아이들이 없는 학교로 출근하는 모습을 담으며 어서 빨리 만나자며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그리도 애틋한 소통을 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교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회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의 등교인 아이의 이야기보따리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 체온을 재고, 점심시간에는 시차를 두고 칸막이가 있는 지정석에 혼자 앉아 말없이 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교실에는 짝궁도 없이 수업을 들어야 했다.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과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 선생님들은 답답한 마스크 때문에 아이들이 혹시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까봐 마이크를 대고 수업을 한단다. 50분 동안 진행했던 수업도 10분이 단축됐고 대신 쉬는 시간은 5분이 늘었다. 3학년을 제외하고는 1학년과 2학년은 등교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학년별로 겹치지 않게 번갈아 가며 진행한다고 했다.
경험하지 못한 학교생활,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고 나서인지 아이는 신이 나 있었다. 학교에서 작성해 오라고 했다면서 인쇄물을 꺼내 보여주기도 했고, 숙제라며 자신이 쓴 수필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리도 반가웠던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해서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다가 갑자기 사라졌던 우리의 일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등교를 했지만, 그동안 미뤄졌던 중간시험을 곧 봐야 하는 모양이다. 환하게 웃다가 시험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는 꽁한 표정을 지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시절에는 그것이 그렇게도 전부인 것처럼 괴로운 것은 세월이 변해도 여전한 모양이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기독교 미션스쿨이고 이맘때에 개교기념 행사가 이어지며 재학생과 가족, 동문 등이 행사에 참여한다. 지난해 나도 아이와 함께 그 행사 중 하나였던 횃불예배를 보러 갔었다. 그러나 이 학교의 오랜 전통인 횃불예배는 올해 열리지 못했다. 연이어 이어지는 기념행사도 모조리 취소됐다. 아이들의 등교가 언제 다시 멈출지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살얼음판을 걷듯 마음 졸이는 만남과 일상이 그렇게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세상을 엄습하고 있지만, 그 평범했던 우리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 곳곳의 눈물겨운 사투에 고마움과 함께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아이들과 선생님들도 어서 빨리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서로 마음껏 부대끼며 교실과 교정을 거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