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理想)과 희망(希望)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상(理想)과 희망(希望)
  • 김상호 편집위원
  • 승인 2009.11.10 1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확호불발(確乎不拔) 한 이상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희망이 있다.
이상을 향하여 매진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처 할지라도 분투노력의 기쁨이 항상 있으며 아무리 암흑한 경우에 있을지라도 항상 최후 승리의 가능성이 존재한 것이다.
 
그에 반하여 확호한 이상을 세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생활이 제아무리 편안할지라도 그에게는 언제나 암연(暗然)한 정신적 불안과 퇴폐적 자폭자적 기분이 떠날 때가 없는 것이니 비유해 말하면 이상을 세운 사람은 항해에 목표를 가진 배와 같아서 그 목적지를 향하여 전진하는 가운데 아무러한 풍파를 만날지라도 목적지에 진일보 나아간다는 자신과 기쁨이 있는 것이요.
 
그와 반대로 아무런 정처도 없이 부표(浮標) 하는 부평초(部萍草)는 고요한 바다위에서도 동으로 엎치락 서쪽으로 엎치락 끝없는 애수와 절망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폭력적 이상 문제해결 못해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상과 실제는 언제나 상부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와 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상무용을 논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이상이 고귀한 이유가운데 하나는 곧 실제보다 한 걸음 더 앞서고 한 단계 더 고상한 데 거기에 있는 것이다.

동물과 인류의 구분이 또한 여기에 있는 바이니 동물은 오직 목전의 실제 생활의 고식(固息)적 해결책에만 급급하되 인류가 가장 귀하다는 한 특색으로 인류는 실제와 싸우는 동시에 언제나 보다 더 높고 보다 더 선하고 보다 더 아름다우며 보다 더 참된 이상을 세우고 그 이상을 향하여 부절(不絶)히 노력하는 것이다.

이상이 실제와 합치되는 그날, 이상은 이상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니 이상은 언제나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데가 아니라, 도달하고 싶어 하는 희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반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과연 어떠한 이상을 세웠는가? 또는 그 이상을 향하여 얼마만의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셨던가? 우리의 과거 행동은 과연 최고 이상을 향한 일기여(一奇與)가 되었던가 못되었던가?

오늘날 이 사회에는 온갖 괴물이 준동하고 있다. 다라서 옥석을 구분키 불가능한 경우도 많고 또 때로는 정당한 행동의 기준을 잃어 갈팡질팡 할 때도 많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한층 더 행동에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한 시대를 향하여 우리는 더 한층 명료한 이상을 세우고 그 이상의 그림자로써 우리 행동의 기준을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이상에 위배되는 행동은 그 행동이 어떠한 자 임을 막론하고 절대 배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진보주의를 절대적으로 배격하여야 할 것이다. 목적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하지 마는 거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는 것이다. 타협에는 한계가 있고 캄프라치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교육-설득만이 문제 해결
 
지난 재보선에서 각 정당의 후보자들이 보여준 기회주의는 개인이니 유권자인 국민을 성공적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 파멸로 이끄는 것이였다. 후보자의 민주주의적인 외피를 둘러 쓰고 있더라도 우리로서는 이것을 한 개의 미개한 야만적인 행동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끔 좁은 소견의 지도자는 폭력적 수단으로 목적을 관철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폭력적인 이상은 절대로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검을 잡는 자는 검에 죽는 것이다.

하나의 검은 제2, 제3의 죽음을 낳을 뿐이며 죽음을 통해서 검을 잡은 자는 언젠가 또 다른 검에 의하여 넘어지고 야 만다.

아무런 고난, 아무러한 유혹과 죽음이 있다 할지라도 언제나 어디까지나 확립한 최고의 이상을 바라보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최후 성공은 있으리라고 우리는 믿는 바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