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그야말로 ‘헬조선’이다. 청년 4명 중 1명은 일자리도 찾지 못하는데,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내 집’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전셋집을 찾아보지만, 미증유(未曾有)의 전세난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막막하기만 한 하루하루에, 매일 평균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고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왜 국민의 삶은 더 힘들어진 걸까. ‘부동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왜 더 많은 사람들의 ‘내 집 마련’ 꿈을 앗아가게 된 걸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11월 24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선 국민의힘 이혜훈 전 의원의 진단을 들어 봤다.
“사람의 본능과 욕구, 정부가 막을 수 없어”
이 전 의원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국가 경제정책을 다뤄온 ‘경제통’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원색적 비난보다는 경제적 원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선 문재인 정부에서 오른 집값과 과거 정부에서 오른 집값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제가 특정 정당에 몸담고 있다 보니 혹시나 편향적이라는 오해를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진보 단체로 알려져 있는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데이터를 가져왔습니다. 서울 아파트값의 5년 평균 상승률을 봤더니, 김영삼 정부에서 26%, 김대중 정부에서 74%가 올랐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의 상승률은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다 기억하시겠지만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부동산값이 폭락했을 때죠. 그래서 제 생각에는 초기값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집값이 폭등한 것으로 통계가 잡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다음 노무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하고 ‘버블세븐’을 지목하면서 임기를 시작했음에도 5년 동안 94%를 올렸습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었기 때문에 집값을 올릴 거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오히려 –13%로 집값을 내렸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은 27%로 김영삼 정부 때와 비슷했고요. 문재인 정부는 3년 동안 53%를 올렸습니다. 노무현 정부보다 퍼센티지는 낮은데, 상승액 기준으로 하면 역대 최고입니다. 25평짜리 아파트 기준으로 4억5000만 원을 올렸어요. 통계만 봐도,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이 많이 오르긴 오른 겁니다.”
역대 정부에서의 부동산 상승률을 비교한 이 전 의원은, 곧바로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치솟은 이유를 분석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온갖 초고강도 규제를 쓰면서 24번의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집값은 왜 올랐을까요. 제 해석은 그렇습니다. 가격은 수요하고 공급이 만나는 선에서 결정됩니다. 가격을 낮추려면 사려고 하는 사람을 줄이거나 팔려고 하는 물건을 늘려야 해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공급 확충은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공급을 안 늘리고 집값을 잡으려면 수요를 줄어야죠. 수요를 줄이려면 못 사게 하는 게 방법이니까 아예 대출을 못 받게 하는 겁니다.
그럼 대출을 못 받게 하면 수요가 줄어들까요. 아닙니다. 사람이 좋은 집에 살고 싶어하는 건 죄악이 아니에요. 심지어 죄악이라고 해도 좋은 걸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못 말립니다. 얼마 전에 모 의원이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그런 말을 했는데, 사람의 본능과 욕구라는 건 정부가 하지 말라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죠.
게다가 이제 세상이 변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증조할머니와 한 집에 살았어요. 동생은 증조할머니와 한 방을 썼고요.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부부끼리도 프라이버시를 원하고, 분리된 공간을 원해요. 둘이 살아도 방 2~3개는 있어야겠다는 게 시장의 수요입니다. 이제는 소득 3만불 시대인데, 소득 1만불 시대와는 수요 자체가 질적으로 달라요.
또 요즘은 스마트 주택이라는 게 많잖아요. 오토도어락도 되고, 밖에서 가스도 켜고 끄고, 에어컨도 켜고 끄고 하는 집을 원해요. 제가 올해 초에 국토부 장관한테 ‘장관님, 공급이 부족합니다. 늘려야 됩니다’ 그랬더니 장관이 ‘공급은 부족하지 않아요.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데 뭐가 부족합니까’ 하더라고요. 주택보급률이라는 건 가구 수와 주택 수가 비슷하면 100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낡고 노후화된 주택은 수요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무의미해요. 새 집이 공급돼야 수요를 흡수해서 집값이 안 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집값·전셋값 폭등…공급 확충이 해답”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를 꼬집은 이 전 의원은, 특히 서울 집값이 폭등한 까닭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정책 기조에서 찾았다.
“특히 서울이 문제입니다. 전국 집값이 골고루 오르는 게 아니라 서울이 특별히 오르고 있어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서울은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는 빈 땅이 없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집값이 계속 오르는 겁니다. 여기에 가중요인이 있습니다. 서울시장입니다. 새로 집을 지을 땅이 없으면 헌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야 합니다. 이게 정비 사업입니다. 그런데 이전 시장님(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보존과 재생이 브랜드였던 분입니다. 정비 사업에 반대 철학을 갖고 계셨죠. 그래서 정비 구역으로 지정된 곳 393개 구역을 해제해버렸습니다. 서울시의회에서 발간한 용역보고서를 보니까 저게 해제되는 바람에 26만 호 정도 되는 주택 공급이 무산됐다고 합니다. 수요는 들끓는데 공급이 무산되니까 가격이 치솟는 거죠. 제 생각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집값과 전셋값이 폭등하는 재앙이 온 건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10년 동안 깔려온 기름에 24번의 부동산 정책이 불을 붙인 결과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서 그는, 서울 집값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자신의 해법을 제시했다.
“그래서 저는 공급을 확충해야 이 수요가 잠재워지고 해갈이 되고, 그래야 집값이 뛰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내 집 마련을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을 위한 대책을 따로 내놔야 합니다. 우선 자력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분들은 그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여기를 누르면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옆 동네로, 흙수저 무주택자에게로 번집니다.
자력으로 집 마련이 어려운 분들은 서울시가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먼저 청년들에게는 시유지를 활용해서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서울에는 시유지가 굉장히 많고, 그 자리에 높은 빌딩을 짓는 건 서울시장이 결정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서울을 4개 권역으로 나눠서 권역마다 하나씩 80층짜리 빌딩을 짓고, 거기서 직장·주거·문화·의료·복지·공공서비스가 다 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시유지에다가 짓는 거니까 땅값이 필요 없고 건축비만 필요한데, 요즘은 평당 600만 원이면 아주 좋은 걸 지을 수 있습니다. 15평짜리를 지어준다고 해도 9000만 원이죠. 이걸 30년 장기 납부하면 자기가 분양받을 수 있게 하고, 원하면 임대로 월세 내면서 살 수도 있게 하는 겁니다. 이런 걸 서울에 4개만 지어도 어마어마한 물량입니다. 일하고 먹고 자고 하는 게 다 한 곳에서 이뤄지니까 교통유발도 최소화되고요.
신혼부부들을 위한 아파트 같은 경우에는 마곡에서 암사까지 가는 한강변 재건축 단지들에 선택권을 주는 방법으로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쪽에는 바로 앞이 한강공원인데도 사이에 올림픽대로가 지나고 있어서 불편을 겪는 아파트단지가 많습니다. 이런 아파트단지에 제안을 하는 겁니다. ‘올림픽대로 위에 뚜껑을 덮어서 거기에 정원을 만들고, 한강공원으로도 쉽게 갈 수 있게 해줄 테니 지금 아파트단지 정원으로 쓰고 있는 공간은 고밀개발을 해서 젊은 부부들 전용 동을 만들자.’ 아마 많은 단지들이 찬성할 겁니다. 한강공원을 전용 공원처럼 쓸 수 있게 되니까요.
청년도 아니고 젊은 부부도 아니고 나이는 들었는데 내 힘으로 집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하시는 분들은 공공임대를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해서는 평생 해도 안 됩니다. 정책은 발표했지만 누구 하나 나서는 민간이 없어요. 인센티브가 작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되려고 하면 인센티브를 높여야 합니다. 지금은 용적률은 조금 늘려주면서 임대 물량을 70% 내놔라 하는데, 이러면 수익성이 확보가 안 돼서 재개발을 안 합니다. 오히려 용적률을 700%까지 올려주고 임대 물량은 30%만 내놓으라고 하면 수익성이 확 생기니까 재개발 재건축이 활기를 띨 겁니다. 이러면 재개발 재건축을 하려는 단지가 늘어나니까 전체적인 임대 물량은 더 많아지고요. 공공개발에만 맡기면 사람들이 안 하려고 하니 민간개발에도 이 약속을 전제로 용적률을 올려줘야 합니다. 지금은 임대단지를 만들겠다고 발표를 해도 여당 국회의원 구청장이 결사반대한다고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사업 착수가 안 됩니다. 사업이 굴러갈 수 있게 해야 성과가 난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