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돈] 재산 둘러싼 가족싸움, 재벌의 고질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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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진한 돈] 재산 둘러싼 가족싸움, 재벌의 고질병인가
  • 차완용 기자
  • 승인 2010.01.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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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제화, 녹십자, 금호그룹 등 재산 다툼으로 ‘망신’
옛 속담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이 있다. 하지만 피보다 더 진한 것이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요즘은 부모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의 많고 적고를 떠나 상속 문제로 형제들 간의 법정싸움은 흔한 일이 됐다. 유산 상속을 둘러싼 형제간 다툼은 볼썽사나운 진흙탕 싸움으로 발전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돈 많은 기업인 집안에서 벌어지는 유산 싸움은 그 정도가 일반인들의 그것보다 크고 복잡하다. 

최근 국내 제화 업계 1위 금강제화의 2세 남매들이 창업주인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법정 다툼을 일으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에는 유독 재벌가의 재산을 둘러싼 다툼이 잦았다.

지난해 11월에는 2005년 재벌가 ‘형제의 난’의 주인공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또한 같은 달에는 제약업계의 큰손인 녹십자가(家) 에서는 고(故)허영섭 녹십자 창업주가 타계한 지 열흘 만에 유산분배 문제를 놓고 모자간에 법정다툼이 벌어졌다.

이처럼 지난해에는 유독 돈이 피보다 진했던 재벌그룹 일가의 재산 다툼은 빈번했다. 세대교체의 통과의례로 비춰질 정도로 국내 내로라하는 많은 재벌가들이 홍역을 치른 것이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볼썽사납게 엉겨 붙은 재벌들의 ‘전의 전쟁’과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시사오늘에서 되짚어 봤다.
 
◇반세기 금강제화 '유산' 앞에 남매간 법정다툼
 

최근 ‘남매의 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금강제화는 김동신 전 회장이 1954년 서울 서대문구에 ‘금강제화산업사’를 설립하면서 탄생,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제화업체로 우뚝 선 건실한 기업이다.

금강제화는 김 전 회장이 사망한 1997년까지 성실한 이미지의 기업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별 탈 없이 ‘좋은 기업’으로 잘 지내왔다. 하지만 경영권을 이어 받은 장남 김성환 회장이 동생들 몰래 돈을 빼돌려 유산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소송이 최근 제기되면서 금강제화는 좋던 이미지에 금이 갔다. 

김 전 회장의 다섯째와 여섯째 두 딸은 장남 김성환 회장을 상대로 각각 15억원씩 총 30억원을 지급하라는 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은 김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재산이 거의 없다고 동생들을 속이고 재산의 일부만을 나눠줬다. 13년 전의 일이지만 동생들이 큰 오빠가 괘씸하다며 법정 싸움을 건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이들은 두 딸이 받은 유산은 각각 35억원에 불과하지만 김 전 회장은 이미 사망 전에 장남에게 870여억원, 차남에게 180여억원, 김 전 회장의 처에게 39억여원을 증여했다. 김 전 회장 사망 직후 상속 재산 120여원과 장남 등에게 이미 증여된 부분을 포함하면 김 전 회장의 재산은 총 1200여억원이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지금 특별히 말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회장님이 미국 출장 중이라 회장님이 오신 뒤에 자세한 내용을 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강제화의 유산 상속 싸움이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
 

◇母子 경영권 분쟁 휩싸인 녹십자


‘백신 명가’ 녹십자 일가는 창업주 故 허영섭 회장이 타계한 직후 장남 성수(39)씨가 어머니 정모(63)씨를 상대로 상속 재산을 놓고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성수씨는 허 회장 별세 10일 만인 지난해 11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유언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허 회장의 병세가 깊을 때 어머니가 망자의 뜻이 아닌 자신의 의사에 따라 유언장을 작성하게 하는 바람에 유산을 전혀 상속받지 못했다는 게 성수씨 주장이다.

성수씨는 2007년까지 녹십자 부사장으로 근무한 뒤 회사를 떠났다. 반면 그의 동생 은철(37)씨, 용준(35)씨는 각각 녹십자 전무와 녹십자홀딩스 상무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녹십자는 허 회장 동생 허일섭(55) 대표이사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한일시멘트 이사로 일하다 1991년 녹십자로 옮겨 임원으로 근무했고 2008년부터 부회장을 맡고 있다.

녹십자홀딩스 지분은 고 허 회장이 12.37%를 보유하고 있었고, 허 부회장 9.01%, 정씨 1.49%, 은철씨 1.03%, 용준씨 0.99% 순이다. 장남 성수씨 지분은 0.81%다. 허 회장 지분이 어떻게 상속되느냐에 따라 최대주주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녹십자 관계자는 "아직 유언장이 공개되지 않았다"면서도 "가처분 신청은 경영권과 관계없는 상속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녹십자는 '개성상인' 마지막 세대로 불리는 허 회장이 내실에 집중하는 경영관을 유지한 데다 백신 개발에 공들인 결과 올해 3분기 실적이 업계 2위로 뛰어올랐다. 더구나 고 허 회장 동생 허일섭 부회장이 지난해부터 녹십자를 잘 이끌고 있고 허 회장의 2남과 3남은 나이가 많지 않아 당분간 경영권 분쟁은 발발하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관측이었다. 녹십자가 역시 피보다 돈이 진하다는 속설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故 박용오 회장의 자살로 끝난 두산家의 ‘형제의 난’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재계에 큰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다름 아닌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비극’이 시작된 2005년 발생한 두산 그룹의 '형제의 난'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형제의 난'은 2005년 7월 박 전 회장이 동생 박용성 회장에 대한 그룹 회장 추대에 반발한 일이다. 당시 큰 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은 그룹 회장직을 3남 박용성 회장에게 넘기라고 했다. 여기에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정원씨를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을 승진시킨 반면, 박 전 회장에 대한 예우는 없었다.

두산 그룹에서 '배제'된 데 반발한 박 전 회장은 '두산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 등의 진정서를 검찰 등에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박용성 회장 등 두산그룹 일가가 20여년 간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검찰은 진정서를 바탕으로 수사, 두산그룹이 10여년간 300억원대의 비자금을 횡령, 총수 일가의 세금 등 가족공동 경비 및 가족분배 등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냈다. 검찰은 박용오 전 명예회장과 박용성 전 회장 등 총수일가 4명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형제의 난'은 일단락됐다. 이 일로 박 전 회장과 두 아들은 두산가(家)에서 제명됐다.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박 전 회장은 2008년 2월 성지건설을 인수하면서 재계에 컴백하고 재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계속되는 건설 경기 침체의 여파로 경영의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하는 비극으로 두산가의 ‘형제의 난’은 막을 내렸다.
 

◇금호그룹, 유동성 위기에 형제의 난까지 겹쳐 ‘워크아웃’


지난해 7월 금호그룹에는 ‘형제의 난’으로 인해 박삼구 명예회장과 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동반 퇴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1946년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이 미국산 중고택시 두 대로 시작한 광주택시가 모태다. 이후 버스 운수업에 진출, 운수업에서 기반을 다졌다.

박인천 회장은 1948년 버스 운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해(광주여객 설립), 운송업 기반을 다졌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금호타이어와 금호석유화학 등을 세워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아시아나항공이 국제적인 항공사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고, 금호타이어와 금호고속도 중국시장에 진출하며 글로벌 항공, 물류, 화학회사로서 입지를 다졌다.
2006년엔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국내 최대 건설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게 됐고, 2008년에는 `알짜회사'인 대한통운 인수에도 성공하는 등 재계위상이 크게 강화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는 형제경영의 전통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난 62년 동안 그룹 총수는 세 번 바뀌었다. 박인천 창업회장이 1984년 세상을 떠나자 첫째 아들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뒤를 이었다.

그는 그룹 창립 50주년인 1996년 동생 고 박정구 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줬고, 2002년 셋째인 박삼구 회장이 다시 배턴을 넘겨받아 재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형제 경영의 전통을 다져갔다.

박삼구 회장까지는 형제들 간에 분란 없이 자연스럽게 경영권 승계가 이뤄졌다. 그래서 모범적인 형제경영, 오너경영 기업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그리고 그 후유증 등으로 형제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결국 2세 형제들 간 승계의 전통은 깨졌다.
 
대우건설 인수과정에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보장한 풋백옵션이 대규모 손실로 다가오고,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까지 닥치자 박삼구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그룹 석유화학 부문 회장이 반기를 드는 등 형제의 난이 올해 발생했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이사회를 주도해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화 대표이사를 해임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서는 과정에서 스스로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전문경영인인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부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박찬법 회장은 금호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해 대우건설과 금호생명 등 계열사 매각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결국 오너들이 보유한 주요 계열사 지분을 채권단에 담보를 제공키로 하면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두 곳에 대한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한진家 형제분쟁 법원조정으로 일단락

이와는 별개로 그동안 이어져 온 재벌의 형제간 분쟁이 법원의 조정으로 일단락된 사례도 지난해에 있었다. 한진그룹 형제간 '면세점 납품업체 변경'을 두고 이어온 분쟁이 조정으로 마무리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법 민사31부(재판장 허만)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2006년 장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상대로 "대한항공 기내 면세품 공급업체의 독점 납품권을 형이 아무런 협의 없이 다른 회사에 이전해줬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조정으로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밝힌 조정 사안은 △조양호 회장이 올 연말까지 두 동생들에게 각 6억원씩을 지급할 것 △동생들은 향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어떠한 민·형사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 △양측 모두 제3자에게 비밀로 부칠 것 등이다.
 
한진그룹의 고 창업주인 조중훈 전 회장은 생전인 지난 1990년 대한항공의 기내면세품 수입을 알선하는 업체인 브릭트레이딩을 세워 조양호 회장 등 4형제에게 24%씩 지분을 나눠줬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브릭트레이딩 간의 거래가 다른업체를 통해 사실상 해지되자, 동생들은 "형이 제3자로 하여금 동종업체를 만들게 한 뒤 납품업자들이 브릭트레이딩과의 거래를 끊어 사실상 회사를 폐업시켰다"며 소송을 냈고 지난해 1심에서 패소해 2심이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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