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요즘은 홀로 또는 지인 몇 명과 어울려 산을 탄다. 멀리 가는 것은 대중교통이든 차를 몰고 가든 부담스럽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 온 뒤로 주말이면 소일 삼아 주로 북한산을 비롯한 수도권 근교 산을 반복해서 오르고 있다. 아침 일찍 오르기도 하고, 늦은 오후에 호젓하게 산길을 걷기도 한다. 멀리 있는 산을 찾아다닐 때보다 훨씬 더 여유롭게, 그동안에 몰랐던 북한산의 모습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봄에는 유난히 주말 비 소식이 잦았다. 비가 내리는 산길도 오랜만에 걸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주중에 제법 많은 봄비가 내린 뒤 주말에는 걷힌다는 예보가 있었다. 오랜만에 북한산에서 해돋이를 보고 싶었다. 어느 산이든 해돋이와 석양의 모습은 장관이겠지만 북한산의 일출도 여느 산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서울의 일출 시각을 체크해보니 오전 5시 18분이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백운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면 북한산 주봉인 백운대로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다. 야간에 오르다 보니 조금 더디게 걸어야 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새벽 3시 30분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비가 그치고 날이 갠다는 예보에 북한산의 일출을 보고 싶은 산꾼들은 나만이 아니었다. 우이동에는 이미 많은 등산객이 헤드랜턴을 켜고 삼삼오오 모여 산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야간산행을 할 때는 길을 밝혀줄 헤드랜턴도 필수지만 등산 스틱도 반드시 필요하다. 어두운 산길에서 스틱은 때로는 위험한 장애물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군데군데 보이는 등산객들이 밝혀놓은 불빛으로 산길을 가늠하며 나도 그들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탐방센터에서 영봉 삼거리까지는 가파른 산길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걷다보니 조그마한 암자인 인수암이 나오는데 불이 훤히 밝혀진 채 스님들이 한창 새벽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이어서인지 산사의 불빛은 더욱 밝았고 경건했다.
인수암을 지나면 산길은 정상을 향해 더욱 가팔라진다. 그래도 위험한 바윗길마다 나무 계단이 설치돼 있어서 어두운 밤이지만 비교적 안전하게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그렇게 오르다 백운산장을 지나 봉암문에 다다르면 오른쪽으로는 백운대로 오르는 길, 왼쪽으로 만경대에 오르는 갈림길이 나온다. 나는 오랜만에 만경대 쪽으로 길을 잡았다.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만경대 최고 정상까지는 위험해서 오르진 못하지만, 정상아래 백운대와 인수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경대에 오르니 이미 사진 애호가들과 많은 등산객이 조망 좋은 자리마다 터를 잡고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동이 트자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그 어떤 운해보다도 훨씬 더 넓고 역동적인 운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 위에 솟은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섬이 돼 있었고 구름은 거센 파도처럼 봉우리들을 넘어 다녔다.
그리고 드디어 동쪽 운해에서 태양은 구름을 뚫고 눈치를 살피듯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바닷물 속에서 갓 건져낸 것처럼 촉촉한 태양이 운해와 엉켜 있다가 완전히 떠올랐다. 기대 이상의 역대급 운해 속에서 그렇게 태양이 솟아올랐다. 도시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구름 파도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름은 바로 눈앞에 있는 백운대와 인수봉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 전날 비가 내렸던지라 아침 햇살을 머금은 북한산의 녹음은 더욱더 싱그럽고 깨끗했다.
시원한 아침 바람을 한참 동안 맞으며 운해에 취해 있는 동안 산 아래로부터 거센 바람이 불어오며 구름을 흩트리더니 바로 눈앞에 있는 백운대와 인수봉을 흔적도 없이 감춰버렸다. 그리고 운해는 서서히 흐트러지며 순식간에 산과 도시에 퍼지며 짙은 안개가 됐다. 저 아래 도시에는 그렇게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산도 그렇다. 같은 산을 올라도 매번 그 모습과 거기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도 달랐다. 4계절 각각의 모습도 그렇고 날씨에 따라서도 그렇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산은 변하고 또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때로는 내게 고통이 되기도 하고 감동이 되기도 했다.
만경대에 머무르는 동안 북한산의 모습은 참으로 변화무쌍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감동을 주기도 했고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삶이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할 때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침을 먹지도 못하고 잠을 설치며 이른 새벽부터 설레발을 쳐대서인지 구름이 흐트러지자 배가 몹시도 고팠다. 산길을 더 걷고 싶었지만 도저히 허기가 져서 서둘러 하산을 했다. 그리고 우이동 어느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시원한 막걸리에 허기를 채우자 몸이 노곤해졌다. 북한산의 운해에 취하고 이른 아침 막걸리에 취한 채 도시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었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나두하구십따..
최본부장 올수능대박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