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국'에서 금지곡(?) 될 뻔 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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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국'에서 금지곡(?) 될 뻔 한 노래
  • 박지순 기자
  • 승인 2010.01.11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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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촛불 잔치'
이재성이 1986년 지금은 없어진 현대음반을 통해 발표해 그해 연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촛불잔치’는 지난 2008년 ‘촛불정국’에서 뒤 늦게 각광(?)을 받은 곡이었다.
 
시위 참가자들이 ‘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를 ‘촛불집회를 열어보자 촛불집회야~’ 처럼 가사를 바꿔 부르자 정부가 방송국에 압력을 가해 방송에 나오지 못했다는 헛소문이 돌기까지 했다.

필자는 두 달 전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며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촛불잔치’가 나오는 걸 듣고 옛 생각이 떠올랐다. 그 방송은 주로 198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들을 메들리 형식으로 틀어주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어서 음악을 듣는 문화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시대적으로 1970년대에 이어 가요 황금기라고 일컬어질 만큼 빼어난 곡들과 역량 있는 뮤지션들이 샘솟는 물처럼 배출됐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런던이나 뉴욕보다 레코드 가게가 더 많아 지금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 이재성의 대표곡 '촛불잔치'가 수록된 그의 1986년 LP.     © 시사오늘
이재성의 ‘촛불잔치’가 수록된 음반은 필자도 한 장 소장하고 있는데 그 당시 100만 장 가까이 팔렸던 히트 음반이었다. 같은 음반에 수록돼 ‘촛불잔치’에 이어 두 번째로 히트한 ‘고독한 DJ’도 이재성의 대표곡 중 하나다.

‘가요 톱텐’이라는 가요 순위 방송을 기억하는 이들이 지금도 많을 것이다. 매주 지난 주와 비교한 가요 순위를 발표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5주 연속 1위를 하면 ‘골든 컵’인가를 주고 순위에서 빠지게 했었다.
 
조용필이 너무 자주, 장기간 1위를 차지하자 1인 독주를 막는다는 이유로 1위 수상을 5주로 제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필자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던 무렵 한 주 한 주 ‘촛불잔치’가 1위로 발표되는 장면을 TV에서 보았다. 아마 그 때 사회자가 길은정이었던 것 같다. 1위를 차지한 가수는 방송출연을 거부하는 괴짜를 빼고는 꽃다발을 받아들고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시절에는 가요톱텐 1위 수상이 가수의 최고 영예였고 인터넷도 없었으니 누가 방송출연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이재성은 ‘촛불잔치’로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영광스럽게 다른 가수에게 순위를 양보했다. ‘고독한 DJ’도 가요톱텐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기억이 나는데 골든 컵을 받았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필자는 이재성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다니던 때인데 이재성이 학교 축제에 ‘초대 가수’로 나온 것이다. 1991년이었다. 전성기는 지난 때였어도 불과 몇 년 전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가 대학교 축제도 아니고 고등학교 축제에 온다는 것은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필자가 졸업한 고등학교와 이재성이 졸업한 대학교가 담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던 것이 인연이었다. 이재성은 기타 하나만을 매고 무대에 서서 “제가 바로 옆 대학교를 나왔어요”라고 인사말을 했다.
 
전혀 무대장치도 없는 곳에서 그의 데뷔곡인 ‘기타 하나 동전 한 닢’과 ‘촛불잔치’를 기타 반주만으로 부른 후 “신청곡 있으면 얘기하세요”라고 말했는데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학생들은 아무도 신청곡을 얘기하지 않았다.
 
이재성이 멋쩍어 하며 자기 나름대로 어떤 곡인가를 부르고 무대를 내려갔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재성은 대학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했고 1981년 대학가요제에서 ‘기타 하나 동전 한 닢’이라는 중창단을 꾸려 ‘나의 꿈’으로 은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첫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 이재성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곡은 '기타 하나 동전 한 닢'이다.     © 시사오늘
지금도 이재성 하면 ‘기타 하나 동전 한 닢’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타 하나 동전 한 닢’이라는 노래는 1984년 4곡이 수록된 10인치 음반을 통해 발표됐다.

이재성의 음반들은 필자도 자주 듣는 편이다. 그가 음악교육과를 나와 음악 선생님을 몇 년간 했다고 들었지만 정확히 확인이 되지는 않는다.
 
이재성의 대표곡들 대부분 특히 ‘촛불잔치’를 들을 때면 ‘음악교육을 전공하고 음악 선생님을 해서 노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자주 있다.

파격이나 천재적인 기발함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치밀한 구성과 강약 조절은 마치 셰익스피어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운율을 맞춰 쓴 희곡을 연상케 한다.
 
이재성의 ‘음악 선생님 같은’ 노래들은 ‘80년대식’ 한국 가요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흘러간 왕년의 히트곡이 아닌 지금도 들을 이유가 있는 곡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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