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논란을 둘러싼 역사적 쟁점과 후폭풍 관심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정보와 평론의 믹스매치, 색다른 어젠다 제시 지향의 주말판 온라인 저널, ‘정치텔링’이 꼽은 요즘 여론의 관심사 중 이것.
- 미 점령군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
- 2차 세계대전과 광복을 되짚는 이유
- 이재명의 ‘친일’ 언급… 후폭풍 '주목'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이 역사 인식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할지, 다음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시각에서 일부 학자들의 말을 빌려 전해봅니다.
1. 2차 세계대전과 광복
“의심할 바 없이 전후 극동의 정치를 특정 지운 혼란의 주된 원인은 소련이 국제협정들(특히 카이로, 알타, 모스크바 회담 등에서 결정된 한국의 독립과 통일에 관한 국제 협약들)의 준수를 거부한 때문이었다.”
- 조승순 <한국분단사> 中-
이는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 민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조승순 국제정치학자의 저서 <한국 분단사> 중 한 대목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로 거슬러 가봅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vs 독일, 일본, 이태리 간 전쟁이 일어났지요.
1942년 일본은 한반도는 물론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 등을 거쳐 호주까지 위협할 만큼 엄청난 땅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진주만 습격을 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일본과 전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소련은 소련대로 일본과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중립 조약을 맺어 독일과 전쟁을 해도 일본과 전쟁을 하지 않고 있었지요.
미국이 일본의 침공으로 전쟁을 하게 되면서 소련에도 지원 요청을 하게 됩니다. 이유는 중국 만주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을 과대평가해 소련을 향해 만주군을 상대해달라고 한 것이지요.
그러던 중 독일이 항복하고, 일본도 중립 조약을 맺고 있던 소련을 통해 미국에 항복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지요.
하지만 소련은 동맹국인 미국에 이를 전하지 않고, 대신 일본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거의 다 이겨갈 무렵 막판에 끼어들게 된 것이지요.
어쨌든 미국과 소련이 일본을 상대하는 같은 편으로서, 1945년 8월 15일에 앞서 소련이 한반도에 들어오고, 9월 8일 미국이 들어오게 되는데요, 이런 맥락을 지난 9일 유튜브 <이춘근TV> 통해 전한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박사에 따르면 한반도를 점령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남아있던 막강한 35만 명의 일본군을 무장 해제하기 위해 왔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해방 이후 “한국과 미국은 항상 우호적”이었다며 “미국은 한국에 영토적 혹은 정치적 이익을 갖고 있지 않은 대신 문호개방 정책과 최혜국 조항과 같은 정책으로 한국을 보호하려 했다”고 이 박사는 진단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한반도 전문가 장성민 전 국회의원도 자신의 책 <자유안보경제가 무너지다>에서 한반도 역사를 짚으며 5000년 동안 크고 작은 침략을 당했던 우리나라에 70년간 단 한번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는 한미 동맹 기간 때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려 시대에는 대륙세력 몽골족 원(元)나라의 간섭을 80년간이나 받았다. 조선이 건국되면서는 중국 본토의 대륙세력인 명(明)‧청(淸)의 조공 책봉 체제에 잇따라 편입됐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일본의 침탈을 당했다.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이 있었고, 청나라에 굴복해야 했다. 병자호란(1636년) 때는 약 50만 명에 달하는 조선 여성들이 만주 심양으로 끌려가 노예로 팔려 나갔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을 거쳐서는 일본에 국권을 뺏기는 참담함 역사를 쓰고 만다.
그런데 한미 동맹 이후를 보자.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막을 내리고, 그해 10월 이승만 대통령 하에서 변영태 당시 한국 외무부장관과 딘 러스크 미 국무부 장관은 워싱턴에서 한미동맹을 맺었다. 대한민국은 이후 어떻게 변했나. 신생 독립국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건국됐을 때만 해도 불과 1인당 평균 소득 65불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9년 현재 3만 달러 수준으로 무려 446배나 뛰어올라 있다. 이렇듯 오늘의 세계 10대 경제, 평화 강국으로 일으켜 놓은 대반석이 바로 한미동맹인 것이다.”
- 장성민 <자유안보경제가 무너지다> 중 일부 개략-
2. 원로들의 진단…“반미 선동 부적절”
정치 원로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보고 있을까요.
진보계의 대부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제3의길 웹진 발행인)는 지난 9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당시 정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1945년 광복 당시 소련은 정치군인들 위주로 한반도에 들어와 다양한 미사여구를 동원해 선전 선동에 나섰다. ‘조선은 조선인에 달렸다’, ‘노동자 계급 해방’ 등의 말이 담긴 지라시를 배포했다. 반면 미군 부대는 정치적 플랜 없이 일본과 싸우다 얼떨결에 들어왔다. 전투병들이 다였다. 투박한 용어로 한반도에 남아있는 일본 병사들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무장해제 시켜 총 등을 수거하는 등에 집중했다. 그런 맥락에서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협조하고 명령을 들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주 대표는 “이재명 지사가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 했다”는 평도 보탰습니다. “30~40년 전 나온 <해방 전후사의 인식> 수준에 머문 데다, 과거 대학교 1학년 운동권들이 막걸리 먹으며 나눌 대화를 지금까지 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무지한 정치인을 과연 더불어민주당이 차기 대선주자로 계속 밀 수 있을까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민주계의 대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말을 하려 하면 굉장히 자세하게 해야지만, 미국과 소련이 일본을 점령 안 하면 해방이 되었겠나. 일본에 계속 내버려 뒀어야 한단 말이냐. 우리 관점에서는 해방이 맞는 것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크게 보면 “점령이냐 해방이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며 “일본군으로부터 해방시켰으니 해방군이고,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조선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으니 점령이라는 것도 다 그른 말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재명 지사 발언이 왜 틀렸느냐면 역사학자도 아니고, 학술적으로 따져야 할 일을 정치적으로 점령했다는 말을 써서 반미를 선동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데 있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더불어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이라고 한 김원웅 광복회 회장에 대해서도 “공산주의 소련은 해방이라는 용어를 기본적으로 잘 쓴다”며 “우리는 점령됐고 북한이 해방됐다고 하면, 해방된 북한에서 살아야 할 것 아니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리틀 DJ(김대중)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딱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러 조선에 왔지만, 식민정책을 펴는 게 아니었고 우리나라를 독립시키는데 도와줬다”고 했습니다. 이어 “가치 없는 논쟁이다. 70년 전 얘기다. 그런 것 가지고 우리 장래를 결정하는 데 참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념 논쟁은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지 발전 방향이 아니다”고 일갈했습니다.
3. 평론계 평은?
신율 명지대 교수는 같은 날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이재명 지사가 해방 후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것을 강조하다가 오버하게 돼 ‘미군 점령군’이라는 발언까지 나온 것으로 본다”는 시각부터 전제했습니다.
다만 “발언 중 ‘친일세력’이라 한 것에 대해서는 대권 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습니다. “이 지사 지지자 중 상당수가 반문(문재인)인데, 이번 발언으로 친일파 언급을 자주 한 정부의 연장선으로 비치게 돼 부정적 반응을 얻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 경우 장모 구속 건도 희석됐고, 이재명 지사와 지지층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일탈표를 끌어모을 기회도 얻게 돼 유리해진 국면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점령군 논란은 학술 용어로 그럴 수 있다 쳐도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언급한 것은 자칫 후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유는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정통성을 부정하는 쪽과 아닌 쪽의 첨예한 역사 논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어떤 발언을 지목하는 것일까요. 이 지사는 지난 1일 경남 안동의 이육사 문학관을 찾은 자리에서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한 바 있습니다. 이후 ‘미 점령군’이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 지사는 “많은 역사학자의 고증”이 있었다며 “승전국인 미국 군대는 패전국인 일제의 무장해제와 지배 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군이 맞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두 평론가 말은 현재 논란이 되는 이 지사의 ‘미 점령군’이라는 발언 보다, 대한민국을 ‘친일세력들’이 만든 나라라고 한 것이 향후 대선 정국에서는 더 큰 논란이 되거나, 그의 대선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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