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에 감춰진 대학가요제 숨은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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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에 감춰진 대학가요제 숨은 명곡
  • 박지순 기자
  • 승인 2010.01.21 17: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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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의 음악실타래] 마파람의 '우리 가야 하는 길'
음악처럼 넓은 세계는 없는 것 같다. 어느 예술 장르든 감상자에 따라 취향이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음악은 감상자마다 하나의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자주 있다.

1986년 제10회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은 ‘마파람’의 ‘우리 가야하는 길’도 음악의 의외성을 잘 보여주는 흔치 않는 곡 중의 하나다. 필자는 ‘우리 가야하는 길’을 1986년 대학가요제 LP를 통해서 처음 접했다. 그 대회 대상은 유열이 부른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였고 금상은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였다.
 
두 노래는 이전의 대학가요제에서 그랬듯이 대회 직후 엄청난 히트를 쳤다. 대상 프리미엄으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가 먼저 각광을 받았고 ‘첫눈이 온다구요’도 바로 뒤를 이어 그해 겨우 내내 방송가를 장악했다. 이후 유열과 이정석은 가수와 방송인으로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대학가요제에서 동상 수상곡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예는 별로 없어 보인다. 제1회(1977년) 서울대트리오의 ‘젊은 연인들’과 제6회(1982년)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정도가 동상곡으로는 꽤 알려진 곡이다.
 
▲ 마파람의 '우리 가야 하는 길'이 수록된 1986년 대학가요제 LP     © 시사오늘 박지순


필자가 음반을 사서 듣지 않았다면 ‘우리 가야하는 길’을 지금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음반을 산 이후에도 필자는 이 노래가 방송에 나오는 걸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방송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필자가 방송으로는 전혀 못 들었다면 아주 드물게 나온 것만큼은 분명하다.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말이다.

‘우리 가야하는 길’을 필자의 턴 테이블을 돌려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충격’이었다. 필자가 심사위원이었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대상을 줬을 것이다. 대학가요제 수상곡에 이처럼 역동적이고 짜임새 있는 곡이 있을까, 곡이 가사의 의미를 이보다 잘 살린 곡이 있을까 싶었다.

마파람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지만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나와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우선 마파람은 ‘남풍을 뜻하는 바다 사람들의 은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된다. 대학가요제 음반 속지에는 구성원으로 계명전문대(현재 계명문화대, 대구 소재) 출신 전복자, 장정애, 이우찬, 곽용철, 정경훈, 주선애의 이름이 보인다.

계명문화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동아리 현황을 검색했더니 아직도 마파람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어서 무언가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들었다. 홈페이지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 공간, 대학·강변가요제 출전, 수상 경력(보유), 콘서트를 통해 불우이웃 돕기’라는 소개글이 적혀 있었다.

행정실을 통해 마파람 현 기수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행정실 직원은 적어도 3년 전에 이미 마파람이란 동아리가 없어졌다고 알려줬다. 대학의 음악 동아리 전성시대는 1990년대 초까지였던 것 같다. 마파람도 무수히 사라져간 음악동아리 중 하나가 되고 말았나보다.

필자가 취재해 보니 마파람은 1986년 대학가요제 출전 이전부터 대구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통기타 동아리였다.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가야하는 길’은 훌륭한 밴드 반주를 유감없이 들려주고 있는데 통기타 동아리 멤버들이 직접 연주를 한 것인지 아니면 음반 제작을 위해 음반사에서 연주를 맡아 준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통기타 동아리 멤버들이 연주했다고 하기에는 드럼과 베이스, 전기기타가 프로급 수준이어서 아마도 전문연주자들이 녹음을 담당한 듯하다. 필자가 1986년 대학가요제 공연 실황을 방송으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 가야하는 길’은 잔잔히 깔리는 건반에 남성과 여성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시작해 ‘들려온다 모진 바람 속에 들꽃들의 소리’ 소절부터 리듬이 급변하면서 강한 비트의 연주에 맞춰 보컬도 힘을 쭉쭉 뻗친다.

가사는 매우 시적이면서도 시련을 헤쳐 나가라는 관념을 짙게 머금고 있다. 1980년대 군사정권 하의 암울한 시대상을 생경하지 않은 저항적 언어로 표현하려고 했던 듯하다.
 
이처럼 빼어난 명곡이 발표 당시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시절 ‘힘 있는 분들’에게는 가사가 도발적이고 ‘위험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란 근거 없는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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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람19기 2011-09-03 22:54:36
현재는 없어져버린 동아리지만 제가 몸 담고 있을때만해도 활발했었는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러버려 추억으로 남겨진 마파람 동아리 입니다.
정확히 2006년도에 동아리 폐쇄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