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프라이머리는 시대흐름…박근혜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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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프라이머리는 시대흐름…박근혜 역행?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2.06.04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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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YS, 국민여론 앞에선 고개 숙여…朴 선택 주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 기자]

진산, 국민여론에 ‘40대 기수론’ 수용

#1. 1969년 11월 8일 오전 서울 남산 외교구락부. 신민당 원내총무이던 김영삼(YS)은 71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며 출마선언을 했다.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당시 상황은 돌파구가 필요했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재임에 성공한 뒤 헌법의 중임조항을 고쳐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 했다. 1969년 9월 14일 신민당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본회의장이 아닌 제3별관에서 3선개헌안을 단 6분 만에 변칙 처리했다.

개헌안을 막지 못한 신민당은 패배감이 자리잡아가고 있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김영삼은 노장층이 즐비한 보수정당에서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YS의 ‘40대 기수론’은 당내는 물론 당시 여당이던 공화당도 충격이 심했다. 특히 민주정치를 위한 선거를 필요악으로 생각했던 박정희는 40대와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것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당시 신민당을 장악하고 있던 유진산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기를 원했다.

신민당 내 최대계파를 이끌었던 유진산도 40대 기수론을 ‘구상유취(口尙乳臭)’라며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YS에 이어 김대중과 이철승까지 동참하자 40대 기수론은 국민들 사이에 ‘대세’로 자리잡아갔다. 신민당 경북도당 대변인이었던 유성환은 심야까지 ‘횃불토론’을 주도하며 40대 기수론에 힘을 보탰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유진산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유치송 이민우 등 진산계 인사들은 ‘불출마’를 번복하라며 유진산을 압박했다.

당시 유진산의 비서였던 A씨는  “불출마 선언을 취소하라. 경선하면, YS나 DJ, 이철승에게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유진산은 “신민당이 사당(私黨)이냐,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봐라”며 불출마를 고집했다.

YS, 국민에 설득당해 소선거구제 수용

▲ YS는 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통일민주당이 제2야당으로 추락할 것을 알고도 소선거구제를 수용했다. ⓒ시사오늘
#2.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제가 핵심이슈였다. 당시는 한 지역구에서 2인을 뽑는 중선거구제였다.

호남과 수도권 일부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평민당 만이 소선거구제를 고집했다. 전국에서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던 민정당이나 통일민주당은 당연히 중선거구제 유지를 찬성했다.

하지만 ‘군정종식은 소선거구제 일 때 가능하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통일민주당을 이끌고 있던 김영삼은 이 때문에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YS는 결국 소선거구제를 찬성했다.

중앙조사연구소 소장이자 YS 차남인 현철 씨는 ‘보고서’를 만들어 보이며 ‘중선거구제’를 유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보고서 안에는 ‘소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를 경우, 제1야당은 ‘평민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에 YS는 차남인 현철 씨에게 “국민들은 군정종식을 위해 중선거구제가 필요하다고 보냐, 아니면 소선거구제가 좋다고 보냐. 국민은 지금 소선거구제를 원하고 있지 않냐”고 되물었고, 현철 씨는 아무 답을 못했다.

YS는 “민주주주의에 적합한 법은 소선거구제”라며 김동영 원내총무에게 소선거구제 수용을 지시했고, 13대 총선은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치러져 통일민주당은 득표수는 평민당보다 많았지만 제2야당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최근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한 월간지에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소회했다.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은 처음부터 1구 1인의 소선거구제를 주장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지역기반이 약했던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은 중선거구제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YS의 입장이 돌변했다. 한완상 교수가 설득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어떤 논리로 YS가 설득 당했는지 궁금하다.”

필자는 이에 대해 이 전 국정원장에게 이렇게 답하고 싶다.

“YS가 설득당한 건 국민의 목소리다.”

▲ 박근혜 전 위원장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수용할 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뉴시스

2012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가 ‘핵’으로 떠올랐다. 정몽준 김문수 이재오 등 이른바 비박 주자들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오픈프라이머리가 국민의 정치참여 욕구를 수용하고 경선흥행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친박계 인사들은 야당 세력들의 역선택, 정당민주주의 훼손 등을 들어 반대하는 입장이다.

두 진영의 논리, 모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논리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목소리다. 최근 미디어리서치 조사를 보면 국민의 목소리를 알 수 있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국민들은 53,2%가 찬성했다. 반대는 30.3%였다. 유불리를 떠나 국민은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1971년 대선을 앞두고 유진산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불출마를 선언했다.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YS는 자신이 제2야당으로 추락하는 것을 알고도, 소선거구제를 수용했다. 국민의 목소리에 역행할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준 것이다.

정당사에서 이 두 사건이 의미하는 교훈을 박근혜 전 위원장과 친박계 인사들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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