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논리 대립, 전환기적 시대상황
대북지원, 정치가 경제논리 지배 혼돈
진실 차원 정치·경제논리 합치(合致)를
통일문제, 참 경제논리 공감대 넓혀 나가야
'구한말 사태' 교훈은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오늘 국가와 민족 현실에서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는 얼마나 정확하게 작동되고 있는가.
흔히 경제가 정치논리에 휘둘린다고 말할때 정치논리는 나쁘고 경제논리는 좋다는 전제가 깔린다. 이는 물론 잘못된 전제다. 정치논리라는 말은 으레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긍정적인 큰 뜻도 엄존한다. 또 경제논리는 항상 옳은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릇된 것도 있다.
그렇다면, 경제논리와 정치논리의 진정한 개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라와 민족의 장래와 관련하여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치논리에는 대승적 차원도 있다. 그것은 사회정의와 공동선으로 요약된다. 사회적 불평등이 크고 공익이 위협받을 때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세우는 것은 정치의 기본 책무이다.
또 경제논리는 효율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효율만을 앞세워 형평을 도외시하는 것은 그릇된 경제 논리다. 안정과 형평을 갖추면서도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참된 경제 논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참된 경제논리는 곧 대승적 차원의 정치논리와 연결이 되는 것이다. 안정과 형평은 사회정의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일방적 정치·경제논리는 위험
예를 들어보자.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란 차원에서 우리의 실상은 과연 어떤 것이며, 어디쯤 와 있는가.
한국에서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하는 대표적 사례로는 대북지원을 꼽을 수 있다. 아무런 국가경제적 효과도 없이 남북 화해란 정치적 명분만으로, 어디로 가는지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채 막대한 액수를 북한 정권 앞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꼽을 수 있다. 경제논리라면 기업이 일을 시켜서 능력이 안되고 업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 해고하고, 다른 이를 고용하거나 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다. 그러나, 한국에서 해고권은 사실 노조의 동의없이 사옹할 수 없도록 되어있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또 국가의 장래문제와 관련해서 보면, 한국의 대학 입시철 과별 경쟁률은 대체적으로 물리학과, 화학과, 수학과, 천문학과 같은 기초과학 관련 학과들의 경우 대단히 낮은 것이 특징이다. 기초과학으로는 짧은 시간에 직접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워 사회에서 외면받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 또한 기피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으로 계속 가다간 장기적 측면에서 국가경쟁력의 장래는 오히려 기초 기반의 취약화로 언젠가는 무너져 내릴 것이란 우려를 지울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참 경제논리가 무엇이 되어야 할 지를 다시 되묻게 한다.
경제논리 중심의 남북관계 정립을
통일문제도 '정치와 경제논리'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진단들이 최근들어 태동하고 있다. 민족주의적 측면의 통일논의를 지양하고 경제논리 중심의 납북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은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통일 개념은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오히려 남한내부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를 이룬다.
정권에 따라 우리 사회의 대북·통일정책이 출렁이면서 ‘남남갈등’으로 불릴 정도로 사회적 혼란을 낳고 있다. 통일의 전제 조건인 국민적 합의 구축과 신뢰 프로세스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남한 내부의 국민적 합의가 전제 되어야, 그 힘을 바탕으로 주변 강대국과 국제사회를 강력하게 설득할 수 있다.
통일 관련 전문가들은 ‘우리의 통일은 소원’이라는 식의 통일에 대한 감성적 강조보다는 국민적 합의와 동질성 회복, 상호 신뢰,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안적인 통일 패러다임 필요
즉, 21세기 국제질서는 이미 냉전을 종식하고 경제논리 중심으로 이행했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대안적인 통일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런 맥락에서는 한민족이 통일에서 생존과 경제발전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경제논리 중심 통일 패러다임'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북한을 통해 풍부한 천연자원과 구매력을 보유한 연해주 및 시베리아 지역으로의 진출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의 연결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해 5년 후 한국경제의 재도약 확보 ▲북한의 상품 구매력을 창조하고 남북이 경제협력 파트너로 발전하는 전략 등까지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남·북 접경지역도 미래 한반도 경제성장의 핵심 무대로 발전시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과거엔 단절과 경계의 상징이었던 DMZ 접경지역을 앞으로는 남북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발표된 접경지역 개발 계획을 보면 DMZ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평화공원을 조성하거나 관광명소로 만드는 구상이 주도했고, 남북한 경제협력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준비는 미흡했다.
남북의 경계선인 DMZ를 기념하는데 치중하거나 단절된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국토 발전계획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DMZ를 가로질러 남북을 연결하는 인프라 구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마치 생명체에서 혈관과 신경망을 잇는 봉합수술을 하듯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를 건설하고 물류·유통망을 형성해 남북의 산업을 연계하는 구상이 필요하다.
더 이상 경제제재를 핑계로 삼지 말고 남북이 함께 경의선 고속철도 노선설계에 착수하자. 우선 남측 구간만이라도 접경지역 도로·교량 건설공사를 추진하는 등 당장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많다.
정부정책과 언론보도 모두 혼란
하지만, 통일에 대한 합의는 존재해도 통일의 방식이나 통일 이후 사회체제에 대한 합의는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정부정책과 언론보도 모두 혼란에 빠져 있다. 통일문제에 대한 참된 경제논리의 공감대를 넓혀 나가야 함이 시급한 일이다.
한민족 전체의 관점에서 우리는 작금의 한반도 정세 기류를 다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구한말'을 떠올리게 된다. 밀려오는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이리저리 주체성 없이 정파와 시각에 따라 나라 전체가 사분오열하여 친일파, 친미파, 친러시아파, 친중파 등으로 갈기갈기 지도층이 찢어지고, 사회 문화적으로도 개화파니, 수구파니, '3일 천하'니 하며 한도 끝도 없는 정쟁을 거듭하다 끝내 통채로 망국의 비운을 맞고야 말았던 구한말의 사태는 우리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1백여 년 만에 다시 되풀이 되고 있는, 열강들의 한반도를 둘러싼 각축, 여기에 남북으로 갈라져 버린 한민족, 여기에 또 국가 정통성이 우위에 있다는 남한 내부의 정치 사회적 분열상 등 전반적인 민족 정통성 고수의 조건이 그 때보다 나아진 것도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한민족 전체적으로 오늘 이 시점은 분명 위기의 흐름이다. 1백년 만에 위기는 다시 오고 있다. 얽히고 설킨 위기의 실타래를 과연 어디서 부터 풀고, 민족자존과 독립번영의 길을 담보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민족 구성원에 던져지는 역사적 물음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국제적 쟁점이 되고 있는 북핵 사태의 해법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모색되는 것이 온당한 일이라 할 것이다.
필자가 본 북한 경제사회 실황 - '거짓과 궤변의 늪'
현실은 역시 중요하다. 필자는 노태우 정권 시절 남북고위급회담 때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동안 북한은 각론적으로는 다소 변화가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총론적인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당시 취재일기를 인용, 북한의 생생한 '현실'을 재확인코자 한다.
"필자를 담당하는 안내원은 '김형직(김일성주석의 아버지) 사범대학'의 사상사(思想史) 전공 교수라 했다. 아마도 짐작컨데, 필자의 개인적 성향을 사전 분석, 북한 당국이 이념적 색깔이 매우 투철한 그를 필자 담당으로 선정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듯 그 때 필자가 평양 방문중 생생히 목격하고, 듣고, 느끼고, 또 나눈 대화는 오늘의 냉정한 '남북 현실'과 관련해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일들이었던 것으로 회상된다.
우선, 필자는 그때 북한정권이 줄기차게 내세워온 이른바 '주체경제'의 허구성에 공개 분노한 적이 있다. 동행한 남측 일원들로 부터 방북성격도 있고하니, "좀 그만하라"는 제지를 받기도 했지만, 북측이 내세운 그 현장 실상은 필자로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로 받아들여 졌다.
즉, 북한 당국이 우리 일행에게 치적을 과시하기 위해 안내한 현대식 주민 이용물(평양산원 등)들이란, 남한에 비해 화려하기 그지없긴 했지만, 독일의 지멘스와 외국산 대리석 등 외제 일색의 수입장비로 온통 치장되어 있었다. 필자는 당시 일반 주민들의 더할 수 없는 고통과 기아로 치닫고 있는 북한 민생경제의 실상을 떠올리며, 그 현장에서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주체경제의 실상이란 말인가?'라고 공개 항변한 적이 있다. 그 상징물들은 그들이 말하는 '주체경제'의 치적이 아니라 거꾸로 북한 정권이 몰아가고 있는, 경제파탄 이념의 적나라한 상징물들이자, 생생한 증거로 필자는 보았다.
또 하나, 민주와 독재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필자는 안내원인 그 교수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라고 하여, 민주주의란 용어를 쓰고 있는데, 사실상은 수령독재를 하고 있으니, 국호가 잘못된 것 아닌가?"
안내원의 이에 대한 답변의 요지는 이러했다. "수령님께서는 자신이 지도자를 하고 싶어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추앙을 하니, 어쩔 수 없이 지도를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철저히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인권인, 대부분 인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들이 내세우는 '민주'란 개념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와함께, 필자가 방문중 목도한 주요한 현장중에는 산(山)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열차를 타고 평양역에 도착할 때 까지 수시간 동안 필자는 유심히 북의 산을 관찰했다. 모두가 벌거벗은 민둥산의 연속이었다. 북한측이 일부 관광특구로 전략상 정해 놓은 금강산과 백두산 일원 등은 좀 다르겠지만, 대부분 일반 산하의 모습은 참으로 참담함 그 자체였다. 치산치수는 국력의 근본이다. 한 국가가 과연 얼마나 갈 것인지, 그 흥망의 미래는 1차로 그 나라의 자연상태에서 감지되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라 할 것이다.
무슨 거창한 이념적 논쟁점을 완전히 배제하더라도, '북의 현장들'은 이미 실질을 벗어나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이렇게 허위와 거짓과 궤변의 늪에 깊이 빠져들어 있었다. 그것이 필자가 확인한 '북한'의 실체였다."
큰 정치·참 경제논리, 合致와 일관성 요구
오늘 전세계를 들끓게 하고 있는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법도 이런 실질의 각도에서 모색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큰 정치논리로 염원하는 한반도 민주복지사회의 건설이란 민족적 대명제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참 경제논리와 연결 될 수 밖에 없다.
참 경제논리를 따를 때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밝히는 큰 정치논리도 지속적으로 관철될 수 있다. 정책방향 뿐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수단도 큰 정치논리와 참 경제논리의 合致로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함이 정부가 가야 할 옳은 '대도(大道)'다. 이럴 때만이 국가와 민족의 비전도 여명을 밝힐 것이다. 한민족 통일문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
좋은 국가 사회란 바르고 큰 정치가 있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정직과 청렴성에 기초한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사회다.
지금 국민은 묻고 있다. 못난 정치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분열과 혼돈으로 치닫게 하던가. 정치가 언제쯤 본연의 영역과 신뢰성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지금은 각 분야 전문영역의 품격을 살려내고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가 아닌가.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의 대립, 그리고 이념의 충돌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먼 장래까지 염두에 둔, 진정한 애국애민의 길이 무엇인지, 큰 척도로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할 전환기적 시대상황에 우리 모두는 서있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