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고용 아닌 개인사업자 배송기사, '법의 사각지대' 놓일 가능성 높아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안지예 기자]
온라인 시장 확대에 따른 배송기사 수요 급증에 코로나19 여파로 빠른 배송이 필수 경쟁력으로 자리잡으면서 기업 간 ‘배송기사 모시기’ 경쟁이 불붙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로, 노동환경 개선 등에 대해 호소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와 이와 관련된 잡음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치솟는 배송기사 몸값
최근 이커머스 업체들은 빠른 배송을 위해 ‘직고용 시스템’을 일제히 강화하고 있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택배업체에 속한 택배기사들이 개인사업자인 것과 달리 업체가 배송기사를 직접 고용해 근로자 지위를 누리게 된다. 이와 함께 배송기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한 각종 복지 제도 시행에도 적극적인 분위기다.
대표적인 업체가 쿠팡이다. 쿠팡은 ‘쿠팡친구’(옛 쿠팡맨)을 직고용해 전국 단위의 로켓배송을 운영 중이다. 쿠팡에 따르면 쿠팡친구는 주5일 근무와 연차휴가 15일 이상이 보장되며, 본인·가족의 실손보험 가입, 여성 쿠친 케어센터와 핫라인 등 직원 복지 제도들을 도입해왔다. 차량, 차량유지비(유류비, 보험료 등), 통신비 등도 지원된다.
마켓컬리도 늘어난 물량에 대비해 새벽배송 담당 기사 대규모 채용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채용 규모는 세 자릿수, 만 60세 미만 운전이 가능한 사람은 경력과 성별, 학벌과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근무 시간은 주5일로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다. 연봉은 기본급과 제수당을 포함해 4700만 원이며 실적에 기반한 성과급과 1개월 만근 시 보너스 100만원 지급 등을 내걸었다. 이밖에 차량, 유류비 전액 지원, 복지포인트(연간 140만원), 생일·출산 선물, 단체 상해보험, 건강검진, 연차 15일과 법정 휴가 등 복지 혜택도 있다.
SSG닷컴은 네오센터, PP센터 배송을 실시하는 운송사들과 ‘배송 협의회’를 정례화하고, 이를 통해 배송기사의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배송 협의회는 SSG닷컴(화주)과 배송 위탁 계약을 맺은 운송사 소속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협의기구로, 법인 출범 이전인 2014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배송 협의회에서는 지난 6월부터 코로나19로 배송 물량이 증가한 것을 반영해 배송기사 인센티브 지급·기본 운송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정부 정책에 따라 코로나 19 백신을 맞은 배송 근로자에게 해당일 유급 휴무를 제공하기로 협의했다. 이에 따라 운송사는 배송기사가 1차, 2차 백신 접종 후 휴무 진행 시 기본 운송료를 지급하고 있다.
처우 개선에도 노동문제 불씨 ‘여전’
이처럼 배송기사 몸값이 치솟고 전반적인 처우 개선을 약속하는 기업들이 늘고는 있지만 노동 문제와 관련한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눈치다. 특히 이전과 달리 쿠팡뿐만 아니라 주요 이커머스 업체 전방위적으로 논란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앞서 쿠팡은 처우 논란과 배송기사 사망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최근에는 SSG닷컴 배송노동자 처우를 두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가 나섰다.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는 지난 1일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에서 근무하는 배송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들은 대형마트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지만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배송노동자는 매일 10시간 이상, 주 6일을 일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잦은 출하시간 지연에 쫓기듯 배송해 사고 위험이 높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국내 주요 온라인 유통업체 배송기사와 물류센터 종사자 4989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배송기사 중 52.3%는 '주중 점심을 못 먹는 날이 있다'고 응답했다. 주당 점심을 거르는 횟수로는 '2~3회'(23.2%)가 가장 많았다. 하루 배송 물량은 비성수기 기준 '평균 200~300개'라고 응답한 비율이 36.2%로 가장 많았다. 배송물량이 급증할 때의 대처방법으로는 '연장근로 등을 통해 스스로 해결한다'는 응답이 50.4%로 가장 높았다. '회사가 물량을 조절해주거나 인력을 지원해준다'는 답변은 45.4%였다.
업계에서는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배송기사들의 과로가 빈번해지고, 노동환경이 산업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종의 ‘성장통’을 앓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직고용이 아닌 개인사업자의 경우 배송기사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공산이 크다고 판단한다.
업계 관계자는 “배송 시간이 시간 단위 싸움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배송기사들을 둘러싼 노동 문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도 이를 리스크로 보고 처우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현장과의 괴리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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