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與언론, '시장지배사업자' 표적입법 탄압
언론 세무조사 충격…‘신문告示’ 진통
군사정권 방불 언론통제…'국제사회가 지탄'
국제기자연맹의 바른소리
“韓 언론재갈법, 민주 국가에선 처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언론개혁’이란 말이 요즘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은 없다. 신문방송은 물론 정치권,시민단체,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서 온통 언론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 언론단체들의 격한 충돌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정국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 언론은 그동안 적지않은 진통을 겪어 왔다. 특히 과거 정권들의 이른바 '언론개혁'을 둘러싼 정치권력과 민간의 충돌은 숱한 논쟁과 역기능의 파란을 일으켰다. 오늘에도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남긴다. 지나온 '언론개혁' 파행 현대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전면적 통제기의 군사 정권기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민주화 정권기다. 이 정권기에도 모두가 편법적으로 이른바 언론개혁을 이용, 언론자유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했다. 역대 각 정권 각 정부의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란 것도 모습을 드러낼수록 ‘후진’만 두드러져 보였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땐 언론개혁을 내세워 불편한 관계의 언론사들을 압박하는 방법을 취했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정부 조직과 기관을 상대로 한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아예 제한하려 기를 썼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일부이긴 하지만, 탄압의 일환으로 끈질기게 언론사 인사에 직접 개입했다.
권력은 유한하고 언론의 책무와 역할은 영원하다. 정부는 언론의 역사, 한국 현대사의 언론통제 시행착오 부터 제대로 배우고 정책을 반성, 실행하라.
취재위협 군사정권 방불
과거를 돌아보자. 2007년 8월, 노무현 정부의 경찰이 내세운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언론을 통제하려는 권력기관의 야심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총칼을 들지 않았을 뿐, 취재기자들을 위협하는 수준이 서슬퍼렇던 군사정권을 방불케 했다.
언론통제를 위한 당시의 국정 홍보처 지침은 △기자의 사무실 출입 금지 △직원들에 대한 대면 접촉 때 사전 공문 발송 △직원과의 전화취재 때 홍보관리관실 경유 △브리핑 시간 외 브리핑룸 폐쇄 등이 주 내용이었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언론개혁이라 불렀다. 정부의 각 부처나 기관들은 이참에 이같은 국정홍보처 지침을 핑계삼아 취재로부터의 자기 방어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기세를 보였다. 자유민주국가의 정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경찰의 자세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에 대한 정부의 속내를 경찰 나름대로 파악한 결과다. 경찰은 기자들의 반발과 비판이 거세지자 언론통제 지침들을 결국 철회했다. 다시 짚어봐도 그 지침들은 사전 취재 통제였다.
국가권력 감시는 언론의 책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기관이나 조직의 내부 정보와 그 활동에 접근하는 게 필수적이다. 브리핑에 취재활동을 국한시키려는 정부 발상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DJ, 신문 소유와 내부구조 일률적 규제 주장
언론개혁에 관한 지난 교훈은 역시 중요하다. 우리 현대사에서 '언론개혁'이 대두할 때마다 그 쟁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2001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직접 언론개혁을 강조했다. 언론개혁의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한 것은 예사롭지 않았다.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직접 언론개혁을 요구하고 그 방법론까지 제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언론자유를 제약하는 역기능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치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었다.
김 전대통령의 언론개혁안 가운데 범 사회적 개혁논의를 위해 언론발전위원회 등을 설치하자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이런 기구를 김 전대통령 요구대로 국회에 두는 것이 정치적 영향 배제 등을 위해 바람직한지는 따져 봐야 할 대목이었다.
특히, 한층 중대한 문제는 김 전대통령이 이론적ㆍ 역사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없는 언론 개혁방안을 미리 전제로 삼은 것이다. 공익성과 공정성 확보를 명분으로 신문 소유와 내부구조 등을 일률적으로 규제하자는 주장 등은 민주언론 이념과 신문의 자유에 본질적으로 반하는 위험한 논리였다.
대통령의 기본인식, 잘못된 자의(恣意)
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김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기본 인식이 자의적(恣意的)이라는 점이었다. 김대통령의 말을 뒤집어보면 한국의 언론이 불공정한 보도와 무책임한 비판을 일삼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그러나 집권자의 입장에서 '불공정 보도와 무책임한 비판'을 거론하는 것부터 공정치 못하다. 언론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다. 그런데 견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최고집권자가 언론이 불공정하고 무책임하다고 단정한다면 그야말로 일방적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 선진국 어디서나 신문의 소유형태와 목적 노선 등은 사적 자유의 영역이다. 공공소유로 간주되는 방송은 공익을 위한 사회적 통제가 원칙이지만, 신문은 이념과 시장의 자유경쟁에 맡기는 것이 변치 않는 원칙이다. 민주주의와 언론 발전의 모델인 영국의 양대 권위지 가운데, 진보좌파인 더 가디언은 공익재단 소유지만 보수우파인 더 타임스는 개인자본 소유다. 이 가운데 어느 쪽이 '모범적'이고, 더 공정한가를 논하는 것은 무지하고 무의미하다.
개혁을 외치다 자유를 해치는 위험을 피하려면, 개혁논리부터 올바로 가다듬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하고 순수한 의미의 언론개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 정권 의도와 연관
지난 2001년 1월 31일 국세청이 신문ㆍ방송ㆍ통신 등 국내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방침을 밝혀 관심사가 된 적이 있다. 자산이 100억원 이상인 대기업은 원칙적으로 5년에 한번씩은 정기적으로 세무조사를 받도록 돼 있는 규정에 따른 조치라고 했다.
이 조치는 김 전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정권 차원 언론개혁과 연관짓는 시각 또한 없지 않았다. 반여(反與) 신문의 비판력을 제어하기 위한 언론개혁이라면 그 당위성이 크게 희석될 수밖에 없다. 지난 99년에도 언론문건이 실재한다며 야당의원이 폭로했으나 실체 규명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문민정부 시절인 지난 94년에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뒷말을 남긴채 뚜렷한 결론없이 끝났다. 국세청의 '정도 세정'의지가 결코 왜곡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될 것임에도 결과는 그러했다.
반여(反與) 일간지 그룹 제재 방안
특히, 김 전대통령 회견을 계기로 '반여(反與)언론의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제어하기 위해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는 문건이 있다는 보도가 충격을 주었다. 보도에 따르면 여권은 신문을 논조에 따라 반여,중립,친여 세 그룹으로 분류하고 '반여 그룹'일간지들의 비판 수위가 매우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는 것이다.
여권내부에서 10대 중앙일간지를 반여(反與), 중립, 친여(親與)로 분류해 이중 ‘반여그룹’ 일간지들의 권력핵심에 대한 비판을 제어하기 위해 ‘언론개혁운동’을 사회적 이슈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을 요지로 3건의 언론개혁 관련 문건을 작성했다는 보도는 대단한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의 문건에서 대책으로 제시된 내용들을 보면 “언론의 비판수위를 낮추고 대통령등 권력핵심에 대한 비판을 제어하는 방어벽(조율 시스템) 설치가 필수적”, “먼저 당정의 대대적 쇄신을 통해 새로운 여권진용을 구축한뒤 정공법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명분있는 방법”등 이른바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길들이기’ 방식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구체적이고 조직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일었던 이 언론대책 문건 파문은 우리가 여전히 성숙되지 않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의심케 했다. 신문의 논조나 성향을 네 편 내 편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내편이 아닌 신문에 대해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는 식의 음모와 공작이 횡행하는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같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언론자유, 국민의 알권리, 정부의 도덕성 등 민주주의의 중심적 가치들에 대한 위협이자 도전이었다. 누차 강조하거니와 언론의 기능은 비판에 있다. 정부가 그 비판을 싫어하는 것 까지는 좋으나, 그 비판의 원천을 봉쇄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반도덕적이며 반민주적인 행위다.
노무현 대(對)언론관
노무현 시대는 어떤가. 노무현 민주당 대선경선 후보가 지난 2002년 4월 인천지역 경선합동연설회에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폭탄선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노 후보의 이같은 선언 배경은 이들 신문이 자신의 평소 신념인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 주장을 포기토록 협박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경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허위과장해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노 후보는 인천경선 다음날 치러진 경북경선 직후 신문사에서 협박한 사실은 없다고 밝히고 사과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보였다. 신문사 소유지분을 제한해야 한다는 노 후보의 소신은 2000년 11월 언론개혁 시민연대에서 국회에 입법청원한 정기간행물등록법 개정안에 들어가 있었으나 언론계는 물론 법조계, 학계 등의 강력한 반발과 정부·여당까지 위헌소지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미 폐기된 사항이었다.
노 후보의 언론과의 전쟁(?)은 민주당 경선후보인 이인제(李仁濟) 후보가 그 해 8월 1일 노 후보와 기자 5명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언론사 국유화와 동아일보 폐간 및 김병관 명예회장의 퇴진 등을 주장했다는 폭로가 있은 다음부터 격화된 것이다.
이 기간중 노 후보의 대언론관에 문제가 된 것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한 언론사 국유화문제와 특정신문을 대통령이 독단으로 ‘폐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 후보의 언론에 대한 무차별적 융단공세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예측을 불허했다.
노무현과 언론자유 침해
노 전대통령 집권 이후, 정부가 공보관회의에서 결정한 '기자실 운영 규제 방안'은 기자들의 정부 부처 사무실 방문취재 금지, 기자실 개방 및 브리핑제도 활성화로 축약할 수 있었다.
정부의 새 취재지침은 언론보도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오고 결국에는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기자의 사무실 방문취재 금지와 공무원 면담 예약제는 사실상 브리핑 외에는 취재원에 대한 접근 금지나 다름없다. 면담자의 신분이 노출되고 면담장소마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떤 공무원이 소신껏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행정부처에 대한 문제점이나 비판,내부 고발은 기대하기 어렵고 언론매체에 대한 차별마저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모든 것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속내는 '정부는 투명하고 깨끗하니 믿고 브리핑대로 받아써라'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이는 독선이며 권력의 편의주의적 발상이었다. 언론의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기능을 봉쇄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언론통제로 비춰지는 새 언론취재 시스템 도입 이전에 언론자유의 확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환경조성부터 해야 한다. '
특히 당시 전 부처로 확대 실시되는 정부의 새로운 브리핑제도는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할 우려가 크다. 언론개혁 차원에서 관·언 유착을 개선하고 정보독점 상태를 해소하겠다는 게 새 제도 도입의 취지라지만 이 제도는 비판과 감시로 이루어지는 정부와 언론 관계의 본질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았다.
우선 브리핑을 제도화했으므로 공무원에 대한 기자의 방문취재를 제한한다는 발상부터가 본말을 전도하고 있다. 브리핑제를 도입한 것은 정보공급의 확대라는 측면을 갖는다고는 하지만 여기엔 여러 전제가 충족돼야만 한다. 방문취재만 금지될 경우 정부와 언론 사이의 정보유통은 정부쪽으로 일방화할 소지가 많다. 새 제도가 발전적 언론환경 개선이 아니라 언론통제의 유혹에서 비롯된 것이란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다.
'3개 신문 죽이기' 악법(惡法)
2004년 12월 당시 열린우리당이 신문법안을 다시 수정한 것도 ‘언론개혁’을 내세운 이 법안이 실제로는 비판신문을 겨냥한 악법(惡法)에 지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당초 이 법은 일간신문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30% 이상이거나 3개사의 점유율 합계가 60% 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해 각종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이 조항도 공정거래법이 정한 기준인 1개사 시장점유율 50%, 3개사 합계 75%를 훨씬 낮춰 적용해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새 기준으로도 동아 조선 중앙일보 3개사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되지 않자 법안을 또 고친 것이다.
이것은 특정대상을 미리 정해 놓고 법조항을 멋대로 재단하는 ‘표적입법’의 전형이다. 이번에 점유율 계산대상에서 경제지, 지방지 등을 모두 빼버리고 서울에서 발행되는 10개 종합일간지로 한정한 것은 여당이 ‘3개 신문 죽이기’라는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낸 꼴이다.
여당은 일부 신문에 의한 여론 독과점이 심하고 종합일간지만이 ‘내셔널 어젠다(국가적 의제)’를 다루기 때문에 종합일간지로 국한했다지만 신문 가운데 종합일간지만이 여론형성 기능을 갖는다는 말은 근거 없는 억지였다. 이런 악법이 현실화되면 우리 사회는 신문의 권력 감시 기능 약화, 언론자유 위축, 민주주의 후퇴라는 치명적인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언론사 인사 개입
박근혜 시대의 사례도 되돌아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시 JTBC 손석희 앵커를 자르라고 압박했다고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폭로한 적이 있다. 홍 전 회장은 유튜브에 올린 인터뷰 동영상에서 “구체적으로 받은 외압이 다섯 번에서 여섯 번 된다. 이 중 대통령의 압력도 두 차례나 있었다”고 공개했다. 이어 “외압을 받아서 (손석희) 앵커를 교체한다는 건 제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홍 전 회장 측근이 또 다른 인터뷰에서 전한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는 “2016년 2월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독대했는데, 이날 대화의 절반은 손석희를 갈아치우라는 압력이었다”고 했다. 이 부회장이 이같은 압박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자 박 전 대통령은 JTBC에 광고를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공영방송 등 언론사 인사와 보도에 개입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통해 방송사를 장악한 뒤 보도를 통제했다. 세월호 사건 때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 비판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청와대는 이런 장난을 치고도 정상적 업무라고 주장했다.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했을 때도 청와대가 통일교 재단에 사장 교체를 압박했다는 증언이 나온 바 있다.
이들 외에 어느 언론에 대해 어떤 압력이 더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두 정부의 언론 개입 전모를 밝혀내 바로잡아야 한다.
대선 레이스, 유리한 전선 구축 의도
이번 문재인 정권의 이른바 '언론개혁' 입법은 어떤 수준이며, 상태인가. 여당의 언론개혁 드라이브가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면서도 계속 속도를 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달 30일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목적이란 비판을 받는 언론중재법을 강행 처리하려 했지만 내부 이견으로 일단 무산됐다.
법안은 대선정국에서 새로운 뇌관이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실제 대선 레이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른바 '노무현 정신'이 화두로 거론되면서 유리한 전선을 구축해 나가려 하고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은 2000년대 중반에 발생한 기자실 대못을 연상시킨다. 당시 기자들은 정부청사 복도 또는 로비에서 기사를 썼다. 출입처 기자실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여당 지도부는 정기국회에라도 이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여론의 화살만 피한 뒤 다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자유언론 투쟁에 나섰던 원로 언론인들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1974년 유신독재 시절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해직된 뒤 결성한 ‘동아투위’를 뿌리로, 1980년 해직된 언론인들과 언론노동운동에 헌신한 인사들이 결합한 단체다. 참여 인사들은 한국 언론민주화 투쟁의 산증인이라 불릴 만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원로 언론인들의 고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해외 반응도 일제히 비판적이다. 미국기자협회(SPJ) 공동의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을 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극도의 실망감을 느낀다. 독재 국가는 항상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법은 기자들에게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며 “일반적으로 정치인은 메시지 통제를 원하고 이게 그러한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프랑스 르몽드와 일본 마이니치 신문도 “다수당의 과도한 법 제정” “정권 비판 언론을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국제언론인협회(IPI)·세계신문협회(WAN-IFRA)·국경없는기자회(RSF) 등도 언론재갈법 철회를 촉구했다.
언론 길들이기, 본말 전도
그간 한국기자협회와 관훈클럽·신문협회·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국내 언론 단체뿐 아니라 시민단체, 법조계, 학회도 언론법을 강하게 반대했다. 여권과 가까운 민변과 정의당도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신문협회와 국제언론인협회, 국경없는기자회, 외신기자클럽 등 국제 언론단체들까지 줄줄이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민주당 대표는 “뭣도 모른다”고 깔아 뭉갰다.
가짜뉴스의 본령이 어디인지부터 따져 보자. 임명 당시 수많은 거짓말로 국민을 속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검찰이 자기 계좌를 들여다봤다며 사실을 날조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대북 원전 지원 문서가 박근혜 정부부터 검토된 것이라던 윤준병 민주당 의원 등 가짜뉴스를 만들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 앞장선 것은 다름 아닌 집권세력이다. 이제, 검찰과 사법에 이어 언론까지 적폐로 몰아서야 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언론개혁은 어느 것 하나 이룬 것 없는 상황에서 언론 길들이기에 불과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게다가 가짜뉴스의 정의라든가 악의성, 고의성, 중대과실 여부, 손해액을 어떻게 가릴지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고 거대 여당이 밀어붙인다면 선무당이 사람 잡고, 배가 산으로 갈 판이라 심히 걱정스럽다.
여권이 그 책임을 언론에 떠넘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소불위의 ‘선출 권력’을 검찰·사법을 넘어 언론에도 휘두르겠다는 뜻이다.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려 사상을 통제하고, 행동까지 구속하려는 목적 아닌가. 베네수엘라 등 민주국가에서 독재정권으로 후퇴했던 많은 나라가 이런 과정을 겪었다.
중국과 북한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 언론인들이 반대하는 악법을 강행하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정권 연장을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면 되레 정권의 수명이 단축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언론개혁을 바란다면 입법 독주를 멈춰야 한다.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와 숙려를 통해서만 언론개혁은 성취될 수 있다.
'독자에게 떳떳한 신문' '역사 앞에 당당한 언론'으로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사안은 그만큼 신중하고, 정교하게 다뤄져야 한다. 충분한 숙의와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언론자유는 언제나 변치 않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현 여권에선 이 정신을 정면으로 어기면서 자신들이 내놓은 법안을 '언론개혁법'이라 부른다. 야권에선 '언론재갈법'이라고 맞선다.
이대로 처리된다면 이 법은 자칫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을 위축시킬 소지가 있다. 이른바 가짜 뉴스를 잡으려다 언론의 본연 기능을 훼손할 수 있다. 언론관련법은 언제나 민주주의 기능과 직결된다. 신속한 처리가 능사는 아니다. 민주당은 집권여당이다. 야당과 언론계가 왜 한목소리로 반대하는지 제대로 들어봐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막는 최후의 보루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수정헌법 1조에 표현의 자유를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독자인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비판하는 데 있다. 다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지양하고 잘못된 보도는 과감히 시정하는 자세는 견지해야 한다. 정부도 언론의 역할 자체를 폄하하거나 위축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언론도 독자에게 사랑받는 언론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한다. 올해 신문의 날 표어처럼 '독자에게 떳떳한 신문' '역사 앞에 당당한 언론'을 위해 더욱 분발할 것이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