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관람기③] 민주당, 결선투표 갈까…YS·이인제 사례로 본 경선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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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관람기③] 민주당, 결선투표 갈까…YS·이인제 사례로 본 경선 결과는?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1.09.13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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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결선투표 가능성?…최대 격전지, 호남 대전에 달려
결선투표 역전 가능성?…관건은 결선투표 전 후보 간 연대
1971년·1979년, 2위 반란…1997년, 대세론 꺾지 못한 연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대선 관람기’ 세 번째는 더불어민주당의 결선투표 가능성 및 이낙연 전 대표의 역전 가능성이다.ⓒ시사오늘 김유종
‘대선 관람기’ 세 번째는 더불어민주당의 결선투표 가능성 및 이낙연 전 대표의 역전 가능성이다.ⓒ시사오늘 김유종

20대 대통령 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더불어민주당은 9월 4일을 시작으로 10월 10일 최종 후보가 선출된다. 국민의힘은 9월 15일 1차 컷오프를 시작으로 11월 15일 당선자를 발표한다. 치열한 선거전. <시사오늘>이 흥미요소를 간추려 전한다. <편집자주>

 

이낙연의 ‘반전 드라마’는 가능할까?


ⓒ연합뉴스
호남 지역의 선거 결과에 따라 결선 투표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전망이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1차 슈퍼위크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승리로 12일 막을 내렸다. 선거 결과 이 지사가 25만3762표(누적 득표율 51.41%)를 얻어 과반을 차지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15만 6203표(31.08%)로, 1차 결과 20.33%포인트 격차다.

이로써 이 지사는 추석 직전 전반전에서 우선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다. 그는 경선 직후 “기대보다 많이 나왔다”며 “과반 지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전·충남(54.81%) △세종·충북(54.54%) △대구·경북(51.12%) △강원(55.36%) 등 지역 순회경선에서 대의원·권리당원으로부터 과반을 획득한 데 이어, 국민들과 일반 당원이 참여하는 선거인단(51.09%) 역시 과반을 달성했다.

반면 이 전 대표는 “민심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반전을 꿈꿨다. △대전·충남(27.41%) △세종·충북(29.72%) △대구·경북(27.98%) △강원(27.0%) 등 지역 순회경선에서는 대의원·권리당원으로부터 20%대의 득표에 그쳤다. 그러나 국민들과 일반 당원이 참여하는 선거인단으로부터 31.45%를 획득하며 처음으로 30%대에 진입했다.

아직 이 지사의 득표율이 과반의 경계에 있다는 점, 그리고 이 전 대표의 출신인 호남이 남아있다는 점이 결선 투표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이낙연 캠프도 “반전 드라마는 9월 25일, 26일 광주·전남·전북에서 펼쳐질 것”이라며 호남이 최대 격전지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오영훈 수석대변인은 “출발은 27%의 격차로 시작했지만, 20%의 격차로 누적 지지율 31%를 돌파하며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었다”며 반전을 꿈꿨다.

실제로도 1차 선거인단에 참여한 국민·일반당원 64만 1922명은 전체 200만 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광주·전남(12만 6165명)과 전북(7만 5367명)을 합친 호남의 대의원·권리당원은 총 20만 1532명으로 최대다. 이는 1차 슈퍼위크에 참여한 지역 4곳의 권리당원·대의원을 합친 10만 7375명의 약 2배에 달한다. 의원직 사퇴를 하면서까지 배수진을 친 이 전 대표의 호남 선거 결과에 따라 결선 투표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편 이후 2차 슈퍼위크 결과는 10월 3일, 3차 슈퍼위크 및 최종 결과는 10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때 과반 득표한 후보가 없을 시 4~5일 후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역대 결선투표 결과는?…관건은 후보 간 연대


2위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역전할 가능성이 있을까. 지금껏 역대 선거에서는 수많은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어느 야구 감독의 말처럼, 선거 결과 역시 막이 내릴 때까지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음을 역사가 증명하는 셈이다.

YS는 패배 했지만, 결과에 승복하고 DJ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 지원유세를 다녔다.ⓒ시사오늘DB
YS는 1971년 결선 투표에서 패배했지만, 결과에 승복하고 DJ를 위해 지원유세를 다녔다.ⓒ시사오늘DB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1971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당시 신민당의 대권 주자는 김대중(DJ)과 김영삼(YS) 후보였다. 1970년 전당대회에서 두 사람의 1차 투표 결과는 885표 중 YS 421표와 DJ 382표로 YS가 39표 앞섰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과반인 443표에 못 미쳤기 때문에 곧바로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그러나 2차 투표 결과 총 884표 중 DJ 458표, YS 410표로 역전극이 펼쳐졌다.

결선투표 역전에 대해 YS는 회고록을 통해 “1차 투표 직후 김대중과 이철승 사이에 당권을 건 흥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1차 투표에서 나온 78표의 백지투표 중 상당수가 나를 밀기로 약속했던 이철승의 표(343쪽)”이라 회고했다. 김대중의 대권과 11월에 있을 이철승의 당권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은 상호 합의 각서를 교환했다는 설명이다.

1979년 신민당 총재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둔 신민당사의 모습.ⓒ김영삼민주센터
1979년 신민당 총재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둔 신민당사의 모습이다.ⓒ김영삼민주센터

신민당의 당 총재 선거가 있던 1979년에도 반전 드라마가 있었다. 1차 투표 결과 총 751표 중 이철승 292표와 YS 267표로, 모든 후보가 과반인 376표에 미달됐다. 곧바로 진행된 결선투표 결과 YS 378표, 이철승 367표를 획득하면서 11표 차로 역전했다.

이때도 1·2차 투표 사이 각 후보들 간 연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결선투표를 앞두고 3위였던 이기택이 YS를, 4위였던 신도환이 이철승과 손을 잡았다. 1차 투표 결과를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이철승+신도환(292+87=379표)이 김영삼+이기택(267+92=359표)을 앞서야 했다. 그러나 역사는 “새벽을 알리는 모가지를 비틀어도 민주주의의 새벽은 오고 있다”던 YS의 반(反)유신과 선명 야당 회복의 손을 들어줬다.

ⓒ연합뉴스
1997년에는 대항마로 떠오른 이인제 후보가 1위였던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결국 꺾지 못했다.ⓒ연합뉴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2등 편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1997년에는 대항마로 떠오른 이인제 후보가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결국 꺾지 못했다. 당시 신한국당은 1차 투표 결과 이회창 40.9%(4955표), 이인제 14.7%(1774표)였다. 이에 총 투표수 12104표의 과반인 6052표를 넘는 후보가 없어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이인제는 4622표(40.0%)로 1차보다 25.3%포인트 더 득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회창의 6922표(60.0%)를 꺾지 못했다.

당시에도 후보 간 연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전당대회 전날 이인제는 4자연대 결성을 발표했다. 이에 1차 투표 당시 3위를 했던 이한동(14.6%), 4위 김덕룡(13.8%), 5위 이수성(13.6%)은 합의에 따라 결선투표에서 이인제를 지원했다. 그러나 반(反)이회창 연대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결선투표에서 이회창 대세론을 꺾지 못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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