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⑦] 박경리 토지와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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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⑦] 박경리 토지와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9.2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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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토지'
드라마화하면서 소설 토지를 재현한 최참판댁
작가의 문학과 삶을 기려 박경리 문학관 건립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인류 역사상 어느 한 시절도 굴곡지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조선조 말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6·25를 거친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암울한 역사의 격동기였다. 유년 시절 할머니의 구술로 집안 가족사를 들으며 그 시절 시대상을 간접 경험했고, 학교 교육과 책을 통해 폭넓은 인간사를 익힐 수 있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기엔 여전히 살아있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다.

경남 하동 악양 평사리 박경리 문학관. ⓒ정명화 자유기고가
경남 하동 악양 평사리 박경리 문학관. ⓒ정명화 자유기고가
박경리 작가의 동상에 새겨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박경리 작가의 동상에 새겨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대학 졸업 즈음, 고향집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박경리의 '토지' 한 질을 접하며 과거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더욱 역동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 문학 문외한인 난 토지를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았다. 그토록 높이 평가한 토지와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을 기리며 평사리 박경리 문학관을 방문했다. 최참판댁은 수차례 찾았지만 문학관은 개관이래 처음이다.

전국에 박경리 문학관이 3곳 있다. 작가가 탄생하고 뼈를 묻은 통영에는 토지를 통해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고(故) 박경리를 기념하고 고향인 통영을 소개함으로써,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2008년 타계 후 기념관이 2010년에 설립됐다.

그리고 작가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 역시 2010년에 개관했는데, 박경리 옛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작가가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의 단구동으로 이사해 살면서 소설 '토지' 4부와 5부를 집필하여 1994년 8월 15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곳이다. 마지막으로 하동 평사리 박경리 문학관은 작가의 문학과 삶을 기리기 위해 2016년 개관했다.

평사리 박경리 문학관 마당에 드리운 '창조'. ⓒ정명화 자유기고가
평사리 박경리 문학관 마당에 드리운 '창조'. ⓒ정명화 자유기고가
문학관 내 박경리 작가의 초상화. ⓒ정명화 자유기고가
문학관 내 박경리 작가의 초상화. ⓒ정명화 자유기고가
작가와 가족 사진. ⓒ정명화 자유기고가
작가와 가족 사진. ⓒ정명화 자유기고가
박경리 선생의 일대기. ⓒ정명화 자유기고가
박경리 선생의 일대기. ⓒ정명화 자유기고가

한국 문학의 최고봉 '토지'

초등학교 시절 보물섬, 소공녀 같은 동화를 즐겨 읽었는데 그렇게 나의 독서 여정이 시작돼 여고시절 정점을 찍었다. 국어시간에 추천도서로 권장한 세계문학과 국내 장단편 소설을 통해 문학적 소양과 시야를 넓혀갔다.

세계적인 대문호 '헤르만 헤세에서 도스토옙스키' 등을 거쳐 국내에선 '김동리 현진건 이청준' 등 작품과 만나며 독서의 묘미에 빠졌다. 최인훈의 광장을 읽은 후엔 '와 이거다' 하며 전율과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리곤 토지, 세계 문학의 독서 비중에 비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 문학에 대한 나의 편견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독서 여정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된다.

어린 시절 소공녀를 읽었던 고향집 뒷방에서 성인이 된 난 겨우내 토지에 심취해 동고동락하며 하얀 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했다. 그만큼 토지는 날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대단했고, 무인도로 떠날 때 지참할 한 가지 도서 목록을 선택하라면 단연코 토지라고 할 정도다. 1970년대 후반 발간된 전반부만 읽었기에 전편을 완독 하진 못했지만, 인터넷 자료를 토대로 줄거리와 의미를 살펴보며 40여 년 전 충격과 감동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맞은 편, 수묵화로 표현한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도. ⓒ정명화 자유기고가
맞은 편, 수묵화로 표현한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도.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삶이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 토지. ⓒ정명화 자유기고가
삶이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 토지. ⓒ정명화 자유기고가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토지는 고 박경리 작가가 1969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1994년에 전 5부 16권으로 완간한 대하소설이다. 조선의 몰락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새로운 시대에, 지주 계층이던 최 씨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그 당시 민중의 삶과 한을 폭넓게 그려냈다.

지난 시대 한민족이 겪은 고난의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해 낸 점에서 '토지'는 역사소설인 데다가,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탐구로서 더 큰 근본적인 의미를 띤다.

최참판댁 문간채에 걸린 박경리 선생 작가 연보.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참판댁 문간채에 걸린 박경리 선생 작가 연보. ⓒ정명화 자유기고가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인 최참판댁 입구 마당 정경. ⓒ정명화 자유기고가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인 최참판댁 입구 마당 정경. ⓒ정명화 자유기고가

제 1부, 평사리 지주 최참판댁 몰락과 신분질서의 붕괴

제1부의 시간적 배경은 1897년 한가위부터 한일합방 직전까지의 십여 년 동안, 하동 평사리라는 전형적인 농촌을 무대로 조선말과 일제에게 국권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봉건적인 신분질서의 붕괴와 최참판댁의 몰락 등을 주요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평사리의 전통적 지주인 최참판댁과 그 마을 소작인들을 중심인물로 하여 최참판댁의 비밀(최치수의 살해사건 등)과 조준구의 계략, 귀녀·김평산 등의 애욕 관계 등이 한데 얽혀 한말의 사회적 전환기의 양상이 묘사된다.

사랑채 입구 솟을 대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사랑채 입구 솟을 대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토지는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해 오는 최참판댁에서 며느리인 별당 아씨가 하인 구천이(일명 김환)와 눈이 맞아 도망친 데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하인 구천이는 별당 아씨의 시어머니이자 이 집의 어른인 윤 씨 부인이 절에 갔다가 동학군의 장수 김개주에게 겁탈 당해 낳은 아들임이 차차 밝혀진다.

오만하고 날카로우면서 우울하고 냉소적인 성격의 최치수는 도망간 아내와 구천이를 붙잡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가 사냥을 빙자한 수색을 벌였으나 결국 헛되이 돌아오고 만다. 무남독녀인 어린 서희는 엄격하고 자애로운 할머니와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하인인 봉순이와 길상이를 동무하여 자란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이 마을의 농부들은 모두 최참판댁의 소작인들로서 그중 중심적 인물로 등장하는 용이가 있다. 그는 농부답지 않게 훤한 용모를 지닌 사람으로서 성실하고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다. 용이는 어려서 함께 자란 무당의 딸 월선이와 사랑하는 사이이나 어머니의 반대로 억세고 강짜가 심한 강청댁과 결혼하여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한다.

최참판댁에는 윤 씨 부인의 성실한 심복 김서방과 김서방댁, 찬모 봉순네와 봉순이, 똑똑하고 착실한 소년 길상이, 남자 종인 수동이와 삼수, 여자 종인 삼월이와 귀녀 등이 있다.

어느 날, 몰락한 양반이자 날건달인 김평산이 최참판댁 재산을 탐낸 나머지 귀녀와 공모하여 최치수를 살해하나, 결국 윤 씨 부인에게 발각된다. 이 사건으로 김평산, 귀녀, 칠성이가 처형된다. 그 후 역시 최참판댁 재산을 노리는 교활하고 간악한 야심가 조준구가 가족들을 이끌고 돌아온다. 이 무렵 호열자가 발생하여 윤 씨 부인, 김서방, 강청댁, 봉순네 등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그러자 서희는 수동이, 길상, 봉순이의 보호를 받는 외로운 처지가 되고, 조준구는 서희의 뒤를 봐준다는 명목으로 최참판네 재산을 가로채어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며 소작인들을 보다 가혹하게 착취하기 시작한다.

이때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가운데, 조준구의 착취에 못 견디게 된 농부들은 윤보의 지휘 아래 최참판댁을 습격, 조준구를 찾지는 못하고 곡식과 재물을 탈취하여 의병에 가담한다. 윤보의 죽음과 함께 결국 의병은 패산하고 용이, 영팔, 길상, 임이네, 월선, 김훈장 등은 서희와 함께 고향을 버리고 간도로 떠난다.

최참판댁에 만개한 꽃무릇. 서희의 분노와 한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이자 상상일까.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참판댁에 만개한 꽃무릇. 서희의 분노와 한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이자 상상일까. ⓒ정명화 자유기고가

제2부, 간도 용정으로 간 최서희와 주변인들의 삶

제2부의 시간적 배경은 1911년 5월 간도 용정촌의 대화재로 시작되어 1917년 여름까지인데, 여기서는 1910년대의 간도 한인사회의 삶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조준구의 계략에 재산을 빼앗겨 평사리로부터 간도의 용정으로 옮겨간 최서희, 김길상, 이용, 월선이, 임이네 등의 간도 생활로 서사적 공간이 이동되었기 때문이다.

국내보다 간도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정세가 주요 배경을 이루면서, 최 씨 일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독립운동의 양상을 폭넓게 그린다. 그러면서 서희의 복수, 곧 최 씨 일가의 귀환을 향한 이야기가 집중된다.

여러 가지 전란과 재난을 이용하여 평사리에서 가져온 금괴를 판 돈으로 장사를 한 최서희는 어렵잖게 간도의 용정에서도 자리를 잡고 거부가 된다. 그녀는 조준구에 대한 복수의 일념에 사로잡혀 돈을 벌고 자신의 빼앗긴 재산과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모든 어려움을 무릅쓴다.

그러는 사이 서희는 집안의 하인 김길상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게 된다. 최서희의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두 인물은 김길상과 공노인이다. 김길상은 간도에서 최서희가 많은 재산을 모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공노인은 최서희가 빼앗긴 땅과 재산을 조준구로부터 회수하는 일을 완수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중문채. 중문채 뒤가 안채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중문채. 중문채 뒤가 안채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제3부, 대상이 된 최 씨 일가와 조준구에의 복수

제3부는 최서희 일행이 간도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의 진주와 서울 같은 도시에서의 삶, 지식인과 신여성의 모습이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우선 최서희는 두 아들과 함께 진주 집에 자리를 잡고 조준구에의 복수 마지막 마무리를 하게 된다. 서희는 조준구에게서 평사리의 집문서를 인계 받음으로써 빼앗겼던 최 씨 집안의 모든 재산을 되찾아 가문의 재건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다한다.

그 이후의 서희의 생활은 복수와 재건의 과정에서 뿌려놓은 씨에 대한 뒤처리로 일관된다. 다시 말하면, 두 아들 환국과 운국의 양육과 기화가 되어 비극적인 삶을 사는 봉순이와 그의 딸의 생계를 보장해준다든가, 용이의 말년을 뒷받침 해준다든가, 남편 길상이의 옥바라지를 하는 등 모두 서희 자신의 가족사 성취 과정에서 맺었던 인연에 대해서 스스로 보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수 후 허무에 부딪친 서희의 삶과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던 김환이 일제의 고문 끝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묘사된다. 서희가 빼앗긴 재산을 찾고 또 자신이 받았던 수모를 조준구에게 돌려주고 난 다음에도 '여한과 울분을 풀길 없는 밤'을 보내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삶의 목표가 정복된 다음에 오는 삶의 허무다.

윤씨 부인이 기거하던 안채. ⓒ정명화 자유기고가
윤씨 부인이 기거하던 안채. ⓒ정명화 자유기고가
별당 아씨의 처소 별당채. ⓒ정명화 자유기고가
별당 아씨의 처소 별당채. ⓒ정명화 자유기고가

제4부, 1930년부터 1937년 중일전쟁과 1938년 남경학살에 이르는 시기

서사의 공간은 서울·동경·만주에서 하동·진주·지리산까지 더욱 확대되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더욱 다원화된다. 길상의 출옥과 군자금 강탈사건 등이 중요한 내용이며 시대상이 그러하듯 민족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등 독립운동의 여러 방향 등 일제 치하의 서사적 의미를 보여준다.

윤봉길의 천장절 폭탄 투척 사건, 장개석과 모택동의 국공합작, 일본군에 의한 남경의 대학살을 소설의 배경과 일화로 끌어들인다.

이 1930년대, 우리의 식민지적 상황은 더욱 심화된다. 인구의 태반인 농민들은 가난과 굶주림, 학대와 억압을 못 이겨, 대대로 삶의 기반으로 기대 오던 농토를 버리고 낭인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창씨개명과 조선어의 말살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참판댁 소작농 식솔들이 기거하던 초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참판댁 소작농 식솔들이 기거하던 초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제5부,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제5부의 시간적 배경은 1940년부터 1945년 8·15 광복까지인데,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단체의 해체, 태평양전쟁의 발발, 길상의 구속 등이 이어지면서 토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처럼 토지는 최 씨 일가의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을 중심으로 사회적 공간에 따라 당대 사회의 변모가 충실히 그려져 있다.

그런데, '토지'는 여느 역사소설과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박경리 소설은 인간 삶의 역사적 배경과 현실에 궁극적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이 문제들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인간 삶의 근원적인 면에 대해 탐구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토지에서 간난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과 강인한 생명력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한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정서가 아니라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근원적 모순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한은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슬픔이기도 하지만, 모순을 극복하려는 동기와 염원, 희구를 낳는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이 한을 어떻게 승화시키는가 하는 문제가 본질적 물음인 셈이다.

평사리 들녘 언저리에 꾸며진 허수아비 전시, 모형들이 지난 험난한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평사리 들녘 언저리에 꾸며진 허수아비 전시, 모형들이 지난 험난한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참판댁에서 내려다 본 악양 평사리 들녘과 저 멀리 섬진강 물줄기.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참판댁에서 내려다 본 악양 평사리 들녘과 저 멀리 섬진강 물줄기. ⓒ정명화 자유기고가

지금까지 기술한 토지의 완결본에 대하여 독자들 대부분 역시 1, 2부가 최고라는 평가와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가 떨어진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난 1,2부를 읽은 것으로 추정되는바, 이후의 스토리는 다소 산만하고 혼란스럽다는 논평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더라도 완벽한 마무리는 지나친 기대와 욕심이지 않을까. 끝으로 30여 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장고한 대하소설을 충실하게 엮어 낸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의 열정과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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