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예로부터 대규모 토목공사는 국가와 지도자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중대사다. 중원을 호령했던 진시황도 만리장성을 쌓아 인류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백성들의 희생을 초래해 사후 그의 제국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백제의 개로왕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개로왕이 고구려의 첩자 도림의 계략에 의해 바둑을 두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상은 도림이 백제의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개로왕과 바둑으로 친분을 쌓은 후 고구려의 침공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키게 부추겼다는 것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조반정의 명분에도 대규모 토목공사가 등장한다. <인조실록> 인조 1년 3월 14일 기사를 보자. 인조의 즉위와 광해군의 폐위에 대한 왕대비의 교서에 따르면 “민가 수천 채를 철거하고 두 채의 궁궐을 건축하는 등 토목 공사를 10년 동안 그치지 않았으며, 선왕조의 구신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쫓고 오직 악행을 조장하며 아첨하는 인아(姻婭)와 부시(婦寺)들만을 높이고 신임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인사는 뇌물만으로 이뤄져서 혼암한 자들이 조정에 차있고, 돈을 실어 날라 벼슬을 사고 파는 것이 마치 장사꾼 같았다. 부역이 번다하고 가렴 주구는 한이 없어 백성들은 그 학정을 견디지 못해 도탄에서 울부짖으므로 종묘 사직의 위태로움은 마치 가느다란 실끈과 같았다”고 비판했다.
물론 인조실록은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광해군의 치적에는 조일전쟁 7년으로 황폐화된 국토 재건과 국방력 강화를 위한 성곽수리가 있다. 하지만 전후 피폐해진 백성들에게는 무리한 토목공사가 생존을 위협했다는 것도 진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인사(人事)’다. 개로왕은 ‘도림’이라는 고구려 첩자를 토목공사와 같은 중대 국사에 참여시킬 정도로 과도하게 신임했다. 백제의 충신들은 도림이 적극 추천한 토목공사가 국력을 소진시킬 수 있는 악재라는 충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도림의 바둑 실력에 푹 빠진 개로왕의 귀에는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고구려 침략을 막을 수 있는 최고의 방책이라고 생각해 도림을 더욱 중용했다. 결국 개로왕은 고구려군의 포로가 돼 처형되는 비참한 망국의 군주로 역사에 남겨졌다.
광해군도 이이첨과 같은 희대의 간신들을 중용했다. 이이첨은 계축옥사의 주범으로 피비린내나는 정치보복의 화신이며, 인목대비 유폐도 주도했다. 반대파 숙청으로 절대 권력을 쥔 이이첨이 막대한 부를 챙긴 건 당연지사. 결국 이이첨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이천으로 도망갔다가 처형됐다.
광해군도 인사정책의 실패로 연산군과 함께 조선 500년 역사상 ‘조’와 ‘종’이 아닌 ‘군’으로 전락한 비참한 신세가 됐다.
최근 화천대유 의혹이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이번 의혹은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을 추진하면서 일개 민간업체가 수천억 원의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야권의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이 50억 원의 퇴직금을 수령한 사실도 드러나 곽 의원이 사퇴했다. 또한 이재명 지사의 대법원 무죄 취지 판결에 참여했던 권순일 전 대법관과 박영수 전 특검 검사 등도 의혹의 중심에 섰다. 구린 돈 냄새가 풀풀 나는 구렁텅이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빠진 셈이다.
현재 검찰은 이재명 지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를 체포해 수사 중이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도 주요 수사대상이다.
대장동 개발에서 촉발된 화천대유 의혹이 2022년 대선의 승패를 가름할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대규모 토목공사와 인사비리 등은 망국의 신호탄이 됐다는 역사적 진실이 또 다시 재현될지 여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