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변화와 황혼이혼의 증가세 심각
깨진 부부관계 이혼, 결혼 생활의 숙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가족 해체 현상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부부간의 갈등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태로 치닫는 추세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이혼율은 아시아에서 1위, OECD 국가에서도 9위를 기록했다. 실제 하루 평균 300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인구수를 고려하면 한국의 이혼율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전면적 이혼 확산
이혼은 이제 주변에서 자주 접할 정도로 흔한 현상이 됐다. 그만큼 이혼문제는 서구사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심각하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사회학자들은 이혼율이 폭등하는 주요 원인으로 가치관 변화를 꼽았다. 더 이상 이혼이 죄도 흠도 아니다. 따라서 점차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이혼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자녀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통념에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혼, 가사 전문 법조계 관계자들은 “요즘은 외도나 폭행 같은 사유 못지않게 성격차이나 입장 차, 소통 부재 등을 원인으로 이혼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졌다”라고 논평한다. 그리고 여성의 지위 향상, 핵가족화, 소득의 증대, 여성교육의 향상 등과 같은 사회적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매스컴의 영향과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채팅을 통한 이혼과 가정파괴도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그만큼 이혼은 모든 연령층으로 확산되고 그 원인도 다양해졌다. 여성개발원의 조사에 의하면 1985년 이후 이혼율의 증가, 여성의 이혼청구율 증가, 신혼기와 황혼기 이혼의 상승, 배우자 학대로 인한 이혼청구의 급증 등의 변화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에 대한 태도’는 이혼이 가능하다는 응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세계적으로는 러시아와 미국의 이혼율이 각각 1위와 3위로 랭크되었다. 러시아는 가정 폭력이 심각하게 만연한 것이 그 원인이다. 가정폭력으로 숨지는 러시아 여성 비율이 타국보다 월등히 높은 것에 비해 가정폭력에 대한 낮은 법적 처벌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미국은 가정 폭력과 극도로 발달한 개인주의 문화가 높은 이혼율 배경으로 드러났다.
참고로 전 세계에서 한중일의 이혼율 순위는 대한민국 27위, 일본 41위 , 중국 69위로 집계됐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는 특이하게 결혼 생활 2년 이내, 또는 자녀가 없으면 이혼이 아니라 결혼 취소라는 판례가 있어서 이 통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질과 부부 관계의 위기
한편, 긴 인생의 여정 동안 인간이 도모하는 최고 가치는 무엇일까. 아마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으로의 귀결일 것이다. '행복에 대한 연구'를 보면 개인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건강한 인간관계라고 한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인 부부간에 균열이 생기며 가정의 위기는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 자연히 행복은 멀어진다. 평화로운 가정에 풍랑이 일어나고 변화무쌍한 것이 인생이다.
이러한 부부관계의 악화와 가정의 위기는 대체로 물질의 위기에서 시작된다. '성격 차이'가 가장 일반적인 이혼 사유라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생활고가 심하면서 부부가 임시 별거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아이들은 친척이나 조부모한테 맡겨지기도 한다.
‘이혼의 사유’로 경제 문제가 10년 전에 비해 11.8%나 가파르게 증가했다. 심지어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족의 동반 자살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사태도 빈번하다. 물론 부부간 결속력이 강하면 어려움이 닥쳐도 부부가 힘을 합하여 극복하는 가정도 많다. 그러나 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부 사이에 틈이 생기고 부부의 끈이 끊어지는 불행한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가정 폭력
전문가들은 한국 가정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이혼율이 높아지고 가정이 해체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가부장적인 가정문화와 가정폭력을 지적했다. 전통적으로 남계 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고수하는 한국사회가 점차 새로운 양성평등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혼율이 자연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남성 중심의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남성들은 오직 여성에게만 가사와 양육에 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평등한 가정 문화를 정당하게 요구하는 여성들에 대한 정서적이며 신체적인 폭력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가부장적 문화와 가정의 폭력이 이혼과 가정해체를 급속하게 진행시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파악됐다.
일부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터 혼수, 예단 등 결혼 관련 비용을 어느 쪽이 부담하는가로 갈등을 겪다가 혼인 후에도 그 앙금이 남아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저지르기에 이르러 이혼으로 결판을 내기도 한다.
이혼 최대 피해자 자녀
부부 갈등 결과 최종 이혼으로 결론 날 경우 최대 피해자는 자녀가 된다. 이혼으로 부부는 양육친과 비양육친으로 나뉘게 되어 자녀는 부모 중 한쪽과 동거하지 않으면서 정서적 충격을 받는다. 대체로 나이가 어릴수록 타격이 더 커진다.
성인이 되어 독립할 시기가 되면 부모의 이혼에도 충격을 거의 받지 않거나 스스로 그 스트레스에 잘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미취학 아동 등 저연령의 아이부터 한참 예민한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한쪽 부모의 부재는 상처가 치명적이다.
외로움이나 생활 스트레스도 크며, 가출, 공격적인 행동 등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6세 미만일 때 부모가 이혼한 경우는 그 이상의 연령보다 몇 배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소년범의 대부분은 이혼, 사별, 가출 등으로 인한 한부모, 조손 가정이다.
불행한 결혼으로 얻는 스트레스도 크지만 이혼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못하지 않다. 임상심리학적으로 부모의 불화로 정신상담 받는 사람은 한자리 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부모가 이혼했을 경우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최소 두 자리 수에서 절반이 넘는 비율로 심각한 병리적 증세와 상담을 시도한다. 이에 "가정불화로 아이에게 상처를 안기는 것보다는 이혼하는 게 낫다." 라는 충고와 인식은 무책임한 제안이다. 따라서 이혼 이후에는 아이를 대할 때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행동할 것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황혼이혼의 급격한 증가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황혼이혼’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20년 이상 혼인을 지속했던 부부의 이혼율이 전체의 약 30%에 달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특히 결혼생활 30년 이상의 황혼이혼건수는 10년 전에 비해 2배나 증가했다.
황혼이혼의 수가 이만큼 많다는 건 그만큼 자식 때문에 벌써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가정이 자식이 성장하고 결혼하는 순간까지 파탄이 지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부부가 함께 살아야하는 기간이 늘어났다.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을 그저 참으면서 살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 길어졌고 이에 따라 한동안 황혼이혼이 사회적 이슈였다.
이러한 급상승한 황혼 이혼 현상에 따라 시니어 이혼의 새로운 트렌드, 졸혼과 휴혼이 등장했다. 졸혼은 혼인관계는 유지하되 서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결혼제도의 책임과 의무에서는 벗어나지만 만남 자체는 이어간다.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졸혼 시대’라는 책에서 제시한 신조어다.
이혼은 배우자와 법적으로 모든 관계가 종료된다. 하지만 막상 이혼하려면 현실적인 이유로 망설여질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안으로 졸혼이나 휴혼(休婚)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휴혼은 별거처럼 잠시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다. 황혼이혼이 법적인 졸업이라면 졸혼이나 휴혼은 개인의 ‘자체 숙려기간’인 셈이다.
섣부른 결정으로 이혼하는 경우 부부 모두에게 더 큰 재앙이 닥치기도 한다. 이때 졸혼이나 휴혼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서로 떨어져 살다 보면 익숙해진 탓에 미처 안보이던 장점들이 보일 수 있다.
가족 해체를 예방하려면
부부간의 갈등 종착지 이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부 갈등이 불거졌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혼의 상황에 놓이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아픔의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현대가정들이 안고 있는 이혼으로 인한 가정해체라는 심각한 문제에는 치유가 필요하다. 당사자 부부간의 대화와 함께 전문가와 상담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정해체인 이혼의 원인과 이혼이 주는 영향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부부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소리는 낮추고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서로가 하는 일에 지나친 간섭을 피하고 재정 소비 생활 등에 독립적이고 상대방 존중이 필요하다. 집안일도 누구든 집에 있는 사람이 적절히 분담하여 해결하도록 충고한다.
정부에서는 이혼율을 감소시켜 보려고 ‘이혼 숙려제’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가정해체의 예방 및 가정회복을 위해 국가와 사회는 빈곤가정의 지원, 가정폭력의 엄중한 처벌, 가족갈등 해소를 위한 상담 및 치료서비스의 강화, 이혼 전 상담 및 숙려기간의 제도화 등의 가능한 정책방안이 요구된다.
가정은 우리 사회의 최소 단위이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할 수 있다. 부부는 가정을 이루는 핵심이다. 그러므로 험난한 여정을 동반자와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부부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각별한 노력과 대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