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3대 기도도량 보리암, 원효대사 창건해
겨울 바다에 한해 마무리 번뇌와 회한 털어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전국 산하 붉게 물들었던 단풍은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허무할 정도로 황량한 시골 들녘엔 적막만이 흐른다. 자연의 만물은 동면에 들고 내 심장엔 찬바람이 폐부를 찌른다. 이제 겨울이 지근거리, 엄습하는 외로움과 허한 마음 달랠 길 없어 남해 금산으로 떠났다.
고요한 초겨울 남해를 바라보는 대나무 잎사귀엔 유독 짙은 차가움이 묻어난다. 금산에서 내려다 본 남해안 풍광은 깊어가는 계절을 절감케 했다. 바다는 이토록 거하게 한상 가득 차려졌으나 찾는 이 없는 잔치집같았다. 매서운 바다 바람만이 유일한 초대 손님이자 동반자가 아닐까.
노량 대전의 이순신 장군과 충렬사
차가운 12월의 남해, 1598년(선조 31) 12월16일(음력 11월 19일)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노량해전은 12월16일 새벽 일본의 요시히로가 이끈 왜군이 명나라 공격을 위해 무려 500여척이라는 대규모 함대와 수군 6만여 명을 싣고 노량해협으로 진입해 격전이 벌어졌던 것을 칭한다.
왜군이 노량해협에 진입하자 매복해 있던 조선과 명의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순신 장군은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선제공격을 가했다. 왜선 200여척이 부서지고 사상자들과 부서진 배의 나무판자 등이 온통 남해 바다를 뒤 덮었다. 결국 왜군은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관음포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이순신 장군은 앞장서서 도망가는 왜선을 추격하기 시작했으나 안타깝게도 추격도중 왜군의 총탄을 맞게 된다. 그러나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채 차가운 남해 바다에서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순신 장군이 남해를 철통같이 지키고 이를 무너트리려는 왜군의 수차례의 공격을 모두 물리치는 전과를 올렸기에 조선을 지켜내게 된 것이다.
남해대교 아래 노량 포구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남해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1598. 11. 19)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의 시신은 이락사에 최초로 안치되었다가 그해 이곳 남해 충렬사로 이장, 안치되었다. 그다음 해인 1599년 2월 11일 유해가 충렬사에서 군영지인 전라도 고금도를 거쳐 아산 현충사로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보광산에서 금산으로
최종 목적지인 남해의 상징 금산,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창건하면서 보광산이라 불렀다. 그 후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백일기도로 조선왕조를 개국하면서, 소원을 이뤄주는 명산이라는 의미로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의 ‘금산’으로 거듭난 것이다.
보광사는 이후 조선 현종 때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준다’는 뜻으로 보리암으로 바뀌었다. 보리암은 금산 남쪽 해발고도 681m 절벽 위에 자리한 암자로써, 683년(신문왕3년)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였다. 보리암 아래 이태조가 금산 산신령에 기도한 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을 비롯해 향로봉,문장암 등의 기암괴석과 남해 바다와의 조화가 아름답다. 금산 정상 어귀에는 단군 신전도 있다.
관음보살 사찰 보리암
푸르른 높고 맑은 하늘, 드넓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다도해, 기암괴석이 보리암을 에워싸고 있다. 사다리를 이용해야만 오를 수 있는 절벽의 끝에 위치하며 남해안을 앞마당으로 두고 있어 주변 경관이 거의 다 바다다.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강원도 양양 낙산사와 함께 관음보살을 모시는 사찰 중에서 내력이 깊고 유명한 우리나라 전국 3대 기도처이자 관음도량으로 꼽힌다. 관음보살은 곤경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쉽게 말해 소원을 빌어주는 보살이다.
예부터 보리암은 한 가지 소원만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래서인지 보리암에는 사시사철 간절한 걸음이 머문다. 이제 수능은 끝났으나 본격 대입시를 앞둔 수많은 수험생 가족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보리암 관음보살에 소원을 빌지는 않았으나 종교적인 신념을 벗어나 속세의 번뇌를 내려놓고자 절대자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했다.
이제 한 해가 기울고 마무리 하는 시점에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은 갖가지 상념으로 애달프다. 짓누르는 마음만큼이나 발걸음도 무겁고 평온해 보이는 말없는 바다마저 원망스럽다.
코로나 이전 같으면 한해를 보내며 지인들 가족들과 한해를 정리하며 아쉬움을 달래겠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다. 다가오는 새해는 어떨까. 기대해도 될까. 애써 시간 탓을 하며 마음을 달래지만 삶에 대한 절망감과 허무감이 진하게 몰려온다. 그저 초겨울 바다와 시 한수를 위로삼아 삶의 비애와 고뇌를 극복하려 안간힘을 써본다.
겨울 바다
홍성길
텅 빈 겨울바다
뻣속까지 파고드는
삭막한 바람에도
잔물결만 출렁일 뿐,
겨울바다 너는
요동도 없이
또 한 세월을 지키는구나
헤아릴 수도 없고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겨울바다
변함없는 너의 모습에
옷깃 여미게 하는
삭풍을 맞아도
나 내일도
너를 만나리
한 줄기 바람에 실어져
내 심장을 뜨겁게
일렁이게 하는
겨울바다
너의 외침 들으며 나,
또 한 세월을 이겨가리라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