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2022년 임인년 새해 벽두부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에 위치한 '광주화정 아이파크 2단지'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아파트 일부가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붕괴됐다. 작업자 1명이 목숨을 잃었고, 5명은 아직까지도 실종 상태다. 건물 23층부터 38층까지 한꺼번에 무너지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현장의 원청 건설사는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붕괴사고의 최종 책임업체인 HDC현대산업개발, 동일한 기업이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연속으로 벌어진 대형사고, 모두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참사였다.
사고가 발생한지 6일이 지난 뒤 HDC현대산업개발은 정몽규 회장의 사퇴라는 '나름' 극단적 처방을 내놓았고, 기존 건설된 부분을 완전 철거하고 재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나름' 배수의 진도 쳤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될 때마다,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사고 현장 곳곳에서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정황들이 목격되면서 국민적 공분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여기에 실종자 수색작업까지 더뎌지며 건설사와 지방자치단체의 부족한 수습 조치에 대한 원성도 깊다. 건설사를 강력하게 문책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사정당국에는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와 현장 감독 관할 관청인 광주 서구청 등을 강도 높게 압수수색하며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공언했으며, 국토교통부도 엄중한 문책을 예고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이 "법이 규정한 가장 강한 페널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직접 언급했을 정도다. 정치권에선 '영구 퇴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연이은 참사의 1차적 책임은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게 있다. 이는 분명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정당국의 공언대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고 책임자들을 발본색원해야 하며, 원청의 책임 소지가 밝혀진다면 HDC현대산업개발은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 이들을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건설업 등록말소와 같은 극단적 처벌이 과연 이번 사건으로 부각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가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과정에서 이 같은 극단적 조치가 단기간에 이뤄질 가능성이 대두되는 게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1993년 부산에서는 무려 78명이 숨지고 200명 가까이 부상자가 나오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구포역 탈선참사, 그 사고 원인을 제공한 건 삼성종합건설이었다. 이 참사는 철로 노반 아래 전선관을 매설하면서 발파작업을 해 지반이 침하해 발생했다. 삼성종합건설은 한국전력공사로부터 해당 사업 시공권을 따냈고, 이를 다시 한진건설에 하도급을 줬다. 이 사고로 삼성종합건설 사장 등 관계자 16명이 구속됐고, 원청인 삼성종합건설은 당시로서는 매우 강경한 조치인 6개월 영업정지를 당했다. 수주 손실액이 1조 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강도 높은 처벌이었으나 면허취소 등 극단적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이후 삼성종합건설은 사명을 삼성건설로 바꿨다가 1996년 삼성물산에 흡수돼 삼성물산 건설부문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삼성물산은 '래미안' 브랜드로 부산에 다시 입성했고, 우리나라 대표 건설사로 도약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처벌이 맞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보면 사고 원인을 제공한 관계자, 책임자들을 처벌하되, 회사의 명맥은 유지하게끔 함으로써 공익적인 측면에서 보다 나은 결과를 얻은 셈이다.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을 HDC현대산업개발의 직원이라 소개한 한 청원인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깊이 사과드린다. 나 또한 납득이 가질 않는 현실에 괴롭다. 40년 넘게 피땀 흘려 일군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져 가슴이 아프다. 부실시공이라면 당연히 책임을 통감하고 철거·재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존폐 위기에 직면했지만 결코 책임을 회피하진 않을 거라 믿는다. 이번을 계기로 회사도 부족한 부분을 개선할 것이다. 모든 아이파크 현장이 부실한 건 아니다. 내가 아는 현대산업개발은 언론에 보도된 만큼 부실기업이 아닌 기술자의 사명과 신뢰로 노력하는 기업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HDC현대산업개발의 현장 대부분이 부실할 수도 있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 대형 건설사에서 수많은 임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으며, 또 이 회사의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임직원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그의 말처럼 사명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감정적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앞서 부산 구포역 탈선참사 사례처럼 향후 사회에 기여하게 될 미래기대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 HDC현대산업개발의 구성원들에게 '환골탈태'의 기회를 줘야 하느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일단 정부, 지자체, HDC현대산업개발 등은 모든 역량을 실종자 수색과 사고 수습에 총동원하는 게 우선이다. 또한 사정당국은 이번 사고를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아울러 HDC현대산업개발은 진정성 있는 자세로 희생자와 유족, 피해를 입은 입주예정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진행하고, 해당 아파트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사업적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히, 조심스럽게 건의컨대 우리는 HDC현대산업개발의 대답을 좀 기다렸으면 한다.
진심을 다하지 않은 사과, 알맹이가 빠진 보상, 누구나 짐작 가능한 뻔한 대안, 책임 회피에만 안간힘을 쏟는 모습들을 보인다면 더 기다릴 필요 없이 극단적 처벌을 내려야 하리라. 반대로, 사명과 신뢰로 책임지는 모습, 획기적인 자구노력과 보상을 담은 방안들을 신속하게 내놓는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감독기관과 우리 사회가 다시 한번 냉정하게 판단해 최종결졍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증요법으로 그때뿐인 대응이 아니라 거시적 안목과 미래지향적인 접근으로 사회 전반의 건강한 재생에 무게를 둔 해법을 찾는 지혜가 발휘됐으면 한다.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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