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사실보다 신념?´ 장준하 유골 외면
스크롤 이동 상태바
조갑제 ´사실보다 신념?´ 장준하 유골 외면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2.09.09 0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 수첩>´사실은 이념에 우선한다´고 했던 그의 말은 어디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조갑제닷컴에서 출간한 <반골 기자 조갑제 인터뷰 모음>을 보면,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기자가 가져야 할 소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이념에 우선한다'는 소신이 필요하다. 이념과 신념에 빠져 버리면 왜곡된 기사를 내놓게 된다. 신념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추적하는 데 재미를 느껴야 한다"

지난 5일 조 전 대표는 <못된 SBS를 보고 박정희가 장준하를 암살하였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글>(부제 : 그는 모든 것을 사랑하였다)에서 "(박 전 대통령은) 18년 집권기간에 정적 암살을 지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단언했다.

장준하 선생이 추락했다고 진술한 김용환 씨에 대해서는 "정치선동꾼들과 SBS와 같은 反저널리즘적 언론이 합세, 수십 년 묵은 장준하 타살설을 제기하면서 장씨의 추락사를 목격한 교육자(고등학교 교감 정년 퇴직자) 김용환 씨를 사실상 살인범으로 모는 마녀사냥을 재개하였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논평에서는…´천벌´ 운운

조 전 대표는 이날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지난 1일 방송한 '유골은 무엇을 말하는가' 편에 대해 "19년 전 오보를 재탕한 SBS, 장준하 실족사 목격자를 또다시 범인으로 몰다"라는 논평도 냈다.

그는 "(SBS는)장준하의 죽음을 타살로 단정했다"며 자신이 이해한 방송 내용을 요약해 아래와 같이 적었다.

"SBS의 잡다한 추리를 종합하면 장준하는 지름 6cm 되는 망치에 머리를 딱 한 번만 가격한 뒤 즉사했고 범인이 시신을 짊어지고 그 험한 절벽을 내려오든지 허공으로 던져서 절벽엔 닿지 않고 땅바닥에 떨어지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조 전 대표는 방송을 정말 본 걸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가한 의문의 골자는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방송은 장준하 선생의 유골 형태와 사고현장 지형을 조사한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인 망치로 가격이 이루어졌든, 혹은 실족사를 했든 유골의 형태를 볼 때 장준하 선생은 그 전에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는데 조심스럽게 무게를 뒀다.

ⓒ<그것이 알고 싶다>방송 캡처.
에릭 바틀링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법의 인류학과 교수는 제작팀과의 인터뷰에서 "추락하면서 보호하려 했던 부상이 보이지 않아요. 그 정도 높이에서 추락한 전형적인 피해자들 모습과는 달라요. 특이한 경우예요. 이 사람이 추락할 때 의식이 없거나 죽었거나 독극물에 중독됐다면 수평으로 추락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호 전북대학교 법의학 교실 주임교수는 장 선생의 두개골에서 발견된 원형 형태의 함몰 골절 흔적 관련, "(의식이 없는)자구력 상실상태가 된다면 머리 움직임이 거의 없죠. 도장을 찍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라고 설명했다.

방송은 그러면서 장준하 선생에 대한 <사체 검안 소견서>(1975) 한 장을 공개했다. 그 안에는 "우측 둔부(궁둥이)상 외면에 주삿바늘 자국 확인" "우측 상박 외측부에 주삿바늘 자국 확인"이라는 문구가 적시돼 있었다.  

또한, <그것이 알고 싶다>가 김용환 씨에 대해 의문을 가한 이유는 그의 진술이 일관성 없이 번복되었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김용환 씨의 진술 번복 내용은 이렇다.

# "나무 윗부분을 잡으셔가지고 어떻게 잘못 뛰셨는지 기억이 안 나고 제가 여기서 보았을 때 나무가 휘는 것은 봤어요." -1975년 사건 발생 후 김용환 육성 녹음 -
# "저는 장준하 씨가 추락할 때 소나무를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 보지 못하였습니다." -1998년 포천경찰서 재조사에서-
# "소나무가 휜 것을 본 적이 없고 휜 소나무가 있다는 말을 지금까지 한 적이 없습니다."-김용환 진술 중 2004년 의문사위 조사에서-

그리고 그는 사망 신고를 하기 위해 포천 경찰서로 간다며 8시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정작 신고를 한 이는 다른 이였다.

ⓒ장준하 기념사업회.
우리는 시체를 통해 진실을 추적할 수 있다. 또 유골을 통해서도 사망 시기와 원인 등에 대해 규명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점이 있으면 충분히 의문을 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박정희 정권 시절, 재야의 대통령이라 불렸던 장준하 씨 죽음 관련, 풀리지 않는 여러 의문을 던졌다. 37년 전 검찰은 등반 실족사라고 단정했지만, 37년 후 유골이 말해주는 것들은 또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 전 대표는 유골이 던진 여러 질문은 외면한 채 유골이 발견되기 전의 주장들에만 의존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선진국에서 SBS처럼 생사람을 잡는 명예훼손 보도를 하면 문을 닫을 정도의 배상을 해야 한다. 한국에선 그게 이뤄지기 어렵지만 그래서 천벌이란 게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또 논평을 마치면서는 "월간조선 취재팀이 19년 전에 추적하였던 SBS 오보 과정을 재록한다"며 '장준하 실족사'를 주장한 <월간조선 1993년 5월호> 내용만을 첨부했다.

기자의 길은 무엇인지, 못났고 서툴지만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기자는 <반골 기자 조갑제 인터뷰 모음>을 읽고 젊은 시절의 조갑제 전 대표가 취재 현장에 답이 있다며 사건의 진실을 좇는 일화에 감동, 존경심을 가진 바 있다. 하지만 조 전 대표의 이번 논평은 왕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못내 실망스럽다.

아마도 왕년의 조갑제라면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에서 뚜렷한 원형 형태의 골절 흔적이 발견된 그 시점부터 전면 재추적에 나섰을지도 모르겠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