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하, "내가 계속 노래하는 이유는, 팬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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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 "내가 계속 노래하는 이유는, 팬들 때문에…"
  • 신원재 기자
  • 승인 2012.09.13 17: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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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7080세대의 Diva, 이은하와 추억의 책가방…그리고 ‘새로운 도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신원재 기자]

이은하는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가수 이은하는 13살의 어린 나이 가수로 데뷔했다. 39년간 가요계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온 산 증인으로서 추억의 책가방에서 도시락 꺼낼 때마다 흥분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은하는 지난 시절을 되짚어 갔다. ‘이은하’라는 이름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고, 고유명사가 된  ‘7080’이라 불리는 그 당시 가수여서 행복했던 즐거운 이야기가 많다고…

이은하가 말하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 그때의 향수가 있기에 이은하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최근 재즈, 뮤지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팬들과 공감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며 박수를 보내는 팬들은 그녀와 함께 추억을 나누는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이은하와 함께 추억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아련한 설렘으로 이야기를 이어간 인터뷰는 지난 8월 홍대 앞, 그녀가 좋아한다는 중국식 샤브샤브 훠궈(火鍋) 요리집에서 이뤄졌다.

▲ 가수 이은하가 그녀의 삶과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사오늘
최근 KBS2 TV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이은하를 소개하며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은하는 “어려서 심장이 뜨거웠을 때를 다시 기억하게 해 주는 단어가 ‘전설’”이라며 “당시의 감정과 그 시대의 추억들이 몰려온다”고 회고했다.

- ‘불후의 명곡’에서 후배들의 모습에 굉장히 흐뭇해하더라, 느낌이 어땠나.
“너무 좋았다. 내 노래가 많이 특이해서 요즘 후배들이 따라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다들 열심히 해줘서 고마웠다. 내 노래는 개성이 강한 목소리이기 때문에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박재범 같은 친구는 한국말이 서툰데도 불구하고 소화를 상당히 잘하더라. 1979년 노래인 ‘아리송해’를 2012년 최신버전으로 만들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나도 내 노래가 오래되다 보니 편곡을 통해 종종 바꾸는데 이번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노래가 나와서 즐거웠다. 가수 초창기 시절의 신선함이 되살아났다.”

- 39년간 가수로 활동하며 20여 장의 앨범을 냈다. 가장 아끼는 곡은?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어디 있겠나. 그래도 어찌됐든 효자 상품은 ‘미소를 띠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하 ‘미소를 띠우며…’)이다. 그 노래를 가수 조성모 씨가 불렀을때 느낌이 제일 좋았고 그때 가장 흥행했다. 저작권료가 짭짤했다.(웃음) 처음 그 노래 부를 때만 해도 내게는 정말 가슴 시리고, 먹먹한 자식이었는데 갈수록 효자 노릇을 하더라.

이은하의‘아리송해’와 ‘미소를 띠우며…’는 이은하가 직접 가사를 썼다.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우며…’ 노래로 대화가 이어졌다.

- ‘미소를 띠우며…’는 첫사랑과의 이별 후 만든 노래로 안다. 대중들은 노래에 엮인 사연을 잘 모르지 않았나.
“그렇다. 나중에 내가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이 노래의 핵심을 정확하게 모른다. 대부분의 이별 노래가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을 찾아 헤매고, 떠나가서 슬프다고 말하지만 이 노래는 아니다. ‘내가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네가 밉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실연당하면 이 노래를 부르지만, 사실은 ‘그대 왜 나를 떠나가게 했나요’라는 반대 개념이다”라며 깊은 의미를 설명했다.

‘미소를 띠우며 나를 보냈던’ 이은하의 첫사랑 이야기

- 아버님의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포기한 뒤 ‘미소를 띠우며…’를 작사했다던데…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장덕 씨가 곡을 쓰고 내가 가사를 붙였다. 당시 장덕 씨가 나랑 나이가 같아 걱정이나 고민거리를 많이 나눴다. 비록 개인적인 실연의 아픔은 나눌 수 없었지만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이면서 스스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 당시 누구도 정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던 때라 장덕 씨에게 참 고마웠다.”

20여년 전 사망한 가수 장덕은 친오빠 장현 씨와 함께 ‘현이와 덕이’라는 듀엣으로 발라드, 포크가수 활동했다. 대표곡으로는 ‘너나 좋아해’,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날 찾지 말아요’ 등이 있다.

첫사랑과의 이별 후 아버지에게 섭섭한 감정은 없었을지 물었다. 이은하는 “아버지만의 생각이 있었을 것이고, 자식을 가진 아버지로서 내 딸은 누구보다 더 좋은 사람에게 보내고 싶은 게 아버지의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할거였으면 아버지가 반대해도 어떻게든 했을 거다. 근데 그 때는 한 번도 아버지의 말을 거슬러 본 적이 없던 시절이어서 아버지의 ‘안 돼’ 소리에 내가 접었다.”

-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면 어떡하겠나.
“이제 아버지는 반대를 안 하실 것 같은데, 중요한 건 내가 더 망설여진다. 이제 실패하면 안되니까... 어려서는 물 불 안 가리고 사랑만 있으면 살 것 같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어쩔 수 없는 거다. 아는 게 많을수록 더 어렵다 하지 않나. 더 의심이 많아지고 조심스러워진다.” 계속해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 데뷔 당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하던데, 아버지 이야기 좀 들려 달라.
“아버지는 아코디언 연주를 아주 잘 하셨고 음악에 관심이 많으시다 보니 노래를 곧잘 하는 딸을 위해 기념음반을 하나 내 주시게 됐다. 내가 가수가 된 것도 그 덕분이 크다. 아버지의 음악 사랑 때문에 어머니는 당초 반대가 많았다. 남편이 음악을 하다 그만둔 것도 그렇고, ‘딴따라’ 자체가 배고프니까 못하게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꿈이 나에게 실현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연습하는 게 삶의 낙이셨던 것 같다. 내가 가수가 되고 음악을 공부할 때 아버지가 적극 지원해 주셨다. 워낙 강하게 훈련시키셔서 잘 한다는 이야기도 거의 듣지 못했다. 처음 칭찬을 들은 게 몇 년 안 된다. 40여 년 동안 아버지 눈에 들고 싶어서 앞만 보고 달렸다. 노래도 체계적인 보컬레슨 없이 ‘득음’하는 수준이었다. 스파르타식으로 산에 가서 발성하고 코오루위붕겐(합창연습, 음정ㆍ리듬 훈련)을 통해 화성악도 공부했다.”

절정의 시기를 거치며 ‘디스코의 여왕’이 찾은 새로운 도전
뮤지컬과 재즈의 세계, 새로운 경험은 또 다른 이은하를 만든다

▲ 가수 이은하 ⓒ시사오늘
- 데뷔 초부터 10여 년간 ‘10대가수’와 ‘가수왕’을 차지하며 가요계의 전설로 남았다.
“대중가수 TOP10을 뽑는 ‘MBC 10대 가수상’을 17세부터 25세까지 9년간 연속 수상했다. 당시 ‘MBC 10대 가수상’이 가수로서는 최고의 영예였던 만큼 자부심이 크다. 아마 9년 연속 10대 가수에 들어간 사람은 내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인기가 많은 연예인이다 보니 각종 루머 등 개인 사생활이 많이 힘들었을 듯하다.
“내 사생활은 거의 없었다. 워낙 어렸을 때 사회에 나왔고, 연예계 나와서 뭘 알기 전에 이미 스타가 됐다. 지금 내 나이가 52세가 됐으니, 인생 중에 39년을 노래만 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거의 없었고 학교생활이든 뭐든 개인 생활 없이 노래만 했다. 단체생활도 거의 해 본 일이 없는데, 그래서 이번 뮤지컬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이은하는 아직 미혼이다. 한데 최근 그가 공연한 뮤지컬 ‘메노포즈’에서는 결혼 경험이 있고 딸을 가진 이혼녀로 나온다. 그래서 “내 평생 해볼 것 다 해봤다”며 “소원도 풀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사실 ‘메노포즈’라는 제목만 들었다면 안 했을 거다. 폐경기라는 말이 결혼도 안 한 처녀한테는 좀 서럽지 않는가. 근데 예전에 이 공연을 감명 깊게 봤던 기억이 떠올라 선뜻 수락했다.”

‘메노포즈’는 폐경기에 이른 여성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병, 폐경을 이겨내고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뮤지컬이다. 이미 이 뮤지컬은 혜은이, 이영자, 박해미, 홍지민, 조갑경 등 매년 빅 스타와 함께 해 유명하다. 금년에는 이은하와 노사연과 함께 10월 말까지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 뮤지컬 '메노포즈'에서 열창을 하는 이은하 ⓒ시사오늘(사진제공=뮤지컬 해븐)
폭발적인 가창력과 왕년의 ‘디스코 여왕’이라는 명성답게 이은하는 뮤지컬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이번 뮤지컬로 또 다른 데뷔 무대를 갖은 이은하는 “뮤지컬을 하면서 왜 이렇게 늦게 시작했을까 싶었다”며 “힘닿는 데까지 계속 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은하는 “내 책임이 노래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내가 다시 뛰겠다는 말을 한 거고, 최근 재즈까지 다양한 활동에 도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 뮤지컬을 봤다. 남자들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는데, 남성 독자에게 한 마디 한다면.
“메노포즈에 대해 부인과 남편이 같이 공감해야 한다. 여자 혼자 극복하는 것보다 남자가 같이 이해해 주면 극복이 더 빠를 것이라 생각한다. 폐경기가 병은 아니지만 제2의 사춘기라 생각한다. 암은 걸리는 사람만 걸리지만 폐경기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도와주는 것보다도 먼저 다가가서 ‘이해’해 주고, 남자들이 한 발 양보해서 따뜻하게 안아주면 쉽게 무너지는 것이 여자다.”

- 최근 재즈앨범을 내며 재즈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재즈는 일반인들이 듣기는 좀 어려울 듯한데.
“그렇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다, 이렇게 말하면 재즈 전문가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재즈는 약간 판소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클래식에서 파생이 됐지만 언제,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같은 노래가 새롭게 들릴 수 있는 게 재즈다. 그 사람의 기분이나 표현하고 싶은 것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판소리 같은 느낌을 받는다.

- ‘7080 디스코 여왕’에서 ‘재즈의 여왕’으로 가능한가, 재즈에 대한 도전목표가 있다면…
“재즈의 여왕까지는 생각 못해봤고... 나도 사실 재즈는 어렵다고 생각하던 차에 지난해 우연히 재즈음반 제의를 받았다. 몇 년 전에도 남무성(재즈평론가) 선생님이 재즈를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재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 최근 재즈공연에도 관심을 가진 이은하는 재즈앨범 'My song My jazz'를 발표했다. ⓒ시사오늘
재즈를 고집하는 재즈뮤지션들만의 자존심이 대단한데 대중가요 가수인 내가 어떻게 재즈를 할 수 있나 생각했다. 재즈뮤지션들에게 무슨 욕을 먹으려고...(웃음) 그래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결국 새로운 세계를 그렇게 경험했고 재미있었다. 일단 흥미를 내가 느꼈다는 것 자체가 계속 해보고 싶다는 표현이다.”

- 조만간 재즈로도 두 번째 세 번째 앨범을 기대해도 되나.
“그렇다. 음악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난 한 가지만 고수하기보다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해 볼거다. 결국 음악은 모두 같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모두 클래식 안에 들어있다.”

한편, 지난달 대구에서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1주년 축하를 겸해 열린 제5회 대국국제재즈축제에서 애플재즈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미국의 토니미셀, 기타리스트 매트 패나이데스, 일본 재즈뮤지션이 자리한 가운데 이은하는 재즈레이블을 가지고 공연했다.

재즈 뮤지션이라면 뉴올리언스에 가볼 계획이 있나라며 질문을 했더니 “가보고 싶다. 근데 미국도 오히려 지금 재즈 시장이 거의 없어졌다. 우리나라 판소리도 결국 계보를 잇는 것에만 급급하다. 한류, 한류 하지만 우리 문화를 안 지키는 것이 아쉬워서 ‘판소리’언급했다.

나도 대중가요 가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제를 너무 좋아하고 외국 유학 다녀왔다고 하면 굉장히 좋아한다.

그러면 전통을 중시하는거냐는 물음에 당연하다면서 “우리나라에서 녹차 시키면 비싼 커피숍 녹차도 티백 하나 달랑 넣어준다. 하지만 일본은 다방 가서 녹차 시키면 돗자리부터 깐다”며 한국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점도 꼬집었다.

진화하는 가수 이은하와 그녀의 ‘사람 사는 방법’이 궁금하다

-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과 좋아하면 목숨을 거는 것’이 이은하의 성격이라고 했는데…
“성격상 그렇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고… 색깔이 분명하다.”

- 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연예(가요)계 환경에서 비롯된 성격인가.
“그건 아닌 것 같고, 어릴 때부터 오히려 외부 환경은 아버지가 다 커버해 주셨다. 그래서 난 아직도 동화 속에 사는 것 같다. 말로는 사회생활을 안다고 떠들지만 사실 잘 모른다. 둥글둥글 넘어가는 것도 잘 못하고 표현이 너무 정확해서 싫으면 싫다고 얘기를 하니까 안 좋다”며 걱정했다.

- 성격 때문에 후회한 적도 있나
“후회 많이 한다.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내가 독하게 말해놓고 내가 상처를 받는다. 우선 지르고 보고 그 다음에 고민은 나 혼자 다한다. 괜히 했다 싶을 정도로 후회를 많이 한다. 근데 또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 39년의 연예계 생활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후회도 없다. 사실 양손에 떡 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뭔가 한 가지는 기울게 돼 있다”

- 뮤지컬이나 재즈에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또 다른 계획이 있다면?
“다 잘 될 거라 본다. 우리나라 문화도 많이 다양해져 앞으로도 뭐든지 다 하고 싶다. 다만 내가 시도하지 않을법한 게 있다면, ‘힙합’. 웬만하면 다 하겠는데 ‘힙합’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웃음)”

▲ 가수 이은하 ⓒ시사오늘
이은하는 마지막으로 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연예인으로서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남들에 비하면야 배부른 투정이고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게 고맙다고. 그리고 그녀는 “‘이은하’라는 이름으로 한 세상 사는 동안 내 이름의 가치를 이 정도로 만들어 준 대중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습니다”고 감사의 말을 대신 부탁했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모든 인생이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릴 수는 없다. 지우고 싶은 것도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낼 수 없는 노릇이지만 때로는 비를 맞고 흙탕물이 튄 인생의 얼룩마저 세월과 함께 사랑할 수 있다.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이은하는 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비록 눈물짓는 날이 있을지언정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다만 고단한 인생 길 위에 달콤한 추억과 그것을 한 번 더 기억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마무리 했다.

장소제공 - 불이아(弗二我) 홍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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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2012-09-17 00:42:23
이은하가 왜 떴나 궁금해서 와봤더니...
4대강 찬양송이나 계속 부르심이
흘러가는데로 살았으며 다도 아직 좋아하고 있겠지
밴드하던 남자와 있다 경찰 출동핮 어딜 걷어 찼다는
그 기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네.
이미지 쇄신은 힘든 법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