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젊은 날을 부정한 홍사덕,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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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젊은 날을 부정한 홍사덕, '역사속으로?'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2.09.18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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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대열 합류로 정치시작, 말년엔 유신옹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의 좌장 역할을 해 왔던 홍사덕 전 의원이 18일 탈당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것이 큰 이유였다.

홍 전 의원은 이로써 30여 년의 정치인생 중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그의 정치일생을 돌아보면, ‘외줄’을 타며 위기를 타개해 왔으나 이번만큼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온다.

홍 전 의원의 정치시작은 11대 국회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1년 민주한국당 간판을 가지고 나와 당선됐다.

홍 전 의원의 정치입문을 도왔던 사람은 신상우와 김덕룡, 그리고 김정남이다. 민한당 공천을 관장했던 신상우는 ‘민정당 2중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야성을 강화하기 위해 당시 재야투사로 알려진 6․3세대 김정남에게 공천자를 천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김정남은 “당의 새로운 컬러를 위해 6․3세대에 속한 사람들을 잡아야 한다”며 김도현 홍사덕 최혜성 고영구 등을 추천했다.

이들 중 김도현과 홍사덕은 서울대 문리대 동기인 김덕룡이 김정남에게 민한당 공천자로 강력 추천했다.

초선의원이었던 홍사덕은 12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했다. 신한민주당에 입당하기 위해서였다. 전두환 정권에 맞서기 위해 김영삼(YS)이 민주산악회→23일간 단식투쟁→민추협결성을 통한 신한민주당을 창당하자 홍사덕은 1984년 12월 김현규 서석재 박관용 등과 함께 민한당을 탈당했다.

이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민한당 현역의원들이 집당 탈당하자 이를 감지하지 못했던 안기부는 발칵 뒤집혔다.

1984년 12월 20일. 탈당주역 김현규가 안기부에 연행됐다. 이같은 사실을 모른 채 집으로 귀가하던 홍사덕은 한 탈당 멤버로부터 “김현규가 안기부에 연행됐으니 피신하라”는 전화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홍사덕은 피신하지 않았다. 혼자 고생할 김현규 때문이었다. 김현규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집에서 내복을 껴입는 등 단단히 준비를 한 그는 안기부에 끌려가 3일간 철야조사를 받았다.

안기부는 이들에게 민한당 복귀를 설득했다. 하지만 이들이 거부하자 신민당 입당은 ‘불가’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나올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적 기반이 약한 홍사덕이 무소속으로 나올 경우 위험하다고 판단한 김현규는 자신만이 무소속으로 나가겠다고 버텼다. 결국 이 문제는 총선을 한 달 앞둔 1985년 1월 김현규만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 홍사덕 전 의원이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자 새누리당을 18일 탈당했다. ⓒ뉴시스

홍사덕은 이후 이민우 신민당 총재의 최측근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86년 ‘이민우 파동’의 기획자로 알려지면서 진통을 겪었다.

5공말기였던 1986년‘직선제 개헌안’이 신민당의 당론이었다. 당 총재였던 이민우는 그해 말 ‘선(先)민주화 후(後)내각제 협상용의’라는 발언을 해 일파만파의 파문을 몰고 왔다.

이민우 파동의 배경에는, 당시 이민우의 핵심 참모였던 홍사덕이 여권(민정당)과의 교감 아래 각본을 만드는 등 막후역할을 했다는 말들이 돌았다. 구체적으로 홍사덕이 통일원 장관이었던 허문도와 접촉했다는 '설' 등이 나돌았다.

유한열 전 의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다 홍사덕 장난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이때도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12대 국회의원이었던 A씨. 그는 홍사덕의 정치선배이자, 핵심 상도동계 인사였다.

국회의원 회관에서 만난 홍사덕은 A씨에게 “형님, 우리가 YS와 DJ 넘어서야 합니다”며 제왕적 두 정치인이 문제라고 지적했다는 것.

이에 A씨는 이를 YS에게 보고했고, ‘이민우 파동’이 일어나자 YS는 “이 때문에 홍사덕이 나를 비난하고 다녔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을 알고도 YS는 문민정부에서 홍사덕을 중용했다.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이민우 파동은 분당사태를 사태를 가져왔다. YS와 DJ 등 양 김 씨는 이민우와 결별,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이때 홍사덕은 예상외로 이민우와 결별, 통일민주당에 입당했다.

당시 풍문이 사실이라면, 홍사덕은 그야말로 외줄타기 정치를 감행한 셈이다.

이후 홍사덕의 정치행보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벽에 부딪혔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경합을 벌이던 이명박에게 후보 자리를 내준 것.

나락으로 치닫던 홍사덕은 18대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입했고, 친박계의 대표인사로 탈바꿈했다.

‘거창한 민주대열’은 아니어도 ‘민주대열’ 안에서 정치를 해왔던 홍사덕은 친박계 인사로 변신한 후 자기의 젊은 날을 부정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대선을 앞두고 “유신은 권력연장보다는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그리고 마침내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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