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파와 안철수 현상①>맥못추는 소장파, 문제는?
스크롤 이동 상태바
<쇄신파와 안철수 현상①>맥못추는 소장파, 문제는?
  • 윤종희 기자
  • 승인 2012.11.22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당 내 견고한 위계질서 + 소장파에 대한 국민신뢰 부족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종희 기자]

대한민국 정치사에선 늘상 소장파(少壯派)가 존재해왔다.

소장파에서 '소장'(少壯)은 어리고 씩씩하다는 뜻이다. 정력적이고 원기 왕성하다는 뜻도 된다. 결국, 소장파란 어떤 조직이나 단체 안에서 주로 젊은 층이 모여서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있는 파(派)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소장파로는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소위 '40대 기수론'을 일으킨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YS·DJ 이후 숱한 소장파들이 등장했지만 그다지 빛을 못봤다. 그나마 박찬종 변호사가 1987년 대선 당시 소장파로서 YS-DJ 단일화를 주장하며 국민적 눈길을 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고속 성장,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적지 않은 표를 얻은 게 YS-DJ 이후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정도다.

이처럼, 소장파들이 부각되지 못한 이유로 여러가지가 거론된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 정당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위계질서가 견고한 정당 구조에서는 소장파가 힘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종찬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1일 "어느 정권에서도 소장파는 쇄신의 목소리를 냈다"면서 "이들 소장파들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당내 파워세력과 연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소장파들이 외치는 쇄신은 화살인데, 이는 기존의 견고한 파워그룹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 파워그룹이 소장파들과 선뜻 손을 잡기가 부담스럽다"고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우리나라와 외국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외국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달리 정당 내 파워그룹이 보수와 개혁으로 나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당 내 상층 파워그룹 속에 개혁파가 있기 때문에 소장파가 이들과 연대하는게 가능하다. 쉽게 말해서 수직적 연대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파워그룹 일부와의 연대가 이뤄지면 반대 진영과 경쟁하는 가운데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장파의 경우는 지금까지 횡적으로만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부 파워그룹과는 연대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제에선 정당의 의원 구속력이 약한 게 보통"

그는 또 "대통령제의 경우는 소속 의원에 대한 정당의 구속력이 강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교차투표가 가능하다. 때문에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여당의 법안이 잘 통과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이면서도 의원에 대한 정당의 구속력이 강하다. 당론과 다르게 투표했을 때 해당행위라는 지적까지 받는다. 이러니 쇄신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이처럼 소장파들을 둘러싼 상황이 만만치 않기에 우리나라의 경우 상시적 개혁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평소에는 소장파들이 아무런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하다가 선거에서 지는 등 당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 그나마 소장파들이 발언권을 얻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그 때 뿐이지만…. 게다가 당의 위기 때 소장파가 아닌 파워그룹에서 전권을 잡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지난 4·11 총선 직전의 새누리당 상황을 묘사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에게 비상 대권을 주며 쇄신하라고 했다. 말그대로 당이 무너질 것 같은 위기 상황이 오자 박 의원에게 모든 것을 준 것이다. 흥미로운 건 소장파가 아닌 박 의원에게 모든게 맡겨진 것이다. 결국, 개혁도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박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전권을 행사하며 당을 바꾸지 않았나. 우리나라 정치의 특이한 점이다."

소장파들이 힘을 못쓰는 또 하나의 이유로 중앙집권적 공천제도가 거론된다. 당내 상위 파워그룹이 공천을 좌우하면서 소장파들이 파워게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통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반면, 공천권에서 거리가 먼 소장파들에겐 사람이 안 모이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소장파를 둘러싼 외적 문제가 아닌 소장파 자체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무엇보다 소장파가 국민들의 확고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젊은 클린턴과 오바마 등 개혁 성향의 후보가 뜨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며 "소장파들이 정말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고치려는 마음에서 이슈를 내기보다는 그저 당내 소장파로서 부각, 당의 파워집단으로 들어가기 위해 당의 노선에 반대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친다는 비판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소장파가 당 내 파워그룹과 연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슈를 제기해야하고 그렇게 국민적 지지가 올라가면 당 내에서도 '이 사람에 대한 여론이 좋구나'하면서 힘이 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 원희룡 전 의원과 남경필 의원 ⓒ뉴시스
"소장파가 성공하기 위해선 시대정신 읽어야"

소장파와 관련해선 YS와 DJ 사례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우선, 두 사람에 대해선 무엇보다 본인들의 능력이 탁월했다는 평가다. 또 이들은 시대정신과 맞물려 있었다. 소장파였던 두 사람이 '40대 기수론'으로 활약할 당시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로 민주화운동이 시대정신이었다. 두 사람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이끌었다. 여기에 두 사람의 타고난 '카리스마'까지 더해지면서 국민적 호응이 상당했다. 

YS의 차남인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성공한 소장파의 사례인 '40대 기수론'은 예전에 아버지가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더불어 새롭게 기존 당권에 도전한 형태인데, 이는 그 당시 시대정신과 맞물려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아버지 때는 유진산 총재 시절이었는데, (유 총재가) 당을 효율적으로 장악하기 어려웠던 상태였다. (반면) 아버지와 DJ(김대중 전 대통령), 이철승 등은 당 내에서 오랫동안 중심 역할을 해왔고 당 내에서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도 설명했다.

YS가 40대 기수론을 주도할 때 그 옆에서 함께 했던 유성환 전 의원은 "그 당시 40대 기수론의 의미는 군정을 타도하고 민주 정권을 수립하자는 역사적 과제를 성공시키기 위한 것으로 단순히 나이가 젊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며 "특히, 군사정권이 무자비하게 강했기 때문에 강건한 40대 정치인들이 군정을 타도해야한다는 강력한 책임정치의 의미가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유 전 의원은 특히 "당시 미국이 최초로 인류를 달에 보낸 사건이 있었다. 그 때 미국이 각국 대통령과 수상을 초청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아닌 야당 원내총무였던 김영삼 의원이 참석했다"며 "뉴욕타임스 등 여러 신문들이 한국의 야당 원내총무 김영삼을 유력 정치인으로 소개했다. 그 정도로 김영삼 의원이 국제적으로 기대를 받는 등 위상이 남달랐다"고 전했다.

이종찬 교수는 YS와 DJ가 소장파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계파'를 꼽았다.

"YS와 DJ는 끈끈한 야당의 계파가 존재했다. 군사독재 시절이라는 시대 상황과 두 사람의 카리스마가 더해지면서 계파가 만들어졌다. 계파야말로 두사람이 성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독재정권이라는 공적(公敵)이 없어졌고 상대적으로 계파정치가 누그러들었다. 계파가 존재해도 그 끈끈함이 예전같지가 않다. 옛날에는 사람 중심 정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달라진 것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계파정치가 가능하다. 그래서 특정 계파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 계파 내 젊은 사람이 정치 전면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계파정치가 희석됐기 때문에 그런게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과거 소장파들과 지금의 소장파들의 정치적 환경이 크게 다르다. 그러나 시대정신, 본인의 자질, 국민적 호응과 신뢰라는 세가지 요소는 변하지 않는 소장파의 과제인 듯싶다.

담당업무 : 大記者
좌우명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