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 50년 史>"무소속은 안돼요, 신민당 공천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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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50년 史>"무소속은 안돼요, 신민당 공천 받으세요"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2.11.2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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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유신의 본질-1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제9대 유신 선거법과 나의 신민당 공천 (영등포 갑구)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 획책으로 짜여 진 유신정국은 우여곡절 끝에 제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한다고 예고하고 있었다. 신민당도 엄청난 재난 후에 흩어져 남은 잔해를 모아서 참담한 심정으로 전당대회를 열어 유진산 총재를 새 총재로 선출하고 9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가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기로 했다.

나는 8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영등포 갑구에서 출마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5·6 파동으로 박정훈이 낙선하고, 그 후에도 유진산 총재가 법정 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유진산 총재가 자신의 지역구를 고향인 충남 금산으로 옮겼다. 유 총재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 가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국회의원 선거에 고향 분들의 심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나는 생후 처음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고 아내에게 내 뜻을 말했다.

“출마를 하면 돈도 많이 들고 더구나 야당으로 나가면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엄청난 탄압도 각오를 해야 하는데 아내인 당신의 지지와 성원이 절대적인 요건인데 당신이 나를 도와주시오.”

“당신이 언젠가는 국회의원 출마를 꼭 할 거라고 나는 벌써부터 각오하고 있어요.”

“인생이 한 번 났다 가는 것인데 기회가 왔는데 안하는 것은 얼마나 억울하고 바보스러워요.”

“대신 무소속은 안돼요. 신민당 공천을 받으세요.”

다른 가족들 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 집 생활이 이제 겨우 내 집을 마련한 정도인데 국회의원 출마라고 하면 내 집이나 처갓집이나 흔쾌히 찬성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공천이 결정될 때까지 아내와 나, 둘만 알기로 했다.

아내의 지지와 성원은 나에게 있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았다.

내게 엄청난 힘이고 용기이며 자신감이 생겼다. 경옥을 내 아내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머리 숙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영등포 깁구에는 신민당에서도 당시 신민당의 명 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리는 김수한 의원을 비롯하여 야도여촌에 맛들인 전현직 의원들이 공천신청을 냈다.

공천신청을 낸 사람들이 심사위원들의 집을 두루 도는 것은 물론 특히 상도동 총재 댁은 조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아침 일찍 온 사람 중에도 총재님을 만나기는커녕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이 지역에서 부위원장도 지냈고 비교적 중앙당에서도 핵심부장을 역임하고 있고 총재 사모님까지도 나와 아내를 사랑해 주셨다. 또한 신동준 실장을 비롯한 비서진들 하고도 잘 지내고 있었으며 그중에도 총재의 연설문 등 각종 문서를 작성 대필까지 하는 총재의 조카 유창열씨가 나의 공천에 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유 총재와 독대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여러 번 총재를 만날 수가 있었다.

“총재님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동안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서울에서 한 사람의 공화당 의원도 당선시키지 못했던 박 정권은 유신 선거법으로 한 선거구에서 두 사람씩 뽑는 중선거구제로 바꾸어 모든 선거구에서 둘 중 하나는 여당 후보가 당선 되도록 선거구제를 바꿨다.

예년 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를 가지고 보면 언제나 신민당후보가 공화당후보보다 2배 이상의 득표로 승리했다. 때문에 전현직 의원들은 서울 선거구를 희망하고 있어, 나처럼 원외 정치지망생들의 서울공천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다보니 당은 서울에서 한사람의 당선은 된 거나 마찬가지이니 두 사람을 복수로 공천해 둘 다 당선시키도록 하자는 방침을 세웠다.

그런 방침에도 물러서는 사람은 없었다. 아내가 몸이 달았다.

“여보 우리 둘이 함께 총재님을 뵙고 간청해 봅시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총재를 만났다. 둘이 나란히 들어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유 총재 앞에 앉아 아내가 간청을 들렸다. 총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의 집은 참 이상하다.”

그래서 내가 “뭐가 이상 합니까”했더니, “다른 집은 사내가 공천 달라고 여기 오면 마누라는 목매달러 가는데 너희는 두 사람이 함께 와서 공천을 달라고 하니 이상하지 않느냐?”

“그래, 알았으니 가봐.”

군사정부의 가진 박해와 금권타락 부정선거로 가산을 탕진하고 낙선해 가정이 무너지고 패가한 사람 중에 자살을 한 사람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중앙당 근처에 가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더구나 원외 당원은 아예 심사 대상도 안 되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말들이 돌았다.

나는 견딜 수가 없어 밤 11시가 다 돼갈 무렵 총재 댁을 찾았다.

유창열 씨가 문을 열어줘 들어가 유 총재를 뵈어야겠다고 떼를 썼다. 유 총재가 조금 전에 들어오셔서 막 잠자리에 드셨으니 밝은 날 다시 오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막무가내로 총재님 방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잠옷을 입은 채로 기침하시는 유 총재 앞에 엎드렸다.

“이상한 소문이 있어서 왔습니다. 원외 당원의 신청서는 보지도 않고 심사에서 제외한다는 말을 듣고 견딜 수가 없어서 왔습니다.”

“뭐야, 이놈아. 전쟁에 나가 전쟁하는 놈이 옆의 사람이 이상한 얘기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전쟁터를 버리고 후방으로 쫓아온단 말이냐? 알았으니 가봐.”

“알았습니다. 그 말씀을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말씀으로 알고 가보겠습니다.”

“늦었으니 곧장 집으로 가” 하는 말씀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유창열 씨에게 “총재님 말씀이 된다는 말입니까? 안되다는 말입니까?” 그랬더니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했다.

드디어 공천자 발표를 하는 날 일찍 중앙당에 들렀는데 같이 공천신청을 한 전직 지구당위원장 출신 K씨가 차를 한잔 하자고 해 당사 근처 제과점에 갔다.

“노 부장, 미안해요 영등포 갑구는 공천자 결정이 났는데 복수로 김수한 의원과 내가 됐다고 어제 유진산 당수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었어요. 노 부장은 다음에 기회를 보고 이번 선거에는 나를 위해 수고를 해주세요.”

내가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은 아니지만 겉으로 표현할 수도 없어서 “알았어요, 그런데 나도 총재님으로부터 너는 안 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니 발표될 때까지 희망을 버릴 수는 없지 않소? 혹시 누가 압니까? 내가 될지도 모르니 당신이 되면 내가 당신을 밀고, 내가 되면 당신이 나를 밀어주기로 합시다.”

자신만만한 K씨는 “그렇게 합시다”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종로구 견지동 유진산 총재 개인 사무실 지하다방에서 라디오를 가운데 놓고 수십 명이 모여 정오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신민당의 공천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종로에서부터 시작하여 영등포 갑구 김수한, 노병구라고 이름이 나왔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고 옆에 있던 K씨는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집으로 가서 뉴스를 듣고 기뻐하는 아내와 얼싸안고 자축을 했다.

다음 날 일찍 상도동 총재 댁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너는 죽으나 사나 서울만을 고집해서 할 수 없이 이번에 공천을 주기는 했지만 당선이 어려워, 박정희가 서울에서 둘 중에 하나는 공화당이 차지하려고 선거법을 저희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 놓았어. 공화당후보를 당선시키려고 기를 쓸 거야. 김수한은 현직 의원이고 대변인이다. 자금도 명성도 너는 아직 김수한을 따라갈 수가 없으니 네가 당선되기가 어렵다는 거야. 그러니 다음 선거에 대비한다는 생각으로 젊은 다리로 열심히 다녀. 몇 만 명이건 악수를 하도록 해라. 돈도 네 돈은 쓰지 말고 비축해 두어라. 내가 얼마 안 되지만 네가 쓸 돈을 얼마간 만들었으니 이 범위 내에서 선거운동을 하도록 해라. 사무실도 따로 돈을 들여 얻을게 아니라 본동에 있는 내 지구당 사무실을 쓰도록 해라”하면서 보자기에 싼 돈 뭉치를 건네주셨다.

“총재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선이 어렵다고 말씀하시지만 당선되도록 해보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유진산 총재의 은혜를 잊지 말자고 우리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신민당 서울시내 각 선거구의 공천자는 모두 현역의원들로 채워졌고 한 두 사람의 거물급 전직 의원이 들어있었으며 부위원장이나 원외당원은 내가 유일하게 들어있어, 당락을 떠나 공천만으로도 최대의 영광을 차지했다고 서울시내 부위원장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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