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은 왜 지금도 탄압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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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은 왜 지금도 탄압받는가?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2.11.30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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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원초적 자유 누렸다는 이유로 ´변절자´ 매도 ´신독재´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측 안도현 시민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은 29일 김지하 시인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 입장과 관련 “앞으로는 술 한 잔 마시고 할 때 ‘타는 목마름으로’를 못 부를 것 같다”며 김 시인을 에둘러 비난했다.

군사독재와 유신에 저항한 민주화의 상징, 민족문학 진영의 김지하 시인은 최근 박근혜 후보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각종 비난에 휩싸였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진보로 비쳤던 그가 보수 후보를 지지함에 따라 ‘변절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 것. 심지어는 그의 나이(71세)를 언급하며 ‘노망’이란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 김지하 시인. ⓒ뉴시스

이 사회는 스스로 ‘뜻 있는 사람들’이라며 자기들끼리 담을 둘러친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변절자로 낙인 찍힌다. 무리를 떠나 펼치는 본인의 소신도 모조리 ‘변절’로  치부된다. 시간을 갖고 어느 쪽이 옳은 지 판단할 여유는 애초부터 없다. 일종의 진영논리다. 

보수와 진보의 이원론적 사고에 기초해 보수를 위한 보수, 진보를 위한 진보가 우리 사회에 횡횡하는 듯싶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 구분에 앞서 사회가 지향해야 할 것은 ‘선’이다. 진보가 언제나 선일 수는 없는 법이다. 김지하 시인도 ‘진보운동’에 앞장선 인물이 아닌, 사회의 ‘선’에 앞장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변절자’란 단어는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김 시인에 대해 “누가 누구를 지지하든 간섭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겠죠. 다만, 삶의 일관성이라는 존재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기어이 말년을 지저분하게 장식하는 것 같아 안타깝군요”라고 비난한 바 있다.

진 교수의 발언도 옳지 않다. 김 시인을 ‘진보운동’을 한 인물로 간주해 자신의 논리를 펼친 것이다. 김 시인이 사회의 ‘선’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본다면 김 시인의 일관성은 유지된다. 결과로서의 ‘선’은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명확해질 수 있겠지만 김 시인이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여성’으로 보고 그것이 ‘선’이라 생각한 것은 가장 기초적인 자유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너그러운 여성성의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

박정희 군부독재와 유신에 항거했던 시인이 박 전 대통령의 딸을 지지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박 후보의 어떤 공약도 민주주의에 반하지는 않는다. 아버지 시대 독재정권에 대한 아픔은 있지만 시대와 환경의 변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똑같은 ‘독재’를 우려하는 것은 상당히 무모하고 막연한 두려움이다.

김지하 시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나는 박정희 정치에 대해 다 넘어갔다. 감옥 독방에서 서거 소식을 듣고 ‘그 독재자가 이 김지하와 가는 길이 똑같구나’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과거는 과거로서 청산하는 대인배적인 면모다.

그는 또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당시에도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인데도 사람들이 지지한다”며 “누구라도 인정해 줄 만할 땐 인정하자는 것. 독재했지만 그래도 국민들 먹여 살리려고 애쓴 건 인정하자는 거다”라고 말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서 최선을 찾고 있음을 보여줬다.

문 후보 측 선대위원장인 안도현 시인은 김 시인에 대해 “많은 분들이 김지하 선생이 변절했다고 하는데 저는 변절이라기보다는 김지하 선생의 오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옳은 비판이다. ‘진보운동’을 기준으로 ‘변절’이라 말한다면 무리가 있겠지만 사회의 ‘선’을 기준으로 ‘오판’이라 말할 수는 있다.

“4·19 혁명 때 대학생이었어요. 광화문 지나가는데 동기들이 같이 시위하자고 하더라고. 그땐 이념도 지향점도 없는 시위라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튿날 아무래도 찜찜해서 나가보니 학생 구두닦이 신문팔이 아줌마 모두 만세를 부르고 있는 거야. ‘아,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싶어서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그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걸 다하겠다고 결심했지. 그 결심으로 살아온 것뿐이고.” 김 시인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박근혜 후보 지지가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오판’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과거 4.19혁명 당시처럼 잘못된 판단이었다면 깨닫고 돌아올 수 있다.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반대로 그의 선택이 옳은 길이라면 오늘 그를 ‘변절자’라 말했던 이들도 돌이킬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버리고 옳은 길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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