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 50년 史>"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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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50년 史>"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할 수 없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2.12.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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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김영삼과 박정희 대결-2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김영삼의 직무 정지 가처분

김영삼은 긴급 조치, 비상조치, 위수령 등 온갖 독재적 수법을 총동원해 야당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을 탄압하는 박정희 정권을 혹독하게 비판하며 국민의 뜻에 따라 정권을 내놓을 준비를 하라고 압박해 들어갔다.

그럴수록 박정희 정권의 말기적인 발악은 더욱 기승을 부려 이성을 잃어갔다.
김영삼이 당권을 잡은 지 석달도 되기 전에 YH 사건이 터졌다.

가발 공장에서 일하던 YH 여공들이 폐업한 회사에 대해 밀린 월급을 달라고  농성했지만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이들이 1979년 8월 9일 신민당사로 몰려와서 자기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강당인 당사 4층에서 농성을 하다가 8월 11일 무장경찰의 진입으로 해산됐다. 김영삼을 비롯한 신민당 당직자들과 YH 여공들의 강력한 항의를 무장경찰들이 네 명이 한조가 되어 한사람씩 개 끌듯 끌어내다, 급기야는 김경숙이라는 여공이 사망해 국내외로 큰 뉴스로 기록됐다.

김영삼의 총재 직무정지 가처분

1979년 8월 13일 신민당 원외 위원장 중에 조일환, 윤완중, 유기준 세 사람이 5·30 전당대회에 부정대의원 몇 사람이 섞여있어 그들의 투표로 당선된 총재는 당선무효이므로 총재 직무 정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총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는데 법원에서 이유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법원은 총재 권한 대행에 정운갑 의원을 선임까지 해 선고했다.

5·30 전당 대회는 이철승 대표 체제 하에서 그들의 주관으로 대의원도 선정하고 전당대회의 모든 절차를 주류에서 한 것이고, 김영삼은 비주류여서 주류에서 하는 대로 따라서 응전만 해서 당당하게 총재로 당선된 것인데 적반하장 격으로 그 책임을 김영삼에게 덮어씌웠다. 무소불위의 유신 치하에서는 법원도 맥을 못 추고 박정희의 시녀가 되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김영삼의 국회 의원직 박탈

1979년 10월 4일 박정희는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직무를 정지해 놓았음에도 여전히 대여 공세를 멈추지 않는 김영삼의 의원직을 박탈하기로 결심했다. 신민당 의원들이 단상 점거 등 농성하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을 피해 공화당 의원 총회실에서 공화당 의원과 대통령이 임명한 유정회 국회의원만 참석한 가운데 김영삼 의원의 의원직 제명을 결의했다.

그 이유는 김영삼이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회견내용을 문제 삼았다.
김영삼이 ‘미국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박정희 독재정권을 도와서는 안된다’고 한 말을 사대주의의 발상이라고 구실을 붙여 제명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김영삼 총재를 제명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니 재고해 달라’고 요청해 내락 받았다.

“나보다도 박정희가 먼저 죽을거요. 김부장도 조심하시오”

제명 전날 김영삼에게 전화가 왔다.
“총재님, 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입니다. 오늘밤 꼭 뵙고 싶습니다.”
“나는 김 부장을 만날 일이 없소.”

“아닙니다. 꼭 뵈어야 합니다. 오늘밤 장충동 장충체육관 앞까지 오시면 제가 사람을 내 보내겠습니다. 오시는 걸로 알고 기다리겠습니다.”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불법, 무법, 월권이 판을 치는 살벌한 세상이라 김영삼 총재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김재규와의 만남을 공개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김영삼은 아내 손명순 여사에게만 귀뜀을 했다.
“저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혼자 나가서 되겠느냐?”고 신변문제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걱정말라”고 말해 놓고 그는 장충체육관 앞으로 갔다.
실로 소름끼치는 순간이었다.

어두운 밤 김재규가 보낸 차로 갈아타고 그 근처에 있는 정보부 별관으로 갔다.
“총재님, 박정희 대통령의 감정이 극에 달해 이대로 가면 제명, 구속은 물론 극단적으로 그 보다 더한 무슨 일이든지(살해까지도) 저지를 수 있다고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나라도 총재님도 불행해집니다. 이런 일은 막아야 합니다.”

그 말에 김영삼은 이렇게 답했다.

“나보다 박정희가 먼저 죽을 거요. 김 부장도 조심하시오.”
그러자 “내일 아침 국회에 나갈 때 잠깐만 기자실에 들러 뉴욕타임스 기사가 와전되었다고만 한마디 슬쩍하시고 가시면 됩니다”고 하자, 김영삼은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할 수 없소”하고 나왔다.

그때 김재규가 “또 뵙겠습니다”하고 인사하는 소리를 듣고 “다시는 김 부장을 볼 일이 없을 거요”하고 나왔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 말이 걸린다고 몹시 안 된 표정으로 사석에서 나에게 그때의 정황을 이야기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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