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존폐 논란 국회로 중심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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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존폐 논란 국회로 중심이동
  • 박지순 기자
  • 승인 2010.03.2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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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남 법무 "사형시설 설치하라" 지시로 논란 증폭
 
지난 10일 부산 여중생 살해 피의자 김길태가 검거되면서 사형제 존폐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김길태 관련 인터넷 보도 댓글에는 ‘흉악범은 사형을 시켜야 한다’, ‘인권도 인권을 존중받을 만한 사람에게나 주장할 수 있는 것’ 등의 사형제 옹호 주장이 쉽게 눈에 띄었다. 대체적으로 일반인들은 사형제에 감정적으로 동조한다고 볼 수 있다.

김길태 검거 바로 다음날에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대대표가 한 방송에 출연해 사형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형제는 법치주의에 맞고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안 대표는 “현행 형사소송법상 사형이 확정되면 6개월 이내에 집행하도록 돼 있다”며 “성폭력 살해범, 연쇄 살인범 등에게는 신속한 사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일에는 법률상 사형집행 명령권자인 이귀남 법무부장관이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형집행 시설을 설치하라고 지시해 정부 차원에서 사형 집행 재개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 사형집행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집행자'의 한 장면.     © 뉴시스


우리나라에서 사형 집행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지난 1997년 12월 23명의 사형수를 한꺼번에 집행한 것이 마지막이다. 김대중 정권 이후 현재까지 약 13년간 사형 집행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우리나라는 국제 앰네스티와 유엔에 의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은 사형 집행이 10년 이상 이뤄지지 않는 나라를 지칭한다. 현재 사형이 확정돼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59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길태 사건 이전에도 흉악범죄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곤 했지만 지난달 25일 헌법재판소가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하면서 사형 폐지 논란은 정치권 전반으로 공론화 되고 있는 추세다.
 
헌재 사형제 합헌 결정하며 “국회가 제도 개선해야”

헌법재판관 9명 중 합헌 의견이 5명으로 과반이 넘었다. 사형제 헌재 심판은 지난 1996년 11월 처음 있었다. 당시 7: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났다. 첫 합헌 결정에 비하면 두 번째 결정에서는 위헌 의견이 추가된 것이다.
 
합헌 의견을 낸 5명의 재판관 중 민형기, 송두환 재판관은 “사형제도 자체보다는 오남용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형 대상 범죄를 축소하는 등 형벌 조항들을 재검토하고 국민 여론을 수렴해 점진적으로 국회가 제도를 개선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보충 의견을 냈다.

사형제 위헌 결정을 요구하는 일반인의 헌법소원 청구는 지금까지 3차례 제기됐지만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사법기관 내부의 사형제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과 민주당 김부겸 의원의 대표발의로 사형제 폐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여서 처리 방향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사형제 폐지 법안은 지난 1999년 제15대 국회에서 처음 제출됐지만 번번이 여론에 밀려 폐기되곤 했다.
 
헌재가 합헌 결정을 하면서도 사형제 개선의 과제를 국회에 부과한 만큼 제18대 국회에서 폐지 법안이 처리될 확률은 어느 때보다 높지만 폐지가 실제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선영 의원은 지난 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사형수의 부드러운 면을 발견하는 것이 결국 생명 존중 사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형제 폐지 법안에 의하면 현행법상 사형은 감형이 없는 종신형으로 변경되며 수감 중인 사형수도 감형이 없는 종신형으로 감형된다.
 
▲ 자유선신당 박선영 의원(사진 제일 오른쪽)은 사형제 폐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 뉴시스


아직 다수를 차지하는 존치론자들은 여론을 강조한다. 지난 11일 한나라당이 실시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89%가 사형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의 추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로서는 사형제 폐지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형오 국회의장 “복수심으로 하늘이 준 생명권 박탈해서는 안 돼”

한나라당은 대체적으로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지만 당내 대표적 소장파인 남경필 의원은 폐지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남 의원은 헌재의 사형제 합헌 결정이 나오자 곧바로 “아쉽다”는 반응을 나타냈고 이 법무장관의 사형장 설치 발언이 나온 직후에는 “흉악범은 용서해서는 안 되지만 사형집행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이 법무장관의 사형집행 검토 발언을 접한 후 “인간과 사회가 가진 원시적 복수심과 감정에 의해 하늘이 준 생명권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사형 집행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의장은 “사형은 인권제약의 최후적 단계이며 사형제를 실시하기 전에 범죄자의 신원공개나 발찌, 종신형 등 기본권 제약을 통해 중범죄자를 사회에서 유리, 격리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교계는 대체적으로 사형제 폐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톨릭과 불교는 교단이 일치해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며 개신교의 경우 보수적 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중심으로 사형제에 찬성하는 입장도 일부 존재한다.

시민단체 중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참여연대가 대표적으로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으며 국제적 조직인 앰네스티는 세계적으로 사형제 폐지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
 
앰네스티 한국본부 이고은 홍보담당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UN에 가입한 192개국 중 사형제가 유지되는 나라는 25개국뿐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사형제 폐지는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EU)은 사형제 존치 국가와는 FTA를 체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고 EU의장국인 스페인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의지가 특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EU는 헌재의 사형제 합헌 결정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외교적 갈등 발생 우려로 사형 집행 재개 쉽지 않을 듯
 

사형집행은 외교적인 갈등도 초래할 여지가 있어 집행이 재개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앰네스티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EU에 범죄인 인도와 사법공조 협약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사형제 존치 국가라는 이유로 거절됐다.
 
그러자 법무부는 외교통상부와 협의해 EU에서 인도받은 범죄인의 경우에는 법원이 사형을 선고해도 집행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보냈다.

만일 국내에서 사형집행이 재개되면 EU국가로 도망한 범죄자는 사형이 선고돼도 집행할 수 없어 형평성 논란도 일 수 있다. 이런 외교적 사정으로 인해 외교통상부는 법무부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형법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형제의 범죄 억지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고 국내 형법학자 132명은 지난해 3월 사형 집행 반대 의견서를 법무부과 대통령에게 냈다.
 
형법학자들의 반대 의견서 작성을 주도했던 서울대 한인섭 교수는 지난 1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와 국가가 이제까지 도달한 인권의 수준이라든지 문명적 감수성을 후퇴시키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 찬반 논란은 결국은 국회로 그 무대가 옮겨가게 된다. 제15대부터 제출된 사형제 폐지 법률안이 이번 제18대 국회에서 통과될지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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