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 50년 史>3당 야합?…"군정종식위한 위대한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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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50년 史>3당 야합?…"군정종식위한 위대한 결단"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3.06.15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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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당 합당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구국적 결단의 3당 합당과 통일 민주당 지구당 소멸

1990년이 시작되면서 김영삼은 김대중의 4자 필승론으로 더욱 굳어진 지역분할 구도의 고착화를 우려했다. 나라의 앞날이 암담함을 걱정하고 군정을 종식하고 문민 민주국가의 출현을 바라는 70%의 국민여망을 실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다음 선거도 또 다음 선거도 지금 같은 지역분할의 상태에서는 비록 소수이지만 하나로 뭉쳐있는 기득권 세력 앞에 70%의 다수가 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김영삼은 3당합당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수십 년 동안 쿠데타를 반대하며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며 고생해 왔던 우리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지, 실로 종잡을 수 없는 허탈함으로 맥이 빠져 있었다.

처음 통합 소식을 들은 통일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은 통합 비율 25%의 지분으로 합당을 하면 100%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전반적으로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김영삼은 상도동 자택으로 우리들을 불러 한사람씩 만나 통합정당으로 같이 가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도 김영삼의 방으로 불려 들어갔다.

“노 위원장, 3당 합당이 단순히 모험으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김대중이 호남을 볼모로 잡고 저렇게 제욕심대로 활보하며 즐기는 한 야권후보 단일화는 물 건너갔고 이런 지역감정 구도로는 3당 통합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해 내가 결심했어. 이래도 저래도 가능성이 없을 바에는 한번 도박을 해 보는 거야. 나하고 같이 가요.”

“총재님, 저 두 정당 사람들은 체면 불구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입니다. 저 사람들은 절대 다수인 75%의 세력을 가졌고 우리는 겨우 25%이며 또 저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집권하면서 많은 재물을 축적한 사람들입니다. 수적으로도, 힘으로도 우리는 처음부터 지는 싸움입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명분까지 잃고 쫓겨나게 됩니다. 총재님, 제 생각에는 지금이라도 재고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합당을 반대합니다.”

그랬더니 김영삼은 나의 무릎에 두 손을 얹어놓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노 위원장, 이왕 결정된 사항이고 달리 방법이 없는 그야말로 ‘구국적 결단’으로 한 것이니 나와 같이 가도록 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총재님께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 통합신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셔야 하는데 사전에 무슨 보장이라도 되어 있으면 저는 무조건 따라 가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생스럽긴 하지만 지금처럼 야당이 훨씬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반박했다.

그랬더니 아주 자신 있는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노 위원장, 보장 같은 것은 없지만 그 문제라면 내가 자신이 있다. 내가 반드시 승리한다. 나를 믿고 나하고 같이 하자, 내가 꼭 된다니까.”

“사전보장이 있어도 어려운데 백지 상태로 25%를 가지고 75%를 어떻게 당한다고 그렇게 장담을 하십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일어섰다.

“노 위원장, 틀림없이 같이 가는 거다.”

나는 가타부타 말을 안 하고 그냥 나왔다.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불만이었지만 유진산 총재 이후에 김영삼 총재가 있었기에 군사독재 정권과 맞붙어 박해와 고초를 이기며 줄기차게 싸워 민주화도 직선개헌도 이루어 놓았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김대중의 위장된 민주화투쟁과 진정한 민주정부 구성에 방해만 없었더라면 이런 궁여지책은 안 써도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3당합당이 되고 나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유일한 야당의 지도자라고 큰 소리를 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나는 신민당 시절부터 보아온 김대중을 지도자라고 따라갈 수는 더욱 없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따라갈 지도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도 정치도 모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 거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10년, 20년을 함께 손잡고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몸바쳐온 동지 중에 적지 않은 사람이 3당 합당에 반대해 대열을 이탈했다.

3당합당에 찬성하고 청와대에까지 들어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인사까지 하고 나와서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다시 주저앉은 이기택 의원은 처음 생각대로 그냥 따라갔더라면 아마도 김영삼 대통령 집권 후에 이회창과 함께 대통령후보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자신도 나라도 운명을 바꿔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중에 김대중하고 같이 한다고 한 식구가 됐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너무 자주 바뀌는 김대중에게 속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돌이킬 수 없게 돼 정치에서 영영 빛을 잃고 말았다.

그야말로 순간의 생각이 평생을 좌우하는 세상사를 확실하게 보여준 모델이 되었다. 애석한 일이다.

3당 야합이라고?

건국 이래 민주화를 열망하고 응원했던 국민의 가슴에 지역김정의 암 균을 살포하고 민주화는 꿈도 꾸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망쳐 논 김대중은 3당합당을 야합으로 몰아세웠다. 김영삼이 목숨 걸고 군사정부와 싸울 때 민주화의 지도자인척, 동지인척 하면서 따라가다가 민주화가 될 만한 길목에 오면, 민주화를 망쳐 놓지 않았던가?

김대중의 야망은 민주화는 핑계일 뿐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민주화를 위장했을 뿐 그의 타도 대상은 군사정권도 반민주세력도 아니고, 언제나 자기보다 민주화 투쟁대열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김영삼을 돕는 척하다가 딴지를 걸었다. 민주화의 성과에 관한한 대부분 김영삼이 이룩한 성과에 그는 늘 무임승차했다.

결정적인 민주화의 기회를 망쳐놓고 김대중은 3당합당은 정치도의에 어긋나는 야합이라고 몰아붙이며 또 방해하기 시작했다.

김영삼은 난파된 남은 몇 척의 배를 수리해 수많은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처럼, 통일민주당 세력 25%를 가지고 75%나 되는 군부세력과 합당을 감행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겠다는 심산으로 말이다.
3당합당은 죽어가는 민주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차선이었다.

이것은 기름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죽으러 가는 것이라고 많은 동지들이 반대하며 합류하지 않았다. 나도 합당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이 시대에 김영삼 말고 따라갈 지도자가 없어서 같이 죽자고 따라갔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3당 합당을 끝내 밀어붙여 기적적으로 대통령이 되고 민주화를 쟁취한 김영삼 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과 굽힐 줄 모르는 소신은 존경받을 만하다.

민주화의 방해꾼 김대중은 김영삼 대통령이 이룩한 성과를 딛고 대통령도 되고, 평생 소원하던 노벨평화상도 탔다. 그간의 김대중의 소행으로는 역시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양심이 있다면 김영삼 대통령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감사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실질적인 민주화는 요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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