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국공신 이성헌, 2014년 서울시장 도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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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공신 이성헌, 2014년 서울시장 도전하나?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3.07.13 17: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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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주목할 정치인(7)>개국공신의 침묵… “어떻게, 계속할까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YS계의 원로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과 이성헌 ⓒ뉴시스

이성헌은 두 번의 운명적 만남이 있다. 자신을 정치에 입문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을 정치적으로 성장시킨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두 명의 전·현직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뿌리이며, 현재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민주화의 상징 YS에게 정치를 배우고 ‘철의 여인’ 박근혜에게 정치적 성장을 한 이성헌에겐 남다른 정치DNA가 있다. 2014년은 이성헌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장 출마, 이성헌의 도전이 계속될 수 있을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적 첫 스승 YS와의 만남

이성헌 민화협 위원장은 YS키드다. 5공 출범 직후인 1981년, 이성헌은 군 제대 후, 연세대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입학했다. 사회현실에 일찍 눈을 떴던 이성헌이 학생운동에 뛰어든 것은 당연했다. 1983년에 총학생회장이 됐다. 그에게 운명적인 첫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민주화의 상징 ‘YS’와의 첫 만남이었다. 5공 정권이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이 고조될 무렵이었다. 이성헌의 연세대 총학생회는 5·18 광주항쟁 4주년을 맞아 민주화의 상징인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 강연회를 추진했다. 이성헌은 몰래 YS의 상도동을 찾았다.

이성헌 의원은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연대 총학생회의) 연설 초청에 김영삼 총재는 자신이 연설할 경우 이를 준비한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희생을 당할 것을 우려하며 망설였다.”

20대 대학생 이성헌에겐 학생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YS의 세심한 배려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결국 전두환 정권의 방해와 탄압으로 연설회는 무산됐다. 하지만 이성헌은 김영삼 총재와의 첫 인연을 머릿속에 새겨놓았다. YS도 젊은 이성헌을 기억해뒀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모색하던 그에게 상도동의 연락이 왔다. YS가 이성헌을 찾았다. YS는 이성헌에게 “이 땅에서 군부독재를 물리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화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 민주화투쟁을 함께 전개하자”고 제의했다. 이성헌은 주위사람들과 상의 끝에 YS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YS의 비서로 상도동 식구가 됐다.

1992년 YS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성헌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됐다. 그는 1996년 15대 국회의원선거에 첫 도전장을 던졌다. 지역구는 자신이 성장한 서대문갑이었다. 상대는 DJ의 분신인 야당의 거물 김상현, 당초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이성헌의 분전은 눈부셨다. 재검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591표 차로 석패했다. 이성헌은 이때부터 얽히고 설킨 지역구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

16대 총선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난다. 이성헌의 후임 연대 총학회장이었던 민주당 우상호 후보였다. 이번엔 1364표 차이의 신승이었다. 국회 첫 입성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이성헌 ⓒ뉴시스

탄핵정국 속에 만난 박근혜


초선 이성헌 의원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2004년 노무현 탄핵사태였다. 탄핵 역풍은 겆잡을 수없는 태풍이었다. 여기서 이성헌은 뜻밖의 제의를 받는다. 바로 이성헌의 두 번째 운명적 만남,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탄핵 정국으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의 선택은 박근혜 대표체제였다. 박근혜는 대표비서실장으로 이성헌을 선택했다. 박근혜 대표는 이성헌에게 “나를 좀 도와달라. 이성헌 의원이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성헌은 박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의 대표 비서실장이 됐다. 박근혜 대표를 도와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구했다. 하지만 이성헌은 떨어졌다. 상대는 열린우리당의 우상호였다. 1승1패가 됐다.

2006년 지방선거는 ‘박근혜 대표’ 테러사건이 최대 이슈였다. 한나당의 압승이었다. 이제 이성헌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다. 그해 초여름 여의도 진미 파라곤 빌딩에 미니 캠프가 차려졌다. 김무성, 유정복, 이성헌, 유승민 등 전현직 의원과 이병기 현 주일대사가 모였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이듬해 치러질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대표를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후 소위 친박 인사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친박계의 탄생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에서 박근혜는 후보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朴’의 남자들은 변함없이 ‘박근혜’를 지켰다. 5년 후를 기약했다. 이성헌은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 당선에 큰 힘이 된 희망포럼을 조직했다. 박근혜을 위한 전국 외곽조직이 계속 확대됐다. 이성헌은 이듬해 18대 총선에 당선됐다. 역시 상대는 우상호였다. 2승1패로 앞서 나갔다.

2012년이 됐다. 정치인 이성헌은 한 번의 슬픔과 한 번의 기쁨을 맛본다. 19대 총선에서의 낙선. 우상호 의원과 2승2패로 무승부가 됐다. 슬펐다. 그러나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12월 대선이 이성헌은 제일 중요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국민소통본부 총괄본부장이 됐다. 전국의 조직을 맡았다. 아침 7시에 출근하면 회의를 열었다. 전국에 박근혜 후보 지지조직 확대를 위해 주력했다.

당시 국민소통본부에 근무했던 새누리당 관계자의 말이다. “이성헌 본부장의 리더십은 최고였다. 그는 업무의 분담과 체계적 운영이 탁월했다. 국민희망포럼 100만 명을 이끌던 리더다웠다.” 마침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다.

▲ 지역구 전적 2승2패의 라이벌 이성헌과 우상호 ⓒ뉴시스

이성헌, 2014년 선택의 끝은?

개국공신 이성헌은 원외인사다. 지방선거는 내년이지만, 총선은 3년 후다. 정치인 이성헌은 징검다리 국회의원이다. 우상호 의원과 2승2패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처지가 다르다. 개국공신이다.

개국공신 이성헌에게 3년은 너무 길수도 있다.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다. 서울 서대문 갑에서만 5번 선거를 치뤘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이성헌이 서울시장에 도전하기 아직 이를지 모른다는 말도 있다. 반론도 있다. 이성헌이 내년 서울시장선거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치적 휴식기가 길면 안 된다는 논리다. 그리고 옛 YS계의 동지 김영춘은 내년 부산시장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성헌은 아직 말이 없다.
 

이성헌의 저서명은 <어떻게, 계속할까요?>이다. 사연이 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 중 불의의 테러를 당했다. 박근혜 대표가 테러를 당하자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하지만 박 대표는 침착했다. 현장에 있던 이성헌에게 “어떻게, 계속할까요?”라고 한 마디 건넸다. 오세훈 후보 지원 유세를 하겠다는 의지의 한 마디였다. 역시 ‘철의 여인’다웠다. 이 짧은 한 마디는 이성헌이 박근혜 대통령의 심복으로 만든 운명이었다. 이성헌은 그 날 이후 어떤 일에 직면해 선택을 할 때 마다 이 말을 가슴에 되뇌이며 주위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단다.

이성헌은 오늘도 이렇게 묻고 있다. “이성헌, 너는 어떻게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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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삼 2013-09-13 16:51:04
늘 한결같은 이성헌위원장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