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 50년 史> "낙하산 시비자들 집권하자 죄다 갈아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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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50년 史> "낙하산 시비자들 집권하자 죄다 갈아치워"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3.08.04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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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마사회에서의 새로운 시작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한국마사회 업무이사 취임

1993년 4월19일 나는 세상에 태어난 지 만 62년만에 우리나라 나이로 63세에 처음으로 매일 아침 출근하는 직장을 갖게 되었다.

나의 체면을 세워 주느라고 급히 자리를 마련하다보니 그때 한국마사회 업무이사 자리가 비어 우선 발령을 낸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지 한 달 반 정도 지날 무렵 전직 국회의원 몇 사람이 국영기업체에 발령을 받아 나가기 시작할 뿐 다른 많은 사람들에 비해 나는 비교적 빨리 자리배정을 받아 한편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국마사회 노동조합이 나의 취임 반대시위를 가졌다.

나의 발령소식이 알려지자 마사회 노동조합이 ‘낙하산 인사 반대’ 시위를 시작했다.
꽹과리 등 사물놀이 기구를 앞세워 한바탕 반대 시위를 요란하게 했다.

내가 처음 출근하는 날 나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노동조합에서 걸어 놓은 ‘워커가 물러가고 등산화가 몰려온다’고 써 있는 현수막이었다.

나는 기분도 나빴지만 옳고 그름과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국민의 의식수준이 민주화를 바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민주화를 배척하는 2중적 가치관이 존재함을 알았다. 우리나라의 참된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회장실에 들어가서 임명장을 받았다.
 
노동조합 위원장과의 대화

내가 부임한지 얼마를 지나 나는 노동조합 위원장을 내 방으로 불렀다.
내방에 들어서는 위원장이 “업무이사님 취임을 반대하며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고 말했다.

“위원장, 고마워 지난날 군사독재 시절에도 임원이 새로 오면 낙하산 인사라고 노동조합에서 그렇게 반대도하고 현수막도 내걸었나?”하고 묻는 나에게 위원장은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나는 취임할 때도 말했지만 내가 63세가 되도록 학생 때부터 줄 곧 군사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 투쟁에 전념하느라고 어려운 살림을 해오면서 그들의 무자비한 탄압을 효과적으로 따돌리고 독재반대 세력을 규합하는 방법이 산에 가는 것이었어.”

“군사독재 반대세력의 가장 효과적인 조직행위가 바로 민주산악회야. 그리고 그 민주산악회가 민주화투쟁의 중심에서 싸워 오늘 이만큼이라도 민주화가 된 거야. 일부 정치군인들이 휘두르는 총칼 앞에 국민도 노조도 숨죽이고 있을 때 민주산악회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왔네.”

“나도 그 속에서 환갑과 진갑을 넘기고 여기 온 거야. 오늘날 노조가 정부에서 하는 일을 반대하고 비판하고 시위와 파업까지를 할 수 있도록 싸울 수 있는 게 누구 덕인가.”

“나는 당연히 여러분의 환영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려워도 회사에서 생활비를 받아가며 싸웠지만 민주산악회를 한 사람들은 있는 가산도 다 탕진해 가면서 싸웠어요.”

“워커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공산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훌륭한 워커가 있고, 노조가 미워하는 워커는 국민이 혈세로 나라를 지키라고 사준 총칼로 국민을 위협하고 나라를 도둑질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던가요?”

“그러나 민주산악회는 오직 민주화의 한길만을 향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자신의 사생활을 내던지고 싸워온 애국 단체예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대부분의 선량한 군인들이 신고 있는 워커를 그런 나쁜 의미로 현수막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해요.”

“더구나 민주산악회를 무슨 등산이나 하러 다니는 단체로 보는 것은 더욱 안 되지 않아요?”

“낙하산 인사라고? 독립한 조국에서 이제 당신들이 싸워온 목표가 달성됐으니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애나보고, 앞으로 나라의 일은 기왕에 하던 친일파들이 계속해야 한다 그 말이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싫다고 한 군사독재가 물러가고 민주화가 됐는데 이제 그 민주화가 됐으니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여전히 나라의 일은 기왕에 하던 군부세력에게 맡기는 게 옳다고?”

“왜적으로부터 독립을 했으면 나라를 찾기 위해서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이 비록 행정 능력이 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라사랑으로 가득 찬 그 분들이 나라의 일을 맡아야 하는 것이 순리이고, 민주화된 지금은 나라와 민주화를 위하여 몸 바쳐 희생해온 사람들이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전면에 나서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나는 생각해요.”

“친일파나 반민주 세력은 겸손하게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중해야 마땅한 게 아닌가요?”

“나는 평생을 당신들이 정당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최루탄과 함께 살다가 이제 민주화가 돼서 여기 왔어요.”

“여러분은 마땅히 나를 환영해야 하고 나와 더불어 한국마사회의 보다 민주적인 운영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즐겁고, 능력을 더욱 제고할 수 있는 직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협력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해요.”


국정감사 때마다 낙하산 타령


내가 마사회에 부임하고 5년 동안 해마다 국회 문화체육위원회의 국정감사를 받았다.
문회체육위원 중에 민주당의 박지원, 최재승, 박계동 세 의원은 감사 때마다 민주산악회에서 마사회를 말아먹었다고 낙하산인사라고 비난을 하고 나왔다.

그때마다 회장과 우리는 곤욕을 치러야했다.

김용각 부회장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들어 왔고,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 후에 발령 받고 들어온 사람은 나 하나였고, 오경의 회장은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나서야 취임을 했는데 낙하산인사 시비가 위 세 사람이 벌이는 시끄러운 고정 메뉴였다,

강인섭 의원이 민주산악회 출신이었는데 회의 때마다 낙하산 시비로 곤욕을 치루는 우리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발언권을 얻어서 이렇게 말했다.

“동료의원의 발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회의 때마다 똑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말씀들을 하시니까 지적을 안 할 수 없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많은 자리가 바뀌는 것은 상식이요, 관례입니다. 몇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한번쯤 얘기하고 넘어가는 것은 좋지만, 회의 때마다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지적하는 것은 좀 심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민주당에서는 당원들을 한사람도 공직에 내세우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이제 낙하산 시비는 그만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듯 입만 열면 낙하산 시비를 하던 사람들이 집권하자마자 임원 7명 중에 6명을 일시에 갈아치워 마사회의 운영조차 마비될 정도로 낙하산이 아니라 융단폭격을 하는 뻔뻔스러움을 보였다.

유독 장관과의 시비로 나의 사표는 약 보름을 더 끌다가 수리되는 바람에 다른 임원보다 한 달 치 봉급을 더 탈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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