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재의 협동조합 이야기⑤>협동조합 성공은 금융부문 족쇄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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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재의 협동조합 이야기⑤>협동조합 성공은 금융부문 족쇄 풀어야
  • 이기재 지역과세계연구소 소장
  • 승인 2013.09.02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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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기재 지역과세계연구소 소장)

최근 협동조합의 양적 성장은 괄목상대하다. 수개월 만에 850건의 협동조합 신청이 있었다.  이 중 689건이 수리 되었다. 자고나면 7개 정도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빠른 속도는 시민사회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육성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인수위는 ‘5대 국정목표’와 ‘140개 과제’를 발표했었다. 이 중 10번째 국정과제가 협동조합에 관한 것이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10. 협동조합 및 사회적기업의 활성화로 따뜻한 성장 도모

1) 과제목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등 따뜻한 성장과 국민행복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창조적 사회경제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서 2017년까지 사회적기업 3천 개를 육성하고, 7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2) 주요내용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건비 지원은 단계적으로 축소하되 사업개발비?판로개척 등 간접지원을 확대하고, 성과에 따른 지원방안을 마련한다. 이를 위하여 투자펀드, 크라우딩 펀딩 등 민간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민간 유통망 진출 지원, 공공 부문 구매목표 비율제 도입 등으로 판로를 지원한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 백서 p57>

새로운 정부가 국정과제로 채택한 만큼, 큰 성장이 기대된다. 하지만 정부가 현장의 목마름에 대해 원인을 잘 파악하고 해결 대안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성장세는 곧바로 꺾여 버릴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2013년 협동조합 추진방향과 관련하여 정책기반 강화, 기존 정책과의 연계, 인프라 구축, 교육 홍보 활성화, 공공부문의 지원마련으로 설정하고 있다.

모두 다 필요한 것이지만, 협동조합 운동가들이 간절히 염원하는 금융부문에 대한 대안이 빠져 있다.
현재 협동조합은 업종 및 분야에 관계없이 누구나 5인 이상이 모여 설립할 수 있지만, 금융 및 보험업은 제외하고 있다. 농협, 수협 등 금융 업무를 취급중인 기존 협동조합의 반발을 고려했다는 얘기도 있고, 검증되지 않은 협동조합이 금융질서를 혼란하게 만들 우려가 있어 관리 차원에서 배제했다는 설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이 금융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성과를 내긴 힘들다는 점은 분명하다. 자본주의에서 금융은 심장과 같다. 지금의 자본주의 성장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짐으로써 가능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최초의 주식회사는 1962년 인도네시아로의 무역을 목적으로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동인도에서 후추, 향료 등을 수입하는 것은 큰 이익이 생기지만, 그 만큼 엄청난 비용이 요구되었다. 대규모의 무역선 건조, 선원 모집, 식량, 해적의 습격 등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주식을 통해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나누고, 이윤도 함께 나누면서 주식회사가 성장했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존재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금융이 필수적이다. 협동조합에 자금이 유입되고, 증식된 자본이 새로운 투자처로 확대되지 않는다면, 협동조합은 가내수공업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협동조합은 태생적으로 일반 금융권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 출자금에 대한 배당이익이 박하고, 투자위험을 회피하려는 방어적 운영방식 때문에 투자자를 모으기 힘들다. 기업의 주인이 조합원 전체이기 때문에 각종 서류작성, 동의 절차, 책임 문제에서 일반 기업에 비해 복잡하다. 또한 협동조합은 재무제표 외에 조합원간 신뢰, 조합의 역사성, 기업 문화 등이 중요한 가치이지만, 기존 금융권에서는 이에 대해 평가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협동조합기본법 22조’는 조합원이 납입한 출자금을 질권의 목적으로 삼지 못하게 규정함으로써 출자증서를 통한 담보 대출까지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 협동조합 성공시키려면 금융부문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 ⓒ사진제공=안종화

금융 없이 기업하라는 건 난센스

선진국의 성공 사례를 보면, 금융적 지원이 동반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노동금고’를 만들어 자금을 자체 조달하면서 성장했다. 네덜란드는 자산규모가 959조 원이 넘는 세계 25위 은행인 ‘라보뱅크’가 협동조합을 밀어주고 있다. 미국 썬키스트의 성장 뒤에는 협동조합은행인 ‘코뱅크’가 있으며, 이탈리아도 협동조합 총연맹(레가코프)이 만든 협동조합 투자은행이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1992년에 ‘협동조합 연대기금’을 만들어 모든 협동조합의 순이익 3%를 출연하게 만들었고, 이 기금이 협동조합의 발전과 새로운 협동조합의 창업 지원에 쓰이고 있다.

협동조합의 육성에 금융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에 금융을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은 농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농협은 이미  ‘협동조합 정신’이 미약해져 시중은행과 비슷해진지 오래며, 신생 협동조합을 지원할 법적 근거도 갖고 있지 않다. 신협은 경제적 약자를 위해 만들어진 만큼 협동조합에 관심을 기울이곤 있지만, 법인을 상대로 여신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협동조합에 도움이 되진 못한다.

새마을금고는 신협에 비해 운용 폭이 넓지만, 사업 구역 한계로 인해 전국적인 협동조합과 상조하기 어렵다. 생활협동조합인 아이쿱이 새마을금고 지점을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금고 중앙회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가 있다.

기존 금융기관의 활용이 어렵다면 새로운 ‘협동조합 특수은행’의 설립을 허가하는 방법이 있다. 중소기업은행이나 한국수출입은행 같은 특수은행을 설립하는 것이다. ‘협동조합 연대투자기금’ 조성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기금은 협동조합의 장점인 ‘협력 정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므로 불허할 이유가 없다.

성장시키려면 환경 조성부터 잘 해줘야 한다. 금융을 제한하면서 성장하라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총칼 없이 전쟁터로 나가라는 것과 같다. 정부가 협동조합 육성을 국정과제로 삼았다면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 줘야 한다. 그것이 지금은 금융의 문제라고 보인다.

앞으로 협동조합의 육성은 우리사회에 직간접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협동조합이 잘 되면 사회에 신뢰가 쌓인다. 신뢰는 공동체내에서 예측 가능한 약속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규제와 법치,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신뢰란 어떤 공동체 내에서 그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보편적인 규범에 기초하여 규칙적이고 정직하며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협동조합의 여러 가지 장점은 신뢰 사회를 만드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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