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승리는 나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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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승리는 나의 승리입니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4.1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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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제7대 대통령후보 지명 신민당 전당대회

1970년 9월 28일, 제7대 대통령후보 지명 신민당 전당대회 일자가 공고되었다. 먼저 40대 기수론을 제창한 김영삼 의원과 뒤따라 선언한 김대중, 이철승 세 분이 후보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제1야당 당수가 대통령후보로 나오는 것은 거의 상식적인 것인데, 김영삼 의원의 40대 기수론 제창 때만 해도 한마디로 구상유취라고 평가했던 유진산 총재는 후보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유진산 총재의 포기 이변은 그분의 책 『해 뜨는 지평선』 389쪽에 기술되어 있다. “나는 당시 당수의 위치에서 그대로 지명경쟁 나서면 지명이 될 공산도 컸다. 그러나 당인으로서 나 나름대로 민주조국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할 입장이라는 점과 이 제1야당의 당수 된 자가 당내 정치도의가 파괴적으로 동요되는 상황 속에서 대통령후보를 경쟁한다는 것은 나의 헌정관, 나의 양식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수인 내가 대통령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건 당 내외의 예견이었고, 직접 많은 사람들이 후보경쟁에 나서는 게 당연하다고 권유를 해 왔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야당의 존립, 야당의 시대적 사명을 두고 생각해볼 때 대통령후보 문제만을 가지고 지나친 아집과 독선의식으로서 경쟁을 벌였다고 할 때 예상되는 당내의 상황, 또는 노소상투하는 신민당의 인상을 국민 앞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과 우리의 궁극적 목적이 정권교체에 있다는 사실 등을 그야말로 냉철히 고려할 때 당수인 나는 정치이성을 견지해야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진짜 엄마의 참된 고민과 양보’를 직접 유진산 총재에게서 보고 들었다. 원래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영입한 유진오 박사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자동으로 제외되었고, 김영삼·김대중·이철승 세 분간에 너무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서 유진산 총재가 후보경선에 나서지 않는 대신 후보추천권을 위임해달라고 세 후보에게 요청했으나, 김영삼·이철승 두 분은 각서를 쓰고 서명하고 김대중 씨는 거부했다.

전당대회 전날인 9월 27일 중앙 상무위원회 회의석상에서 유진산 총재가 추천선언을 했다. “젊고 발랄하면서 투지가 왕성하여 박정희 후보와 능히 대결할 수 있는 김영삼 의원을 추천합니다” 이철승 씨는 후보에서 탈락하고, 김영삼·김대중 두 분이 후보경선에 임하게 되었다.

9월 28일 전당대회 1차 투표에서 김영삼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으나 과반수에 약간 미달해서 2차 투표를 했다. 그런데 이철승 쪽에서 원래 김영삼 후보를 밀기로 약속했으나, 김대중 씨가 자신의 명함에 “소석형님! 다음 전당대회 때 당수를...”이라고 쓴 밀약 메모를 이철승 씨가 받은 뒤 이철승 후보를 밀던 대의원들이 김대중 후보에게 표를 던짐으로서 근소한 차이로 김대중 후보가 과반수 득표에 성공해 신민당 대통령후보의 영광을 차지했다.

나는 그때 김영삼 후보를 지지해서 1, 2차 투표 모두 김영삼 후보를 찍고 뜻대로 되지 않아서 무척 속상하고 당황했다. 그런데 김영삼 후보가 가장 먼저 신상발언을 하고 나섰다. “김대중의 승리는 나의 승리입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은 모두 힘을 합쳐 김대중 후보를 앞세우고 기필코 정권교체를 이룩합시다. 이 김영삼이도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강선을 위해 김대중 후보를 앞세우고 서울에서 전국 방방곡곡 무주구천동까지 국민에게 호소하며 선거운동을 하겠습니다”

김영삼 후보의 신상발언이 끝났을 때, 찬반을 초월해 떠나갈 듯한 환호와 박수갈채로 대회장이 떠나갈 듯했다. 다음으로 신상발언에 나선 유진산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당원동지 여러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나는 40대 기수 중 한 사람을 여러 대의원들 앞에 추천했으나 나보다도 여러분들이 더 밝은 눈을 가지고 적합한 판정을 내려준 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당수의 권위가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당이 있고 당수가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투표결과에 전적으로 승복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뽑아준 김대중 후보를 내세워 최선을 다해 일치단결해서 비록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를 하지 않은 분들일지라도 김대중 후보를 적극 밀어 기필코 승리해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합시다”

평생을 이 나라의 건국과 민주정치 발전을 위하여 바쳤고, 야당생활에 지쳐 경제적으로 곤궁하다 못해 자녀들의 등록금을 못 내서 찾아온 동지를 위해 당신의 주머니를 털어주다가 돈이 떨어지면 사모님을 찾아가 “여보, 오늘 중소기업은행의 형편은 어떻소?” (이것은 집에서 밥하는 아주머니나 사모님 시중을 드는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돈을 말함) 하고 유머러스하게 물어 없는 돈을 빌려서라도 어려운 동지들을 보살폈으며, 갖은 음해와 악선전에도 끄떡하지 않던 분이었다. 그런 분이 판정을 순수하게 승복하겠다고 선언하자, 나를 비롯한 수많은 대의원들이 울면서 박수갈채를 보냈고, 주류 비주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 되는 기쁨을 나누었다.

그 다음에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수락연설이 있었는데, 다음 날 조간신문부터 모든 언론의 사설이 신민당 대통령후보 지명 전당대회는 당선된 김대중 후보와 유진산 당수, 김영삼 후보가 넓은 아량과 포용력으로 모두가 승리한 전당대회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민주주의 서광이 비치고 있다는 명랑한 기사로 채워져 있었다.

김대중 후보와는 대통령후보와 당수 자리를 주고받기로 밀약을 하고, 유진산·김영삼 두 분과는 사전에 직접 서명까지 하며 약속한 맹세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김대중 후보를 밀어 상식 밖의 이변을 낳게 한 이철승 씨는 대선 후 오히려 김대중 씨에게서 영구히 냉대를 당했다. 그리고 그때 명함에 뚜렷하게 써서 받은 김대중 씨의 각서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이철승 씨가 유진산·김영삼 두 분과 함께 맹서한 약속을 사내답게 지켰더라면 본인도 40대 기수의 대열에서 밀려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철승 씨와 나라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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