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업, ‘갑을 논란’ 소나기만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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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업, ‘갑을 논란’ 소나기만 피했다
  • 전수영 기자
  • 승인 2013.12.30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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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사그라지자 피해보상 지연…법안은 국회서 ‘쿨쿨’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전수영 기자)

▲ 지난 7월 3일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열린 남양유업 사태 즉시 해결 촉구 국회의원·중소상공인·시민단체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대리점주에 대한 영업사원의 폭언이 공개되며 논란이 일었던 ‘갑을’ 관계가 연말이 다 되도록 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갑을 관계 논란 이후 기업들이 내놓은 개선안이 명칭만 바뀌고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5월 초 대리점주에게 밀어내기를 강요하고 폭언을 한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전화통화 내용이 공개되자 국민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기업이 이익만을 창출하기 위해 대리점에 물량을 떠넘기고, 자신들의 ‘명령’을 듣지 않는 대리점에는 잘 팔리는 제품을 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압박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그동안 유통업계에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이른바 ‘갑질’의 전형이었다.

남양유업 측은 이런 관행은 회사가 벌인 것이 아닌 일개 영업사업의 잘못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피해대리점주들은 회사 측에서 조직적으로 벌인 것이라며 각종 피해자료를 내놓았다. 남양유업 측은 당황했다. 여기에 국민들과 유통업계에서는 자체적으로 남양유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고, 남양유업의 매출은 급감했다.

결국 남양유업 김웅 대표이사와 임원들은 국민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후 자정결의대회를 열어 기존의 악습을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

남양유업은 피해대리점주들과 만나 그간의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제스처에 불과했다.

회사 측과 피해대리점주들이 논의를 거듭했지만 회사 측은 피해를 입은 근거 자료를 대리점주들이 챙겨야 한다고 책임을 미뤘다. 근거가 미약할 겨우 보상을 못하겠다는 입장도 고수했다.

이에 법원은 10월 2일 회사가 100%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며 기초자료가 회사에 편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피해대리점주가 피해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시했다.

남양유업은 공정위가 부과한 123억 원의 과징금도 너무 많다며 깎아 달라며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이를 두고서도 남양유업 측은 과징금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닌 재량경감의 여지가 있는지 살펴봐달라는 취지에서 이의신청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6개월이 한참 지났지만 남양유업 ‘갑질’ 논란은 아무런 성과 없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통업계 전반에 퍼져 있는 ‘갑질’

남양유업 사태로 기업들의 횡포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유통업계 전반에 걸쳐 ‘갑을’ 관계 논란이 일었다.

영업부진을 사유를 대리점주에게 일방적으로 물린 편의점 업계가 대상이 됐다.

점주들은 매출이 거의 없는 심야시간대에도 일을 해야 했고, 이들의 업무 유무와 태도 등은 고스란히 CCTV에 찍혀 회사 측에 보관됐다. 회사 측에서 애초에 제시했던 매출만큼 나오지 않아 계약을 중도 해지하려고 해도 위약금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로 인해 영업을 하면 할수록 실적 부진은 커졌지만 점주들은 위약금이 무서워 하루 종일 편의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전통주 제조로 잘 알려진 국순당의 ‘갑질’도 다른 유통기업 못지않았다.

국순당은 대리점주들과의 협의 없이 실적 부진 대리점을 퇴출시켰다. 이와 함께 국순당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밀어내기’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부진 대리점을 퇴출시킨 것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것으로 판결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국순당은 피해 보상 협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피해 보상에 대한 협의는 중단된 상태다. 피해대리점주들은 국순당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국순당 측은 오히려 이들 중 일부에 대해 영업방해라고 주장하며 이들을 고소했다.

종합식품회사인 대상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대상FNF는 한 농산물업체와 계약을 맺고 깐마늘을 공급받았다. 물품공급을 체결하며 마늘 가격이 오를 경우에도 기존 체결한 공급가액으로 사들였지만 시장가격이 하락했을 때에는 여러 핑계를 대며 계약가로 구매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농산물업체는 수억 원의 피해를 봤지만 피해보상을 받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밖에 아모레퍼시픽도 밀어내기는 물론 매출이 좋은 대리점을 빼앗았다. 전국 각지에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대리점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국회 국정감사에 질책이 이어지자 피해보상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회사 측은 피해보상이 아닌 위로금을 제시하며 피해대리점주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더욱이 아모레퍼시픽 측은 국정감사 기간에는 피해대리점주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태도를 보이다 여론이 잠잠해지자 대화 태도가 소극적으로 바뀌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갑을’에서 ‘협력업체’로 명칭만 변경

갑을 논란이 불거지면서 유통기업들은 기존 계약서에 표기된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회사와 대리점 또는 납품업체를 ‘협력회사’란 이름으로 대체했다.

일부 지적돼 온 거래관행이 바뀌기는 했지만 이는 계약서상의 ‘글자’에 불과할 뿐 현장에서는 이를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 편의점주는 “여론이 들끓고 난 후 회사 측의 태도가 바뀐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하지만 이 같은 태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계약과 관련해서 편의점 계약서는 수도 없이 지적을 받아 왔다. 그래서 개선된 것이 이 정도다. 아직까지도 미흡한 부분이 많아 회사와 점주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좀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본사와 대리점 간의 불공정거래를 제재하는 이른바 ‘남양유업방지법’은 그동안 국회에 계류돼 있어 국회가 민생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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