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성공 일궈낸 … 유니버설발레단 25년사
스크롤 이동 상태바
절반의 성공 일궈낸 … 유니버설발레단 25년사
  • 차완용 기자
  • 승인 2008.12.31 1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젤’ 공연을 통해 한국발레를 세계에 알린 ‘문훈숙’
국내 무용계를 대표하는 유니버설발레단(UBC:Universal Ballet Art Center)이 올해로 창단 25주년을 맞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지난 1984년 7월 14일, 국내에서는 최초의 민간 직업 발레단으로 창단된 이후 국립발레단과 더불어 한국 발레의 두 기둥으로 성장했다.

1984년 당시 21세 발레리나 문훈숙을 주역으로 내세운 전막 발레 <신데렐라> 공연을 통해 화려하게 출생 신고를 했던 이 민간 발레단은 창단 직후부터 25년 터울의 손위 단체 국립발레단의 호적수로 점쳐졌다.

‘국립발레단과 선의의 경쟁자가 되겠다’는 유니버설발레단의 희망은 충분히 이뤄졌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UBC는 국립발레단을 추월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창단 1년 만에 당시 국립발레단이 꿈도 꿀 수 없었던 아시아 순회공연을 시도했으며, 창단 5주년이던 1990년 무렵에는 레퍼토리를 이미 40여개나 보유하는 등 중견 발레단으로 성장했다.

이후에도 유니버설발레단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24년 동안 18개국에서 약 410회의 순회공연과, 1200여회의 국내공연을 하며 활발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시사오늘

 
◇ 유니버설발레단의 성과와 오늘

유니버설발레단은 1995년부터 문훈숙 수석 발레리나를 단장으로 앉히고 세상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19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은 문 단장을 주인공으로 한 ‘지젤’ 공연을 통해 한국발레를 세계에 처음 선보이기까지 했다.

이를 계기로 유니버설발레단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주인공인 문 단장은 ‘영원한 지젤’이라는 닉네임까지 받게 된다.
당시 미국의 저명한 한 평론가는 “누가 지젤을 ‘줄리아H. 문’ 만큼 출 수 있는가”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는 문 단장이 발레리나의 길을 접고 본격적인 단장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시 한번 도약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유니버설발레단은 국내 발레 문화의 대중화를 선언했다.

사실 한국발레는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해외에서 더 명성을 얻어왔다.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무용수도 즐비하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바꾸고자 유니버설발레단이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 것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모던발레를 비롯 브런치 발레, 뮤지컬 발레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국내 발레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국제 수준의 안무가 영입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레퍼토리를 확보

이 일환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은 창단 20주년을 맞이한 해인 2004년에 서울 능동 어린이 대공원 입구 야외 가설무대에서 `봄빛 발레 축제`라는 이름으로 길거리에서 발레 공연을 시도했다. 화려한 조명과 음향시설을 마다하고 거리로 나와 대중 앞에 선 것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대중화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국내 발레단 가운데 최초로 세컨드 컴퍼니인 UBCⅡ를 창단해 소규모 컨템포러리 레퍼토리 개발과 '틈새 관객' 공략 등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군 개념의 준 프로 무용단은 해외 유명 발레단에서는 이미 널리 활용하고 있는 제도다.
세계 명문 발레단으로 꼽히는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나 네덜란드 댄스시어터(NDT), 스위스 취리히발레단 등이 이른바 2군 개념의 ‘세컨드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세컨드 컴퍼니 발레단은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기존 공연단체에서 펼칠 수 없는 실험 작품 등 다양한 독립 공연을 펼친다.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은 “UBCⅡ는 단원들의 연령?어리고 정식 무대 경험이 적다는 측면에서 프로 스포츠의 2군 개념과 흡사하지만 창의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공식 무대에 올린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정식 프로 발레단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유니버설발레단은 '브런치 타임' 클래식 공연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오전 11시 공연 '브런치 발레'도 4차례 진행해 호응을 얻었다. 여름철 레퍼토리 발굴을 목표로 선보인 신작 발레뮤지컬 '심청'도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시도를 하며 ‘대중 껴안기’를 계속 시도했다.

이에 대해 문 단장은 “어떤 장르의 예술이든지 관객이 없는 공연은 의미가 없다”며 “공연 티켓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고 발레 공연 전에 직접 해설을 곁들이는 등 관객에게 다가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유니버설발레단이 한국 발레계에 미친 영향은 일단 방대한 레퍼토리 확장을 들 수 있다. 초대 예술감독 에드리언 델라스를 비롯해 로이 토비아스,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올레그 비노그라도프에 이르기까지 국제 수준의 안무가들을 지속적으로 영입해 다양하고 풍부한 레퍼토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에드리언 델라스는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이전 선화예고 발레 교사로 취임하면서 국내 최초로 바가노바 교육 시스템을 도입했다. 발레리나 문훈숙을 비롯해 발레리나 7명을 키워낸 그는 국내 발레 발전의 1등 공신이다.

1988년 예술감독을 맡은 로이 토비아스는 재임 중 무려 20편이 넘는 신작을 선보이며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했다. 1992년 올레그 비노그라도프를 영입하면서 더욱 활발해진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과의 교류는 또 한 차례 발전의 계기로 다가왔다.
▲     © 시사오늘

브런치 발레, 뮤지컬 발레 등 다양한 시도 통해 ‘대중 껴안기’ 성공
 
당시 국내 발레 교육 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은 창단 이래 지금까지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 역할을 겸임했다. 이러한 양적 팽창은 우수한 단원들에 의해 질적 성숙으로 이어졌다.

그 동안 유니버설발레단이 양성한 우수한 재원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섭외해야 했던 해외 무용수들의 자리를 넉넉하게 채우고 있다.
우수한 국내 무용수들은 현재 발레단 내에서 외국인 무용수와 동등한 대접을 받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외 진출을 시도할 만큼 성장했다.

룩셈부르크 콩쿠르 대상을 받은 김광현,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스웨덴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전은선, 한국인 최초로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하고 최근까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서 활동했던 강예나, 지난해 보스턴 발레단으로 이적한 김세연 등이 모두 유니버설발레단을 친정으로 두고 있다.

◇ 완벽한 성공이라 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유니버설발레단

이 같은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유니버설발레단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아쉬움을 딛고 일어서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다름 아닌 제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 중 제대로 된 수익을 내는 공연은 <호두까기 인형> 밖에 없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의 수준이 낮아서도 아니고 무용수들의 역량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국내 발레 문화 인식이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힘든 고급문화로 치부돼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 인식은 바로 수익률을 까먹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실 국내 발레 문화는 볼모지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국내 굴지의 재벌 그룹들이 몇 차례 예술단체들을 창설했지만, 채 2년도 못가서 문을 닫아버리는 척박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수익구조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니버설발레단이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교재단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통일교재단은 유니버설발레단 전체 예산의 약 50% 정도의 지원을 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은 18개국에서 약 410회의 순회공연과 1200여회의 국내공연을 하며 한국 발레 예술을 세계만방에 과시해 왔다.

또한 국내 발레 문화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 왔다. 단원의 규모면에서도 창단 공연시 10여명으로 출발한 정단원이 지금은 70명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이 이토록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통일교재단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문화재단을 창설한 유니버설발레단 박보희 이사장은 “지금까지 유니버설발레단이 성장할 수 있기 까지는 문선명 총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일교재단의 막대한 경제적 지원이 있는데 ‘이정도의 성장은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실상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척박한 국내 발레 문화 인식으로 ‘빈곤한 재정’…앞으로 풀어야할 과제

통일교재단은 엄밀히 말하면 종교단체지만 사업 영역이 점차 다양해지면서 기업체 성격을 보여 왔다. 이를 반영하듯 통일그룹은 통일교재단의 외적 규모와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교가 보유한 사업체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으며, 북한에서도 평화자동차 등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통일교는 미국과 일본에만 수백 개의 사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실상은 외부에 알려진 바가 없다.

국내에서는 20여 개 기업을 거느린 기업 집단으로 준재벌에 해당한다.
국내 통일그룹은 문 총재가 예화산탄공기총제작소를 설립, 공기총을 만든 데서 그 뿌리가 시작된다. 이후 사업체가 번성하기 시작해 음료수와 약품을 만드는 일화를 비롯해 일신석재, 한국티타늄, 일성건설, 용평리조트 등 알짜배기 기업군과 언론사인 세계일보를 경영했다.

하지만 IMF 위기를 겪으며 한국티타늄, 통일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들의 소유권이 넘어 가는 등 통일그룹의 사업은 원활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그룹은 얼마 전 재인수한 일화를 비롯, 아직도 20여개의 사업체가 있다. 농원관리를 하다 여수 프로젝트를 맡은 ㈜일상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가 많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영향력 있는 기업이 아닌 것이다.
통일그룹은 세계일보, 미국의 워싱턴타임스, UPI통신 등 언론매체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언론사 역시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이윤이라는 관점에서의 성과도 미미한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이들 기업과 언론매체들은 유니버설발레단이 갖고 있는 대중적 영향력에는 한참 뒤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통일그룹은 유니버설발레단 외에도 성남일화 축구단, 브라질의 소로카바 축구팀 등의 프로축구단도 운영하며 스포츠 문화사업도 진출해 있다.

특히 막대한 자금 동원력을 갖춘 만큼 통일그룹이 진행하는 대규모 스포츠 행사들도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피스컵코리아 축구대회. 2003년부터 통일교 소속의 선문평화축구재단이 200만달러의 우승상금을 내걸고 피스컵 축구대회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막대한 자금동원에도 불구, 아직까지는 국내 및 해외에서의 성과는 유니버설발레단에는 못 미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통일그룹 내에서 유니버설발레단 만큼의 성과를 거둔 기업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대중 끌어안기에 성공한 유니버설발레단이 제정적인 측면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면 이는 실로 완벽한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유니버설발레단은 최근 수익률 창출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익률 창출이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 직면한 유니버설발레단의 최전방에는 30년 인생을 오로지 춤에 바친 문 단장이 ‘경영자’로 변신, 앞장서고 있다.

그동안 문 단장은 지난 2004년 6월 창단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공연예술과 기업과의 만남, 문화마케팅`이라는 주제발표를 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춤을 잘 출 것인가만 고민하던 발레계 풍토에서 이같은 시도는 상당히 파격적인 접근이었다. 고급예술로만 여겨지던 발레의 세계에 `마케팅`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또한 문 단장은 유니버설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후원회를 발족했다.
이를 통해 튼튼한 물적 토대를 갖추기 위한 포석을 마련한 것이다.
문 단장은 KTF, 주노헤어, 노블리안닷컴 등 기업체와의 공동 프로모션 활동을 전개하는 모습을 통해 어느새 예술가에서 ‘CEO'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문 단장은 지난 2007년에 관리직 20명을 아웃소싱해 조직의 군살도 빼고 CJ엔터테인먼트와 일산아람누리극장 등 기업들과 공동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비에 들어가던 거품을 최소화 하고, 기량을 강화해 2008년에는 <호두까기 인형>에 이어 <지젤> 공연에서도 흑자를 냈다.
또한 유니버설발레단은 세계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급부상 중인 두바이에도 진출해 국내 발레 문화 사업을 해외에 수출하는 성과도 올렸다.

지난 11월 6일부터 15일까지 아랍 에미레이트 아부다비와 두바이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을 개최한 것이다.
두바이에서 대형 전막 발레를 공연하는 것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처음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총 18만 유로(한화 2억5000만원)의 공연료와 현지 체재비 등을 받는 조건으로 아부다비 에미레이트 팰리스 극장과 두바이 팔라디움 극장에서 각 3회씩, 총 6회 공연을 펼침으로써 해외에 유니버설발레단의 명성을 알림과 동시에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이 밖에도 지방의 중·소규모 공연장을 찾아가는 공연과 UBCⅡ의 젊은 무용수를 중심으로 한 신선한 프로그램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유니버설발레단의 내실 있는 경영 변화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동안 통일교재단에서 후원해 주던 지원금이 올해부터는 전체 예산의 40%로 감소되기 때문이다.

이는 유니버설발레단이 이제는 홀로서기가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발레계의 한 인사는 “유니버설발레단의 홀로서기를 위한 경영 노력은 대중 속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또한 한국 발레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그들의 저력에 비춰볼 때 성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우아한 백조처럼 발끝으로 뛰어오르는 발레리나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듯이, 내실을 다지고 세계 속의 발레단으로 웅비하는 유니버설발레단에게 우리는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