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선택제 일자리 허와 실①>고용률 70% 공약, 시간 선택제만이 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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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선택제 일자리 허와 실①>고용률 70% 공약, 시간 선택제만이 답인가?
  • 박시형 기자
  • 승인 2014.01.23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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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근무시간 줄이고 인건비 높여 상생하는 방안 필요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

사무실에서 서류를 열심히 복사 중인 신입사원 A 씨. 그는 지난해 노조가 적극적으로 임금 단체협상에 나선 결과에 따라 올해 임금이 3.5% 인상됐다. 그보다 6개월 정도 먼저 입사한 B 씨는 총무팀과 연봉협상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개인 실적이 좋았던 터라 내심 3% 이상 인상되길 기대했으나 사측은 사업비의 책정에 어려움이 있다며 2%대의 인상을 제시했다. C 씨는 얼마 전부터 세 살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로 돌아왔다. 2년 만의 업무 복귀라 아직 실수투성이지만 하루 4시간만 일해도 된다는 회사의 방침에 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즐겁기만 하다. 다만 출산 전 자신이 맡았던 업무 대신 사무보조나 물품 구매 등의 업무가 돌아왔다.

세 사람 모두 회사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A 씨만 노동법이 보장하는 3대 권리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정규직이다. B 씨와 C 씨는 무기 계약직으로 계약서에 묶인 비정규직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절대적인 차이가 회사의 임금 지출항목에 있다고 했다. 정규직은 직원의 임금이 회사의 인건비 항목에서 지급된다.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노동삼권을 적극 활용해 임금을 협상할 수 있다. 반면 비정규직은 사업별로 필요에 의한 인력 채용을 하기 때문에 사업비 항목에서 임금이 지출된다. 그래서 꾸준한 임금 상승이 어렵고 승진이라는 제도가 없다. 심지어 사업이 없어지면 근로자도 계약 만료로 해고될 수 있다.

같은 비정규직 내에서도 B 씨와 C 씨는 또 다른 차이를 보인다. C 씨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 중인 ‘시간선택제 일자리’노동자다.

제도 정비도 않고 일자리 늘리기에 급급

민주노총은 시간제 근로에 대해 이미 몇십 년째 이어진 일자리를 박근혜정부가 새롭게 포장해서 양질의 일자리인 양 광고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고용률 70% 공약은 공공근로를 비롯한 공무원, 기업들에까지 무조건 시간제 일자리를 채우라는 윽박으로 이어졌고 일선 현장에서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사업 도구’로 채용됐다.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도 없이 차별 직군이 또 하나 생긴 셈이다.

우문숙 민주노총 비정규전략본부 국장은 “우리 사회의 핵심문제는 양극화다”며 “박 대통령이 사회 안정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얻지 않는 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데 노동시장에는 이제 80만 원짜리 시간제 일자리만 남게 됐다”고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기조는 박근혜정부로 이어져 무조건적인 경쟁체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는 채용의 책임을 기업에 미루고 기업은 핵심인력 몇 명만 채용한 뒤 시간제 근로자들을 관리하도록 한다.

청년들은 취업시장에 내몰려도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남은 일거리는 10년, 20년을 일해도 대학에서 진 빚을 갚을 수 없는 비정규직과 시간제 일자리뿐이다.

▲ 정부는 교사 직군에 시간 선택제를 도입하려다 철회했다. ⓒ뉴시스

정부에서 운영 중인 초등학생 돌봄 교사는 이미 시간제 근로로 채워졌다. 돌봄교사는 15시간의 초단기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법적 보호를 모두 피해간다. 퇴직금은 고사하고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다. 서비스 수혜자인 초등학생들을 마주하는 건 일주일에 이틀뿐이라 학생이나 교사에게 만남이 혼란으로 다가온다.

최근 경기도 부천시는 방문간호사 28명을 모두 해고하고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방문간호는 지역 상주 간호사가 고령 기초생활 대상자나 취약계층을 돌보는 좋은 서비스지만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됨에 따라 근로 시간 제한으로 질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10분 단위로 근로 계약을 했던 홈플러스는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이 끝났더라도 고객 응대를 하고 있으면 종료할 수 없었다. 또 근무 시작 30분 전까지 출근하도록 해 하루 평균 30분~1시간을 초과 근무 시켰다. 초과 근무수당은 계약 조항에 따라 지급하지 않는다. 500명을 고용해야 할 영업장에서 이런 무료노동 시간 때문에 400명만 고용해도 운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절감된 비용이 근로자에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시간 선택제 일자리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출산이나 육아 등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는 분위기다. 출산이 개인과 본인의 가족만 위한 것도 아닌데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모든 짐을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육아와 일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에 4시간만 일해도 된다는 건 이들에겐 희소식이다. 지난해 11월 코엑스에서 단 하루 열린 ‘시간 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3만 명이 몰린 것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 모습이다.

박람회에 참석했던 한 주부는 “아직 아이가 어려 풀타임으로 일하긴 부담스러운데, 하루 4시간이면 충분히 육아와 병행하며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10명 중 9명이 괜찮은 시간제 일자리라면 일 할 의사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육아(37.9%)로 나타났고 뒤이어 자녀교육(25.9%), 가사(11.3%)로 조사됐다.

정부도 시간제 일자리가 ‘양육’과 ‘일’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에게 필요한 제도라고 말한다. 우문숙 국장은 “그렇기 때문에 경력단절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려면 적절한 임금과 고용안정이 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줘야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원하는 경력단절 여성은 아이를 양육하다 남는 시간에 일 할 여성이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 민주노총은 지난해 11월 시간 선택제 일자리 박람회장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뉴시스

노동계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는 시간제 일자리의 확대가 아닌 현행 근로시간의 단축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세계 최장 근로시간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연장근로 시간을 나눈다면 양질의 일자리를 필요한 만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작은 정부를 추구할 게 아니라 기업의 환원을 끌어내고 정부의 세금 낭비를 줄여 사회에 재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 예로 민주노총은 네덜란드의 제도를 소개했다. 해외에서도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근로시간은 단축하는 대신 임금을 높여 고용문제를 해결했다. 네덜란드의 최저임금은 원화로 환산해 1만5,000원 수준이다. 또 노동자를 대하는 기업의 자세나 철학이 국내와 완전히 달라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소득 수준 이상의 생활이 가능하다.

민주노총은 우리나라도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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