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27)>강원택, “YS는 가장 저평가 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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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27)>강원택, “YS는 가장 저평가 된 대통령”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4.03.13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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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 탑 민주국가…현재는 정당정치의 위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 강원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시사오늘

"한국 정치에 과연 부정적인 모습만 있었을까?"

2014년 <북악정치포럼>의 첫 번째 주인공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가 던진 화두다.  우리가 그동안 한국 정치의 일면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질문이다.

강 교수는 한국정당학회 회장을 지내고 한국정치발전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정통 정치학자다.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 <한국의 선거정치>등 저서만도 스무 권이 넘는 그는 3월 11일 ‘한국정치의 변화와 개혁과제’란 주제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강 교수는 강연의 시작에서 “우리 정치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자”고 운을 띄웠다. 이어 다음과 같은 서언을 덧붙였다.

“한국정치하면 뭐부터 떠오르는가. 싸움, 욕심…모두 나쁜 것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런 모습만 봐야 하나. 발전한 측면이 있으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부분이 있으면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자는 이야기다.”

강 교수가 다음에 제시한 것은 한 장의 도표였다. 1960년부터 2011년까지의 대한민국 1인당 GDP였다. 그래프는 간혹 부침을 겪지만, 꾸준히 상승해 2만 불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강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강 교수가 강연에서 제시한 도표 ⓒ인터넷커뮤니티(http://barryspost.net/post/4379)

“한국의 1인당 GDP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해서 발전을 이뤘다. 그런데 과연 이 경제성장이 기업들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경제 성장은 정치의 성숙이 뒷받침해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의 정치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동남아나 남미에서 한국과 비슷한 시기 민주화 과정을 겪은 국가들 중, 지금도 대 혼란에 빠져있는 나라들이 많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20위다. 일본은 23위, 북한은 꼴찌인 167위다. 상위 25개국만이 ‘완전한 민주국가’라고 평가받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의 불평과는 달리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법 공고한 상태인 것이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지난 30년간 한국 정치의 최대 위기는 2004년 일어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갈등이 일상화 돼있음에도, 1987년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려는 노력은 없었다고 감히 이야기해도 된다. 그런데 탄핵사건은 달랐다. 만약 탄핵안이 가결됐다면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절차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길가로 나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결국 또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치가 복원될 때까지 대중소요나 봉기, 심각한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분히 총선을 기다린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의 압승으로 민심을 보였다. 국민투표와 다름없었다. 헌정적 장치에 의해 정치적 위기가 해소된 사례다.”

한국은 과연 실패한 대통령 뿐인가?

강 교수는 그러면서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본인들에게 주어진 시대의 소명을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강 교수가 짚어본 전직 대통령들의 ‘과에 가려진 공’들 이다.

우선 강 교수는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을 꼽았다.

“1987년에서 1990년대 초반은 시대의 전환기였다. 한국으로선 군부정권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화 체제로의 전환기, 국제적으로는 냉전에서 탈냉전기로의 전환기였다. 부드러운 리더십이 필요했다. ‘물태우’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이 이 당시에 집권했다면 시민사회와 충돌했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북방정책을 성공시켰다. 남북 기본합의서, 비핵화 합의, 고위급 회담 등이 이뤄졌고 중국 ‧ 동구권 국가와 수교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박철언 김종인 김철휘 등 당대의 주요 인사들과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식 때부터 동구권 국가와의 수교를 언급했다. 군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연한 사고다. 그러한 생각의 배경엔 전두환 정권 당시 여러 장관직을 역임한 그가 마지막에 했던 체육부 장관직이 있다. IOC 의원 등 체육부 장관 활동을 하며 그가 깨달은 것이 바로 중국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수교 필요성이었던 것이다. 한중수교가 5년, 10년 늦어졌으면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을 것이다.”

강 교수는 이어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군부 청산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정권교체를 주목했다.

“다음으로 저평가 된 것은 YS다. 경제적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 민주주의에 관련해서는 YS의 공적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회’ 청산이다. 지금도 태국은 군부 청산에 실패해 쿠데타 가능성이 여전하다. 남미는 정치 전면에선 물러났지만 지금도 군부는 거대 이익집단이다. 한국은 20년 이상 군부가 집권했음에도 하루아침에 청산됐다. 그 관련 고평가는 YS에게 줘야 할 몫이다. 정치군인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DJ는 집권 자체가 한국 정치발전에 도움이 됐다. 어떤 사회에 ‘우리는 집권할 수 없어’라는 의식이 팽배한 집단이 있을 경우, 그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정치 말고 폭동 등의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적 소외,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억압을 버텨낸 호남이 정치를 통해 정권을 잡게 됐다는 것이 이미 큰 사건이다. 햇볕정책도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이미 햇볕정책 이전으로는 돌아가기 어렵게 되지 않았나”

비교적 최근 인물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MB) 전 대통령도 간략하게 언급했다.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긴 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와 참여의식도 높이 사야 한다. MB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보이지만 주한 외교관들의 평을 빌면 MB정부 때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처음 '국제적 역할'을 시작했다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줬다고 했다.”

강원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금 한국 정치의 민낯, 그리고 숙제

강 교수는 현정치에 대한 진단도 빼놓지 않았다. 정치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말처럼 현재 한국정치가 안고 있는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강 교수가 한국정치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짚은 것은 정당의 약화였다. 그는 “3김(YS, DJ, JP)시절보다 조직으로서 정당이 약화됐다고 본다. 정치개혁의 방향이 정당정치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정치적 리더십의 약화, 유권자와의 멀어진 거리감, 정당불신과 낮은 정치참여가 지금 한국 정당의 현실이다.”라고 역설했다.

양극화도 지적했다. 그는 “한국 정치는 양대 정당의 과점적 지배 구조다.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기 어렵다. 경쟁자가 없으면 정치적 혁신이 내부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최소 한 두개의 정당이 더 있어야 현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극화와 갈등이 중재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강 교수가 지적한 것은 대중매체로 인한 정치의 위기였다. 강 교수는 “최근 매스미디어와 여론조사가 결합한 이미지 정치가 등장했다.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깜짝 등장해 정치판을 들썩이게 한 안철수 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지만으로도 정치판이 흔들린다는 것은 위험한 징조다. 한국정치가 포퓰리즘에 점점 취약한 구조가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중매체와 인터넷, SNS의 활성화와 함께 정치 참여가 늘어나는 일면은 바람직하지만, 정당정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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