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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의 홍문표, 충남도지사 도전 ´주목´
<2014 주목할 정치인(37)>“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정치, 그 안에 내 꿈이 있다”
2014년 03월 16일 (일) 윤명철 기자 tdc007@nate.com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충남지사 도전에 나선 홍문표ⓒ뉴시스

4전5기의 정치인 홍문표가 충청도지사에 도전장을 던졌다. 홍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충청권에서 한나라당 유일의 당선자였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그에게 “홍문표 의원이 없었다면 우리 당이 전국 정당이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당선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1967년 대학생 신분으로 유진오 박사의 선거 운동원으로 시작된 정치인생의 정점을 찍을 마지막 도전에 나선 홍문표.

냉혹한 정치판에서 고통의 세월을 특유의 인내력으로 살아온 홍문표의 선택에 국민들의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진오부터 박근혜까지

홍문표는 1947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홍문표는 중3말 아버지 돈을 훔쳐 무작정 상경했다, 어렵사리 지인을 만나 고학 끝에 한영고등학교 야간반을 졸업했다.

고교시절이었던 1964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시위에 참가했다, 당시 고교생 홍문표는 “김종필 총리가 대마도를 팔아먹었네, 독도를 팔아 먹었네“하는 소문에 격분했다. 한일협정이 굴욕이요, 국가를 올바로 지키는 것이 아닌 것 같아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 일찍 정치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드디어 대학생이 됐다. 1967년 건국대학교 농화학과에 입학했다. 미군들을 대상으로 태권도 사범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름대로 여유있는 대학생활을 보내던 그에게 운명을 바꿀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1968년 정국은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추진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강렬하던 시기였다. 당시 대학생들은 고려대 유진오 박사의 특강을 통해 지적 목마름을 채울 수 있었다, 농대생 홍문표도 마찬가지였다. 유진오의 사람이 됐다. 유진오 박사가 총선에 출마하자 그도 선거운동원이 됐다. 40년 정치 인생이 서막이었다. 신민당 청년부장에서 시작해 조직부장을 거쳐 청년국장까지 올랐다. 30 여 년 후, 그는 한나라당 조직개혁을 주도하게 된다.

5공이 들어섰다. 5공 공포정치의 상징인 삼청교육대 체포명단에 홍문표의 이름이 올랐다. 부산에서 도피생활을 했다. 체포령이 끝나고 정계로 돌아왔다.

새로운 정치스승을 만났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재형 국회의장이었다. 이재형 국회의장의 4급 의전비서관이 됐다. 승진을 거듭해 1급 정무수석비서관까지 올랐다. 마음속엔 국회의원의 꿈이 꿈틀대고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첫 발을 딛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낙선의 쓴 맛을 보았다. 이제 4전 5기의 서막이 올랐을 뿐이다. 그때 만 해도 그는 첫 당선의 기쁨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걸릴 줄 몰랐다.

2년이 지나고 정치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청천벽력과 같은 3당 합당 소식을 들었다. 아침에 회의까지 같이 한 김영삼 총재는 아무 언질도 안 줬다고 한다. 충격이 컸다.

홍문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3당 합당은 야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신을 위해 원칙을 버리고 동참할 의사가 없었다. 정치인으로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선택은 ‘꼬마 민주당’이었다.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 박찬종, 이철 등이 행동을 같이했다. 14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15대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대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대중과 이회창, 양자택일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보수 성향의 충청도 사람, 홍문표는 새로운 이미지를 가진 이회창을 선택했다. 이회창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부친은 임종할 때까지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외쳤다고 한다. 나중에 이회창에게 잊을 수 없는 배신을 당한다.

드디어 2004년 17대 총선에서 첫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4전 5기 도전, 뚝심의 성과였다. 또 그만의 맞춤형 지역구 관리가 만들어낸 승리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충청권에서 홍 의원만 당선돼 전국정당의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18대 총선에서 뜻밖의 복병을 만난다. 2번의 대선에서 패배해 정계를 은퇴했던 이회창이 자신의 조부 묘소가 있다는 이유로 홍 의원의 지역구인 예산·홍성 출마를 선언했다. 옛 주군의 어이없는 배신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의 냉정한 단면이기도 했다. 결국 낙선의 쓴맛을 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를 눈여겨 봤다. 농어촌 공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조직의 달인답게  무려 13.8%의 구조조정을 통해 성공적인 모델로 인정받았다. 세계 최장의 새만금방조제도 완성시켰다.

19대 총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승리로 국회로 복귀했다. 그는 “농어민이 잘 살아야 대한민국은 강한 선진국이 된다”는 생각으로 농수산업 관련 법안 만들기에 몰두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최선을 다했다. 대선의 바로미터 충남은 박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정치, 그 안에 내 꿈이 있다” ⓒ뉴시스

이제는 충남도지사… 산 너머 산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충남도지사 출마다. 하지만 여건은 좋지 않다. 본선도 문제지만 당내 경선 통과가 우선순위다. 이명수, 정진석 등 쟁쟁한 후보들과 치열한 예선을 치러야 한다. 예선을 통과해도 현직 안희정 지사가 독보적이다.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모든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새누리당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현재 충청권은 새누리당과 선진당의 통합으로 1 대 1 대결구도가 형성된 것이 위안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선 같은 보수성향의 선진당으로 인해 3파전이 돼 안희정 지사가 당선됐다. 하지만 이제는 1 대 1대결이라 선거전에 들어가면 보수층의 단결을 기대해 볼만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만약 이인제와 이완구 같은 충청권 스타급 정치인이 적극적으로 유세에 나선다면 보수층은 뭉칠 것이다. 그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충청권의 맹주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반드시 이겨야 할 전쟁이다. 또 충청권의 옛 맹주 JP가 한 마디 거든다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거 막판에 홍 의원이 정치 후배에게 충남도지사 후보자리를 양보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정치를 배웠기 때문에 양보가능성도 있다"고 귀뜸했다.

홍문표 의원은 평소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정치, 그 안에 내 꿈이 있다”는 말을 즐겨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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