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의 여인을 국가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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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의 여인을 국가가 버렸다
  • 김재한 대기자
  • 승인 2010.04.19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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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남편과 아내를 두고 이혼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문화와 동양적인 사고로써는 건강이 좋지 않은 배우자를 두고 이혼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식물인간 상태의 남편과 아내를 두고 이혼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설령 건강이 회복되고 재활해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최근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부인을 두고 법적으로 이혼할 수 있는 판결이 내려졌다.
 
부인은 2001년에 결혼해, 2002년 딸을 낳는 과정에서 자궁이 원만하게 수축되지 않아 출혈성 쇼크를 입고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왔다.

지난 4월 4일 서울가정법원(가사9단독 강규태 판사)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부인을 상대로 이혼을 청구하고 '자녀 양육권·친권자로 자신을 지정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부인이 7년 넘도록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혼인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데다, 친정 부모도 이혼에 동의한다"며 "아이의 원만한 성장과 복지를 위해서도 남편을 친권자·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재판 결과를 보면서, 식물인간 상태의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 추구권은 없는 가,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사람의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 추구권은 사법부가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는 가 하는 점이다.

헌법 제 10조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생명이라 함은 인간의 인격적 육체적 존재형태로서 죽음에 반대되는 생존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식물인간 상태라 할지라도 죽음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생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생명권에 있어서의 생명의 개념은 자연과학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사회적 법적 평가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거나 둘 이상의 생명이 양립할 수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사회적 법적 평가가 허용된다는 것이 통설과 판례이다.

헌법재판소(헌재결 1996.11.28 95헌바1)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으로, 생명에 대한 권리는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무엇보다 친정 부모가 결혼한 아내의 법정 대리인으로써 이혼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 그리고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배우자를 둔 부모는 자녀의 생각과 의지와 무관하게 법적으로 이혼을 할 수 있을 까 하는 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와의 이혼 사유로 혼인관계 유지가 어려워 이혼을 허가해주었다고 하지만, 혼인관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개념이다.

과연 법원이 이혼 판단의 근거로 제시한 이유가 타당한 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인이 7년 넘도록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혼인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우며, 친정 부모도 이혼에 동의했으며, 아이의 원만한 성장과 복지를 위해서 이혼을 승인해 주었다고 한다. 말은 그럴 듯하다.

재판부는 친정 부모도 이혼에 동의한다고 이혼 판결의 이유에서 밝히고 있다. 결혼한 성년의 이혼의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식물인간 상태라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라 해서 그 친정 부모의 의사가 이혼을 판결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법리의 확대해석이다.

혼인관계의 유지는 당사자의 문제이지, 친정 부모나, 시부모가 동의한다고 해서 그것을 이유로 이혼을 판결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시집간 딸의 법적 대리인으로 친정 아버지가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시집간 딸의 법정 대리인은 혼인관계에 있는 남편이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재판의 경우 법정이혼소송을 위해서 친정 아버지가 법정 대리인으로 인정되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8월 법원에 이혼조정을 신청했으나, '조정당사자가 법원에 출석할 수 없어 조정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다시 말하면 이혼 조정의 당사자가 법원에 출석할 수 없어 조정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사건이, 이혼의 당사자인 딸이 아닌 장인을 대리인으로 선정해 법정 이혼소송에 들어간 것이다.

이번 재판은 식물인간인 상태, 다시 말하면 정상적인 혼인관계가 어려운 상태에서는 혼인의 한 당사자에 의해서 식물인간인 사회적 약자의 삶을 팽개치고 이혼할 수 있는 비인격적이고 비정상적인 행위가 법에 의해 정당화되는 사례가 되었다.

법원은 아내가 식물인간 상태에 있어 혼인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하는 데, 혼인관계란 무엇을 말하는 가?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남녀의 신분에서 한 쪽에서 건강상태가 나빠서 정상적인 부부로서의 혼인생활이 어렵다면 혼인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원은 이혼을 받아주어야 한다. 궤변이다.

법원은 가정 해산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식물인간이라고 해서 건강한 자의 삶을 위해서 나약한 아내와의 이혼을 정당화해주는 법원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으로 재판권의 남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몸이 성치 않는 부부는 이제 법적으로 헤어질 수 있는 사례가 되었다.

남편의 삶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아내의 삶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각박해져 가는 사회, 더욱이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사회에서 무얼 그렇게 중요시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미국에서는 자동차의 수명과 같이 결혼생활도 7년이 주기(週期)라는 말이 있다. 결혼생활 7년이면 이혼한다. 그만큼 이혼이 빈번해졌다. 7년 후에 이혼하고, 10년 후에 이혼하고 그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설령 평균 결혼생활이 7년에 그치거나 10년에 그친다고 해도 그 통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할 통계와 숫자는 아니다.

언론보도에서 법원 관계자는 "소송을 치르는 원고·피고 모두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제대로 된 보호자 손길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며 "친정 부모는 '고생한 사위를 그만 놓아줄 때가 됐다'고 헤아렸던 것 같다"며 익명의 기사가 나왔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제대로 된 보호자의 손길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하고 있으며 식물인간인 어머니를 버려두고, 새로운 혼인관계 조성을 위해 이혼을 하는 것이 마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자의 손길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이야기 한다. 제대로 된 보호자의 손길은 몸과 건강상태의 유무와 무관하게 출생의 기회를 준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다.

부자(父子)관계는 법원이 인위적으로 판단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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