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의 農飛漁天歌>삼성 이건희 회장을 국회 증인으로 채택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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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표의 農飛漁天歌>삼성 이건희 회장을 국회 증인으로 채택한 사연
  • 글 홍문표 국회의원/정리 윤진석 기자
  • 승인 2014.08.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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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태안유류특별법-中>삼성중공업의 태안유류피해보상금 3600억 확정
국회특위사상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합의 중재 성공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통합의 모범적인 사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글 홍문표 국회의원/정리 윤진석 기자)

2013년 11월 28일은 헌정사상 초유의 뜻 깊은 날로 기억된다. 그날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정관에서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지역발전출연금 3600억 원 출연을 확정짓는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었다.

마침내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피해 보상 문제와 관련해 국회특위사상 처음으로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타협과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실로 대단한 성과였다. 당초 삼성중공업은 지역발전출연금으로 1000억 원만 낼 심사였다. 그런데 19대 국회 태안유류피해대책 특별위원회에서 2900억 원을 증액하는 데 성공했고, 드디어 3600억이라는 거금을 삼성중공업으로부터 받아낸 거였다.

▲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를 지나던 삼성중공업 바지선과 홍콩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하면서 걷잡을 수없이 대규모 기름이 쏟아졌다.ⓒ시사오늘(사진=홍문표 의원실)

국회 특위 위원장으로 1년 5개월간 특위를 이끈 나로서는 정말이지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피해 어민들의 성에 다 차지는 않을지언정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의 보상금을 마련하는 것이 태안 지역민의 앞날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는데 일조하는 길이요, 당신들의 부서지고 깨져버린 희망의 조각들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길이라 믿었기에 기쁨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알고 있다. 3600억이라는 지역발전출연금이 피해 어민들의 바람에 못 미친다는 것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아픔을 위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래서 여전히 태안유류피해 보상 문제는 지금까지도 미처 다 해결 못한 숙제로 남아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든 지난해 삼성중공업의 3600억 원 출연금 확정은 ‘설득과 대화의 정치’가 낳은 발전적 결과물이었다고 지금도 자부하며 보람찬 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도 든다. 이 같은 출연금이 확정되기까지는 마지막 수단인 비장의 카드를 꺼냈기에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국회특위 증인으로 채택했기에 삼성중공업과의 협상이 결정적으로 타결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최후의 수단이기도 한 히든카드 ‘이건희 국회 출석 채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사연, 그 과정을 설명하면 이렇다.

지난 17대 국회의원 시절 나는 태안유류특별법을 처음으로 만든 주인공이었다. 이때만 해도 피해어민들을 위한 기본적인 법만 준비해둔 상황에 불과했다. 때문에 나는 18대 국회에 재입성하는 대로 피해 보상 문제 해결에 나서자,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18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에 석패해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태안유류특별법은 있지만, 이 문제에 적극 관여한 당사자인 내가 없어서인지 누구도 진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시간만 대책 없이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 눈이오나 비가 오나 피해 어민들의 투쟁은 계속됐다. 정부는 왜 손을 놓고 있느냐는 항의가 빗발칠 때였고, 삼성본관 앞에서는 “삼성중공업은 책임지라”는 촉구가 절규처럼 터져 나왔다.

속절없이 4년이 흘렀고 19대 총선이 열렸다. 새누리당 후보자로 충남 홍성․예산에 재출마한 나는 이번에는 50%를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국회에 들어와 보니 태안유류피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묵직한 현안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특별법을 만든 당사자이니 당으로부터 곧장 상의가 들어왔고, 이후 만들어진 것이 여야 의원 9명씩 구성해 만든 국회 특위였다.

당시는 국제 재판에서 태안유류피해 보상금으로 1000억이 결정 난 후였다. 재판 결과가 이렇다보니 삼성중공업에서 그 이상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현지 조사를 나가면 태안 지역민이 원하는 보상금은 5000억 원인데, 삼성중공업이 끄떡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중에 특위를 가동해 하나하나 짚어보니까 여기에는 국제 재판 판결 1000억 원이라는 걸림돌 이외에도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다. 설령 삼성중공업이 보상금을 더 줄 마음이 있다 손 치더라도 외국에서 투자한 투자자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에 그들의 동의가 없는 이상 제아무리 삼성중공업이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줄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삼성중공업의 외국 투자자들 지분이 20여 프로가량 되던 터라 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가 나로서는 최대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삼성중공업을 설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전에 외국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들은 삼성중공업에서 보상금을 올리면 투자한 지분을 모두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때라 국회특위 위원장으로서 중재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은 외국 투자 대표를 만나 설득에 들어갔다. 국제사회라는 게 평화와 공존이 중요한 게 아닌가, 대한민국의 선의의 피해자들이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데 외국에서 투자한 분들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공존을 원한다면 좀 도와줘야 하지 않나 등등의 의견을 피력해나갔다. 다행히 이들로부터 상당히 긍정적인 협조를 받는 걸로 일단락됐다.

남은 문제는 보상금액을 실질적으로 올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은 여전히 잘 내놓으려하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지지부진한 협상만 되풀이될 수 있었다. 국회에서 피해 어민들을 달래주지 않으면 누가 달래주나 하는 생각에 삼성중공업을 꼼짝 못하게 할 결정적 한방을 준비했다. 국회법에 따라서 이건희 회장을 국회특위 증인으로 채택한 거였다.

순식간에 삼성 전역, 아니 국내외적으로 난리가 났다. 삼성 역사상 회장이 직접 국회 증인으로 나온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해외 인사들한테서까지 전화가 왔다. 베트남의 경우는 삼성이 현지에 와서 국가차원의 사업을 수주하고 있는데, 이건희 회장이 증인으로 불러들이면 국제적으로 차질이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삼성을 좀 안다싶은 분들로부터 전화가 와서는 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건희를 불렀느냐는 물음에 직면하기도 했다.

삼성에서도 서류를 갖고 찾아왔다. 관계자들이 삼성 산하의 20여개 되는 산하기관을 보여주며 전부 독립기관이라 그러니 이건희 회장이 뭘 해줄 수가 없는 위치라고 강변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법적으로만 보면 이건희 회장이 책임질 사안은 아니긴 했다. 

그렇지만 뚝심으로 밀고 나갔다. 삼성본사와의 협상테이블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방점을 찍었다. 당신들 사회적 기업 정신으로 일 년에 적십자 회비도 내고, 사회공헌활동도 많이 하지 않나, 해외에서 불행한 일이 있으면 삼성이 직접 가서 집도 고쳐주고 하지 않나, 그런데 당신들, 태안 앞바다 현장에 가봐라. 한때 할복까지 시도할 정도로 피해 어민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지 않나, 우리 국민 중 선의의 피해자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 삼성중공업에서 못하겠다고 하면 삼성 모체가 좀 신경써주고 도와줘야 되는 것 아닌가, 기업윤리 책무를 다해야 할 당신들이 삼성중공업으로 인해 벌어진 참담한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등의 논조로 삼성을 설득해나갔다.

결론은 이건희 회장은 증인으로 나서지 않은 조건으로 삼성과의 타협안에 들어갔고 3600억 원이라는 최종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결단코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내세울 수 없었던 삼성이 각 계열사로부터 협조를 구해 돈을 모금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특위사상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합의를 중재해 3600억 원이라는 거금을 받아낸 것은 이 사건밖에 없다. 이는 또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통합의 모범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사회가 반목과 대립, 투쟁과 갈등으로 치닫는 가운데 국회 특위를 통해 대화와 타협, 소통을 통해 사회적 기업 정신으로 합의를 이끈 최초의 특위를 이끌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회자할 일로 기록될 듯하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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