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의 農飛漁天歌>˝구조조정 하려거든 홍문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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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표의 農飛漁天歌>˝구조조정 하려거든 홍문표처럼˝
  • 글 홍문표 국회의원/정리 윤진석 기자
  • 승인 2014.08.19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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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농어촌공사 - 上> 경영선진화 도입…공사 출범 최초 3·4조 시대 열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글 홍문표 국회의원/정리 윤진석 기자 )

“공기업이든 민간 기업이든 구조조정을 하려거든 홍문표 농어촌공사 사장처럼 하면 됩니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2008년 12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이 ‘홍문표의 경영혁신을 벤치마킹하라’는 뜻에서 국무회의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다.

나도 모르게 가슴 밑바닥 언저리에서부터 묵직한 전율이 일어나면서 목구멍이 금세 뜨거워졌다. 안일한 관성, 보신주의와 맞서는 동안 개혁을 방해하는 온갖 음해들이 뒤엉켜 떠올랐다.

때로는 사방에서 겨누고 있는 활시위와도 같았다. 사지로 내 몰린 것 같은 암담한 상황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어둡고 긴 터널은 지났다. 공기업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내 이름이 호명된 순간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고, 고진감래가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MB정부 당시 경영 선진화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공기업의 구조조정은 국정운영의 필수과제 중 하나였다. 구조적으로 체질개선을 요구하는 공기업이 한두 군데가 아닐 만큼 경영실적 면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는 기관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1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한국농어촌공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8년 9월 농어촌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그동안의 경영 평가를 검토해보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 2008년 9월 홍문표 농어촌공사 사장 취임 당시.ⓒ시사오늘(사진=농어촌공사)

2005년 이후 4년간 정부예산 의존율 97%, 평균영업적자만 550억 원을 기록한 데다 2006년 정부투자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는 14개 공기업 중 13위를 차지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나는 곧장 고성장 고효율 조직 슬림화 자립형 공사라는 기조 아래 강도 높은 경영 혁신에 돌입했다. 임기를 맡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인 2008년 12월 공사법을 고쳐 어촌지역을 사업영역에 포함, 한국농촌공사에서 한국농어촌공사로의 개명을 단행했다.

노사 간 합의로 전체 인력의 15%가량을 감축할 때는 고통분담을 함께한다는 조직공동체 정신을 살렸다. 나부터 급여의 50% 자진 반납한 데 이어 남은 임원들도 급여 일부를 자진반납, 87억여 원의 돈을 모아 퇴직자분들에게 전달했다.

책상물림 간부들은 줄이고,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확대했다. 지역 편중 인사 정책을 전면 개편해 고른 지역 인사의 균등성을 높였다. 항아리형 방만한 인적구조가 피라미드형 구조로 변화되는 찰나였다.

공사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고자 대규모 프로젝트인 새만금개발사업 추진, 저수지 주변 개발사업, 농지연금제도 최초 도입, 공기업 중 최초로 농어촌지역 출신 자녀 50% 특별 채용, 유휴부동산 개발 등 사업의 내실화 및 외형을 넓혀나갔다.

과정은 고통스러웠으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8년 취임할 때만 해도 67억 원의 적자를 냈던 영업이익은 2010년 기준 857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예산 규모 또한 2004년 이후 2조 4000억 원으로 정체되어있던 수준에서 2009년에 공사 출범 최초로 ‘3조 원 시대’를 열었다. 또 2011년에는 4조 원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뤘다. 취임 후 2년 연속 정부경영평가 A등급을 받아낸 나는 임기를 다 마친 2011년 8월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임할 수 있었다.

이는 소신과 원칙, 뚝심을 지킨 자의 권리였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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