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미래①>새정치연합의 갈등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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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의 미래①>새정치연합의 갈등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4.08.22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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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진 아웃' 위기 새정치연합, "국민 마음 몰라도 너무 몰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이 '3아웃' 위기에 놓였다 ⓒ 시사오늘

야구로 치면 3진 아웃이다. 여당의 무덤이라던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은 승기를 잡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와 청와대의 인사 실패로 악재(惡材)가 겹친 새누리당을 상대로 ‘참패’했다. ‘안방’인 호남마저 내놨으니 말 다했다. ‘야당 심판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참패 후 새정치민주연합은 그야말로 풍비박산(風飛雹散)났다. 7·30 재보선 이후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는 사퇴했고 손학규 상임고문은 정계에서 은퇴했다. 선거 후유증은 차기 대권 구도까지 영향을 미쳤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패자의 변(辨)’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낮은 재보선 투표율은 사실상 야권이 불리하다는 의견이다. 게다가 ‘보수표’는 언제나 일정하게 나오기 때문에 야권으로선 새누리당에 비해 ‘특별히’ 잘하는 후보를 내세워야 겨우 이긴다는 것이다. 애초에 출발점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이번 재선거도 ‘이길 수 있는 선거’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7·30 재보선 패배를 두고 ‘변’은 통하지 않는다. 새정치연합의 근본적인 문제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분명 유리한 구도를 선점했지만 기회를 날려버렸다.

패배 후폭풍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이은 패배로 새정치연합은 당 존폐 기로에 놓였다. 진짜 ‘3진 아웃’당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정계 화두로 떠오른 ‘혁신’은 누구보다 새정치연합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새정치연합 ‘악재’의 시작

‘패배’의 시작은 2012년 총선이었다. 민주당으로선 ‘질 수 없는 선거’였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MB) 레임덕이 정점을 찍었다. MB 정부의 FTA 협상, 4대강 등 MB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심했다.

총선을 앞둔 2011년 12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앞섰다. 당시 민주당은 34.1%를, 한나라당은 32.2%를 기록하며 민주당이 우위를 선점했다. 이후로도 줄곧 정당지지율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유리한 구도를 선점했다.

MB에 대한 반감이 높았다. <리서치뷰>가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2012년 신년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긍정 평가는 31.5%였다. 반면 부정평가는 64.8%나 집계돼 MB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반감은 한나라당으로 번졌다. 당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30.4%가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재집권 해야 한다’고 답했고, 49.2%는 ‘야당으로 정권교체 해야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위기감을 느끼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MB와 선을 긋기 위해서다. 새누리당은 2012년 3월 20일, 선거를 22일 앞두고 박근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박 위원장은 19대 총선을 이끌었다. ‘완패’를 점쳤지만 투표함을 열어보니 새누리당은 ‘완승’을 거뒀다. 박 위원장에게 ‘선거의 여왕’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두 번째 패배는 2012년 대선이다. 문재인 후보를 앞세운 민주당은 고배를 마셨다. 당시 문 후보는 안철수 전 대표와 단일화를 이뤘음에도 패배를 피할 수 없었다. 민주당은 대선 후 변화를 이끌기 위해 김한길 비대위원장을 선출했다.

10%대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했던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합당을 추진했다. 2014년 3월, 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명을 바꾼 후 안 의원이 김 대표와 공동대표를 맡았다. 김·안 공동대표는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이끌었다.

6·4지방선거에서 여야는 8 대 9 스코어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1998년 지방선거를 제외한 역대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완승’을 거뒀다.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었다. 야당으로선 썩 좋은 성적이 아닌 것. 게다가 세월호 참사에서 무능한 검·경의 모습이 여과 없이 보였다. 여당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선방했다.

대승을 거두지 못한 야당은 실망의 눈초리로 따가웠을 것이다. 승부는 7·30으로 넘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이은 인사 참사로 집권 이후 처음으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섰다.

새정치연합으로선 ‘호재’로 작용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6월 18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율이 36.9%를, 새정치연합 지지율이 36.7%를 기록하면서 단 0.2%의 격차만 보였다.

오르막도 잠시였다. 새정치연합은 재보선 지역인 광주 광산을 권은희 후보와 서울 동작을 기동민 후보의 전략공천으로 논란을 자아냈다. 이들의 논란이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커지면서 수도권 지역의 대권 후보들마저 새누리당에 비해 열세로 나왔다.

전략공천 논란으로 흔들린 새정치연합은 결국 7·30 재보선에서 총 15석 중 4석만 얻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심지어 새정치연합의 안방 전남 순천도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패배 후 김-안 공동대표는 사퇴했다. 새정치연합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박영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당 내부에선 패배 원인으로 △전략공천의 폐해 △당대표의 리더십 부재 △계파갈등 △지나친 우클릭 등이 거론됐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패배 원인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2014년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도 패배했을 때마다 나왔던 원인이 되풀이 되고 있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같은’패배 원인을 지목하며 ‘같은’실수를 반복한다. 민주당은 2012년 이후 2년이 지났지만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당대표로 추대되는 사람만 바뀌었다. 되풀이되는 ‘참패’는 사람이 바뀐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새정치연합 정은혜 전 부대변인은 이런 모습에 “도돌이표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익숙한 모습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이 간다”고 말했다.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내 편 같은 너”

새정치연합 내 일명 486 세대 의원들은 이번 7·30 패배 원인으로 김 안 공동대표를 지목했다. 김 안 공동대표가 없어진다면 새정치연합은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현재 새정치연합은 친노계와 비노계, 중도계와 진보계 그리고 정세균계, 손학규계 등으로 복잡한 계파를 형성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집권한 계파에 대한 쓴소리를 다른 계파 의원들이 쏟아낸다. 서로에게 삿대질한다. 이들의 반대편에 있는 계파가 없어진다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결국 이들이 모두 한 번씩 당권을 잡았지만 새정치연합은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결국 서로를 삿대질하는 손가락은 본인을 향했다. ‘제 살 뜯어먹기 식 싸움’으로 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새누리당은 평소에 싸우는데 선거 땐 지들끼리 똘똘 잘 뭉쳐.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평소엔 안 싸우다가 선거 때만 되면 꼭 싸우더라고.”

담당업무 : 국회 및 새누리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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