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Review 지방선거(95년)
①부활하는 지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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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Review 지방선거(95년)
①부활하는 지역주의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0.05.20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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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지역주의 패자는 김영삼정권”
JP 핫바지론, DJ 지역등권론으로 무장
YS, 이춘구 김덕룡으로 방패막이
열세 몰리자 ‘세대교체론’ 목청
시사오늘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34년만에 부활됐던 첫 지방선거를 되돌아보기로 했다.
우리에게 1995년은 역사적인 해였다. 34년만에 부활된 지방선거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최초의 지방선거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 최초의 지방선거전은 무엇이 가장 큰 '핫이슈'였을까? 1995년으로 들어가 보자.
 
①부활하는 지역주의

95년 6월 13일 지역의 대표를 뽑는 충남 아산의 한 유세장.

김종필(JP) 자민련 총재는 ‘핫바지론’을 들고 나왔다.

“경상도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들을 핫바지라고 한다. 아무렇게나 대접해도 소견도 없고, 오기도 없어 그런 거다. 2년 반 동안 우리를 괴롭힌 김영삼(YS) 정권을 혼내주는 게 우리의 선택이다.”

지방선거를 10여일 앞두고 시작된 JP의 핫바지론은 충청권을 그야말로 시퍼렇게 물들이며 지역감정의 끝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92년 대선에서 YS에게 패해 이미 정권은퇴를 선언한 대권 3수생이었던 김대중(DJ) 아태재단 이사장도 ‘지역등권론’으로 무장한 채 당당히 유세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지역등권론은 모든 지역이 잘 살자는 뜻이다. 한 줌도 안 되는 특권층이 모든 권세를 독점하는 지역패권주의 구도를 깨야 한다.”

민주당은 지역등권론을 앞세워 DJ 정계은퇴 이후 갈 곳을 정하지 못하던 호남표를 훑어 나가기 시작했다.

집권당인 민자당도 이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충청은 이춘구 대표를 내세워, 호남은 김덕룡(DR) 사무총장을 앞세워 배수의 진을 쳤다.
이 대표는 충남 당진과 공주에서 가진 민자당 후보 지원유세에서 핫바지론을 정면에서 반박했다.

“나는 충청도 사람으로 그것도 아주 순수한 혈통이다. 할아버지, 할버니, 어머니도 모두 충청도 사람이고 집사람도 서산 사람이다. 애국 충절의 충청인들이 자기들의 노욕을 채우기 위해 이 나라 분열을 획책하는 사람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호남 출신인 DR도 “지역등권론은 야당 내부에서조차 분열주의라고 비판받고 있다. 영남을 분열시키고 충청도를 떼어 낸 뒤 호남이 단결하면 집권할 수 있다는 선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이 DJ나 JP의 행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양 김씨를 막기 위해 YS가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다.

▲ 34년만에 부활된 95년 지방선거는 DJ와 JP의 한풀이 장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 시사오늘
YS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세대교체된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YS의 ‘세대교체론’은 DJ와 JP를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YS가 이인제 경기도지사를 점찍었다’고 대서특필했고, 여론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솔직히 핫바지론과 지역등권론은 지역감정을 등에 업고 자신의 세력을 확보하겠다는 양 김씨의 의도를 담고 있었다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참신한 일꾼을 뽑고자 34년 만에 부활 된 지방선거는 양김(DJ, JP) 대 YS의 대결로 변질돼 갔다. 그리고 이것은 치유될 것 같았던 지역분할구도를 다시 되살려놓는 꼴이 됐다.

선거결과를 보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철저히 지역주의가 작용한 선거였다.

민자당은 부산경남, 민주당은 호남, 자민련은 충청, 무소속은 대구경북에서 광역단체뿐 아니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까지 거의 석권했다.

아무튼 95년 실시된 ‘6.27 지방선거’는 기존의 영호남 분할구도에다 충청권과 대구경북 정서까지 일정한 세력으로 등장시키게 된다.

여기에 지역분할구도는 세포분열을 해 ‘남북 경기론’, ‘강원도의 영서 영동 대결’, ‘전남의 동서부 갈등’까지 나타나기에 이른다.

당시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얼마나 기승을 부렸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바로 AP통신이다.

AP통신은 당시 선거를 이렇게 분석했다.

“이번 선거의 승자는 지역주의고 패자는 김영삼 정권이다.” <계속>
 
[당시의 정치상황]

박찬종 노무현 강현욱 철옹성 지역주의에 ‘무릎’

민자, 민주 양당체제에 자민련 가세
결국 선거전은 ‘지역주의’ 부활로

95년은 YS가 집권한 지 3년째를 맞는 해였다. 92년 대선에서 패한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한 후 영국으로 외유를 떠났다.

정국구도는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라는 거대여당과 이기택이 이끄는 통합야당인 민주당 양당 체제였다.

그러나 거대여당에 분열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민주계는 ‘부패세력 척결’이란 명목아래 김종필(JP) 대표최고위원, 김재순 박준규 의원 등을 내몰았다. 

이에 JP가 강력 반발하며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만들어 95년 지방선거에 뛰어들었다.
외국에서 돌아온 DJ도 민주당 후보 지원연설을 하기 시작했고 대통령인 YS도 직접 선거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선거는 지역주의로 흐르기 시작했다.

물론 지역주의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도 있었다. 서울에서 박찬종, 부산에서 노무현, 전북에선 강현욱 후보가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철옹성 같은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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