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기술개발 가로막는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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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기술개발 가로막는 대기업
  • 윤동관 기자
  • 승인 2010.05.31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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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2% 기술자료 뺏긴 경험...특허 공유 요구에도 속수무책
 
中企 14.7% “산업기밀 유출 피해본 적 있다”
지난 3년간 中企 기밀 유출 피해액 4조 2천억

 
대기업이 납품 계약이나 거래 유지를 무기로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가로채는 파렴치한 행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은 중소부품 업체에 설계 도면과 기술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노골적으로 특허 공유를 요구하고, 이를 납품 단가와 연결시켜 후려치기도 한다.
 
더구나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는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경쟁업체에 기술을 넘겨 더 싼값에 납품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실제 공정위 조사에서 중소기업 중 22%가 이런 식으로 기술 자료를 탈취 또는 유용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를 위해 최근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개발한 핵심 기술을 빼앗는 행위를 막기 위해 하도급법에 ‘기술자료 제공강요 금지’ 규정을 신설하고, 직권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위법 행위가 적발되면 시정명령·과징금·검찰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하고, 상습적으로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한 대기업에는 공공입찰 참가 제한 및 명단 공개 같은 제재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술보호 위한 기술임치(任置)제도 유명무실


정부도 2008년 8월부터 중소기업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임치(任置)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 자료를 중소기업청 산하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맡겨 놓고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기업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에 놓인 중소기업들의 이용 건수는 지금까지 250여건으로 유명무실하다. 

A중소기업의 대표는 “중소기업들이 겪는 더 큰 좌절감은 기술을 훔쳐간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하다”며 “어느 휴대전화 부품업체는 대기업과 4년여에 걸친 특허 소송을 벌여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소송비용을 대느라 회사가 부도위기에 직면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도금업을 운영하고 있는 B대표는 “대기업들은 말로는 중소기업과의 상생경영을 약속하지만, 중소기업들 쪽에서 느끼는 변화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재벌그룹이 중소 납품업체의 기술을 훔치거나 중소기업들의 약점을 매개로 가격을 후려쳐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 중견기업 D대표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방안과 관련 우리나라도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 같은 성공사례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기술개발에 잠재력을 갖고 있는 많은 중소벤처기업들이 대기업들의 횡포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비난했다.

중소기업연구원 백필규 실장은 “대기업들의 인식변화가 없는 한 이와 같은 뿌리 깊은 문제해결은 요원하다”며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의지 없이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절실


최근 애플사의 아이패드 기술만 보더라도 원천기술은 국내 한 벤처기업에서 2001년도 개발하였지만, 국내 대기업들이 통신료 감소를 들어 외면하는 바람에 헐값에 미국과 중국으로 넘어간 경우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 원자재 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제 원자재 가격 연동제를 도입해 원자재 상승분에 대해서 납품단가에 반영해야 하고, 수익분배구조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특허분쟁 시 의도적으로 중소기업을 죽이기 위한 행위를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산업현장 곳곳에서는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중소기업 7곳 중 1곳은 산업기밀 유출로 피해를 본 적이 있고 건당 피해액은 1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중소기업청이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공동으로 연구소를 보유한 중소기업 1천500개사를 대상으로 산업기밀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14.7%가 산업기밀 유출 피해를 입었고, 1건당 평균 피해금액이 10.2억 원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유출피해 기업 비율이 15.3%였고 유출 피해금액이 건당 9억1천만 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피해 기업 비율은 다소 줄었지만 규모는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이를 바탕으로 추산한 지난 3년간 산업기밀 유출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규모는 총 4조2천156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사대상 기업 중 2008년에 산업기밀 보호를 위해 일정금액의 보안비용을 지출한 기업은 전체의 59.4%로 전년대비 4.2%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안에 투자한 기업 1곳당 평균 투자금액은 1천951만원으로 전년도의 2천79만원에 비해 6.2%(128만원) 줄었으며 매출액 대비 보안비용 비율도 0.12%로 전년대비 0.03%포인트 감소했다.

산업기밀 유출로 인한 피해규모도 4조원

중기청은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 대상 산업보안교육과 중소기업 기술보호상담센터 운영 활성화를 통해 기술유출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산업보안의 중요성과 유출 사고의 사전. 사후 대응방안 등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의 산업기밀에 따른 피해액이 늘어난 데는 지난해 국제 경제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로 보안에 대한 투자가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된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기술 유출 문제가 검찰 수사로 불거지면서 ‘기술보안’의 중요성에 새삼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기업들의 기술유출 사건은 해마다 늘어 지난해 적발된 건수만 42건에 달하고, 대기업은 물론, 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까지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이중 정보기술(IT) 부문에선 반도체나 액정표시장치(LCD) 같은 핵심 부품과 관련된 기술이 국내외 경쟁업체들이 노리는 표적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업계에서 선두 자리를 차지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체들은 어렵게 확보한 기술을 지키는 일에 총력을 쏟고 있다. 반도체, LCD 분야의 대기업들은 기술보안을 이유로 협력업체들을 아예 수직계열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직원들의 보안강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협력업체를 통한 기술유출 가능성이 상존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보안’에 대한 중요성 날로 부각

이밖에 IT산업과 함께 기술유출 우려가 큰 분야는 자동차 산업이다. 자동차업계는 이미 지난해 쌍용자동차와 GM대우의 기술 유출사건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루기도 했다. 현대· 기아차는 연구소 내 도면과 기술자료 등을 모두 암호화하고, 연구소 내에서만 쓸 수 있는 USB를 활용토록 해 기술 유출을 막고 있다.
 
또 협력사나 기술용역업체를 통한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해당 업체에 대한 분기별 보안교육을 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도 기술보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STX조선은 보안평가제를 도입해 매달 불시에 사내 보안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특히 중요 기술 자료는 모두 암호화하고 있으며, 자료를 출력할 때 시스템 체계화로 혹시나 발생할 기술 유출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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