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지지율①>박근혜 ´대통령의 시간´ 2년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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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지지율①>박근혜 ´대통령의 시간´ 2년은 어땠을까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5.02.27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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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차 지지율 고공행진…금 가는 2년차
집권 3년차의 고비, 역대 대통령들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시사오늘>은 지난 25일 취임 2주년을 조용히 지나보내고 이제 3년차를 맞는 박근혜 정부의 지난 두 해를 지지율과 주요 사건으로 돌아보고, 역대 정부들의 3년차 모습을  살펴봤다.(편집자 주)

▲ (왼쪽부터)취임식 당시의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 대국민 담화를 하는 박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은 박 대통령 ⓒ뉴시스

취임 1년차, 풍랑에 아랑곳 않는 고공행진

박근혜 정부는 약간씩의 편차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50% 후반대의 높은 지지율과 함께 출범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보다는 취임 초기의 기대감 등이 작용하며 득표율보다도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는 강경수를 뒀지만 오히려 ‘구태정치’라는 역풍을 맞았다.

2013년 전체적으로 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한국갤럽 기준)은 윤창중 사태, 기초연금 공약 후퇴와 국민연금 연계 논란 등을 거치며 9월경엔 63%까지 올랐다가 다시 10월엔 전월대비 8%가 하락해 55%가 되는 등 등락을 거듭했다.

하락세를 그리며 50%대 초반까지 내려갔던 지지율은 이듬해 2월 반등했다. 박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 등을 내놓자 지지율은 다시 56% 로 끌어올려지며 그간의 크고 작은 실책들을 만회하는가 싶었다. 40%의 절대 깨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율’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취임 2년차, 실책과 악재에 ‘콘크리트 지지율’ 균열

4월 16일 최악의 참사인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다. 세월호 참사는 200여명 이상이 희생된 대형사고이자, 희생자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범국민적 안타까움을 샀다. 우울한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감돌았고, 화살은 정부로 돌아갔다. 초기 ‘전원구조’ 오보와 함께 정부의 대응이 신속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지적됐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결국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월 초 40%대를 기록하며,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박 대통령은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눈물을 보였다. 시간이 지나며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일정부분 회복됐지만 참사 전의 고공행진을 재현할 수는 없었다. 다만 새누리당이 세월호 참사의 여파 속에서도 6·4지방선거서 무승부를 이끌어냈으며, 이어 치러진 7·30 재보선서 압승하며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정홍원 총리의 후임으로 지명된 문창극 후보자의 과거 언행이 구설에 오르며 박 대통령은 또 다시 인사 논란에 휘말렸다. 문 후보자는 결국 낙마했고 다시 한 번 박근혜 정부는 상처를 입었다. 지지율도 떨어졌다.

11월 28일, 청와대 국정농단 의혹·문건 유츨 논란이 터졌다. <세계일보>는 이날 단독 보도를 통해 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설을 제기하고 관련 문건을 폭로한다. 파장은 점점 커졌고 ‘정윤회 게이트’라는 별칭으로 연말 정가를 강타했다. 이 사건은 청와대 내 파벌싸움과 기강 문제 등 전방위로 옮겨 붙었으며,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곤혹스러운 지경에 빠뜨렸다. 야당은 공세로 전환했으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한 번 흔들렸다. JTBC와 <리얼미터>의 12월 초 여론조사 결과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39.7%를 기록, 취임 후 처음으로 전국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이때를 기점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향 곡선을 그렸다. 최근엔 이완구 국무총리 임명 과정에서 각종 부적격 사유가 드러나며 박 대통령 인사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지난달 1월 말 지지율이 29.7%(리얼미터), 급기야 20%대까지 하락한 데 이어 2월 내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역대 정부의 2년은?…3년차가 ‘고비’

사실상 첫 민주화 정부라고 할 수 있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나회를 청산하며 군부를 완벽히 종식시켰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조선총독부 철거 등을 추진, 한 때 90% 이상의 지지율을 받았다. 그러나 지지율의 등락폭이 심한 편이었고, 3년차엔 여러 사고가 일어났다. 2년차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에 이어 4월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로 101명이 사망했고, 6월엔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숨졌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역시 외환위기 극복,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 정상회담 성사 등으로 2년차까지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1년차에 ‘옷 로비 사건’으로 잠깐 휘청하지만, 3년차 1분기 평균 지지도(경향신문 집계)는 49%에 이르렀다. YS처럼 극단적으로 높았던 적도 없었지만 심하게 낮아지는 일 없이 상대적으로 꾸준한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3년차에는 햇볕정책 과정에서의 잡음과 불법 도청 파문, ‘최규선 게이트’ 등 측근비리 등으로 위기를 맞았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내고, 연말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으로 버텨내긴 했으나 이후 지지율 하락세를 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같은 시기 지지율은 평균 33% 정도였다. 탄핵소추 파동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2년차를 보냈지만 탄핵 역풍을 타고 2004년 총선서 대승, 한숨 돌리며 3년차를 시작했다. 그러나 3년차인 2005년에 러시아 유전 개발을 둘러싼 일명 '오일 게이트'와 금융브로커의 로비 문제 ‘김재록 게이트’, 행담도 개발비리 사건에 연루된 '행담도 게이트' 등으로 급격한 레임덕을 맞았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광우병 쇠고기 파동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용산 참사 등으로 복잡한 2년을 보냈다. 역대 가장 빠른 레임덕이 온 것 아니냐는 비아냥에도 불구 3년차 1분기 지지율은 44%를 기록하며,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선전하는 듯 했으나,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이 터지며 형 이상득 의원 등 측근들의 비리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충돌하며 3년차에 힘이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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