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걸려오는 김 부장 전화, 성희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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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걸려오는 김 부장 전화, 성희롱일까?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5.04.18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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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필담>직장 내 성희롱 실태 심각…대책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A회사에서 근무하는 김 부장(50세, 남)은 여자 직원들이 기피하는 직원 1호다. 여자 직원들에게만 저녁 겸 술 먹자는 제안을 곧 잘하기 때문. 술자리에선 “부장 말고 오빠라고 불러라”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가관인 것은 밤마다 여자 직원들에게만 전화와 문자를 일삼는 것이다.

“00씨,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외근 끝나고 나 보고 갔으면 좋겠다”, “나랑 술 한 잔 하자”, “내가 00씨를 너무 좋아해서 그래. 오해는 하지마.”

김 부장의 전화는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다.

신입사원으로 들어 온 이 모 씨(27세, 여)는 김 부장의 희생양이다. 김 부장은 술만 먹으면 이 씨에게 전화를 했다. 이 씨는 초기에 업무 관련 통화라고 생각해 긴장하며 전화 받았다. 하지만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전화였다. 신입사원이기에 상사에게 최대한 친절하려 했던 게 실수였다.

김 부장의 연락을 받아줄수록 전화하는 횟수는 늘어났다. 이 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김 부장은 문자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 씨 좋아해서 그런다’와 같은 변명 문자를 남기며 연락을 지속했다. 전화를 받지 않은 다음날엔 “어제 전화를 왜 받지 않았느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이 씨는 진동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씨는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간부에게 김 부장의 전화와 문자를 폭로했다. 간부는 김 부장을 방으로 불러 “그러지 말라”고 말로만 다독였다. 김 부장에 대한 별다른 처벌이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인 A회사에선 이런 사건에 대한 사례나 처벌 규정이 없었다.

억한 심정을 품은 김 부장은 다른 회사 직원들을 하나 씩 불러 자신의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내가 다른 여자 직원들에게도 술 먹고 전화하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안 되는데 왜 이 씨만 저러는 것이냐. 이 씨가 이상한 사람이니까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오버하는 것이다. 어디 만진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며 피해자인 이 씨를 궁지로 몰았다.

견디지 못한 이 씨는 결국 2개월 만에 회사를 나갔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었던 이 씨는 다시 취업 준비생 시절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 길을 택했다. 피해자가 결국 회사를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김 부장은 여전히 A기업에 들어온 신입 여자 직원들에게 전화와 문자를 일삼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간부도 이 사실을 알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세계여성의 날 홍보 캠페인' 에서 시민들이 직장내 여성 성희롱 및 부당 대우 사례에 대한 홍보 선전판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뉴시스

“성희롱 자체교육 합니다”…가해자가 교육을?

법원은 지난 2013년 동료 여직원에게 쓸데없이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을 보낸 사례에 대해 ‘성희롱’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근무시간이 아닌 야간이나 주말에 여직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등을 보낸 것은 성적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판단,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경우, 직장 내 성희롱 징계 규정이나 제재 사항이 없어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가해자는 어느 정도가 성희롱인지, 피해자는 어떤 방법으로 신고를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성희롱 예방교육은 '자체 교육'을 해도 무방하다.

고용평등법 제13조 '직장내 성희롱의 예방교육'에 의하면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고 근로자가 안전한 근로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교육해야 한다.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노동부장관이 지정하는 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 사업주가 ‘자체 교육’을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희롱 예방 교육을 자체 교육으로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인원이 적은 중소기업은 예방 교육을 하지 않거나, 가해자가 교육을 진행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만약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이 확인됐지만, 행위자에 대한 징계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의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30조 1항'에 의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회사 평판이나 승진 등에서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길까 현실적으로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용히 자신이 회사를 떠나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유승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성북갑)은 이런 불이익을 없애기 위해 '성차별·성희롱 금지법'을 지난 13일 대표발의했다.

'성차별·성희롱 금지법'은 △성별, 혼인여부 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대우 금지 △성희롱 불응을 이유로 불이익 등의 행위 금지 △사용자는 성별을 이유로 차별 금지 △성희롱 피해 신고로 해고 등 불이익 금지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유 위원장은 17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2005년 <남녀차별금지법>이 폐지된 후, 성차별과 성희롱 금지 규정이 ‘차별’을 전체적으로 다루기 위해 여러 법으로 흩어졌다”라며 “성희롱 발생 후 조사과정에서 조치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성차별·성희롱 금지법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유 위원장은 “성차별·성희롱 금지법으로 성희롱 방지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피해자 지원에 대한 내용을 정하기 위해 제정법으로 발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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