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공화국①> ˝모험 없이 미래 없다˝…예상마(馬)를 적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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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공화국①> ˝모험 없이 미래 없다˝…예상마(馬)를 적중하라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5.05.30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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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고액 잃었다가 땄다가 희비 속 '희로애락' 경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세운 기자)

주5일제로 각종 레저문화 산업이 꽃을 피우고 있다. 젊은 남녀에서부터 나이 든 중년까지 주말이면 취미를 찾아 여가를 즐긴다. 레저와 도박의 경계 사이에 묘한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게 경마다.

경마는 국가가 공인해주는 ‘도박’아닌 도박이다. 무리한 베팅만 아니면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곳이 경마장이란 게 공통된 의견이다. 주말이면 수많은 인파들이 고배당의 꿈을 가지고 과천 경마공원이나 지점으로 몰려든다.

경마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이를 즐기는 마니아층은 한 번 베팅으로 고액을 벌 수 있는 데다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를 보며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어 다른 레포츠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복합 레포츠라고 극찬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경마도 카지노처럼 공인된 도박으로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으며 국가가 나서서 이런 환경을 만든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기자는 속칭 경마에 빠져 ‘경마꾼’이란 애칭을 얻고 있는 사람과 지난 23일 토요일 도봉구 창동에 위치한 도봉지사를 찾았다. 동행해 하루 간의 ‘희로애락’을 취재했다.
경마꾼은 쉰을 바라보는 중년 남성이다. 대기업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모(48·남) 씨는 전날 예매한 좌석권을 가지고 기자와 오전 10시, 도봉지점 10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도봉지점 10층은 VIP석이라 입장료가 1만1000원으로 좀 비싸다며 자신이 경마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김 씨는 “경마에 빠지게 된 건 5년 정도 됐다. 캐나다에서 사업을 하다 들어온 선배의 권유로 시작해 매주 경마를 하게 됐다”며 “한 번 갈 때마다 100만 원은 기본으로 가져가니 한 달에 800만 원 이상의 자본금은 있어야 한다.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 4000만 원짜리를 만들어놨다”고 고백했다.

그는 “요즘은 금요일부터 다음 날 경주 공부를 한다. 하다 보면 꿈에 어떤 말이 들어오는지 보일 정도로 도가 통한 상태”라고 말했다.

▲ 경마꾼 김 씨는 경마장 출입을 위해 4천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놨다. ⓒ시사오늘

주식으로 5억 손해 보고 경마에 빠져…현재는 예상평 전문가 수준

김 씨는 두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다. 회사에서는 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 직장에 대한 나름 프라이드도 있다.

하지만 김 씨가 중독에 가깝게 경마에 집착하게 된 건 나름 이유가 있다. 김 씨는 원래 타고난 도박적 기질이 강하다. 상갓집에 가면 꼭 포커나 고스톱을 친다. 웬만하면 잃는 법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가 3년 전 주식을 알게 됐다. 주식을 투자로 하지 않고, 이리저리 정보를 취합해 하기 시작했다. 불과 2년 만에 5억 이상을 날렸다. 허탈감과 상실감이 밀려오면서 뭐라도 해야 했다.

김 씨는 이런 공허함을 주체할 수 없어 울적한 기분을 달래면서 순간적이지만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경마에 빠졌다고 한다. 한때 경마 예상 사이트를 운영할 생각까지 했다는 그는 이미 경마 전문가였다.
10층에 도착하니 김 씨를 찾는 사람이 여러 명 있다. 함께 어울리는 이들은 김 씨의 예상 평에 반했다고 한다.

김 씨의 예상 평에 쏙 빠졌다는 이모(53·남) 씨와 정모(50·남) 씨를 만났다. 같은 직장군(君)에 근무하다 보니 김 씨와 함께 경마에 빠졌다고 했다.

김 씨는 1경주 예상 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김 씨는 “대부분의 예상지들은 3번마 나봄과 7번마 금아둘리를 우승마로 생각하고 있다. 이번 경주는 예측대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 씨도 그 말에 동조했다.

우승 예상마에 올라탄 기수들이 리딩조키라며 예측이 빗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마에 입문한 지 1년 정도 됐다는 정 씨는 아직 감이 오지 않는 눈치였다. 다만 배당이 너무 적다며 6번마를 눈여겨봤다.

김 씨는 2번마 나봄과 7번마 금아둘리를 놓고 무려 20만 원의 복승식 마권을 샀다. 복승식은 1~2등 상관없이 두 말이 결승점에 들어오면 된다. 이 씨도 다른 말이 없다며 20만 원을 걸었다.

정 씨는 7번마 금아둘리를 놓고 6번마 골드챔프와 12번 질풍당당을 걸었다. 정 씨의 생각은 두 사람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특히 12번마에 애착이 남달랐다. 정 씨는 “12번마 질풍당당의 자키가 박태종이다. 그는 경마장의 전설로 통한다. 요즘 나이 때문에 주춤하고 있지만 한방이 있는 기수다. 내 말이 맞는지는 5분 후에 알 것”이라고 장담했다.

김 씨와 이 씨가 베팅을 한 3-7번마의 배당률은 1.5배였다. 20만 원을 베팅해 맞춰도 30만 원이다. 반면 정 씨가 배팅한 7-6번마의 배당률은 10배였다. 7-12번은 20배를 웃돌았다. 정 씨가 각각 5만 원씩 베팅했으니 들어오면 최소 50만 원에서 100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출발의 경적음이 울리자 2번마 나봄이 1등으로 치고 나왔다. 그 뒤를 7번 금아둘리가 따랐다. 김 씨와 이 씨는 “내일까지 뛰어도 3번과 7번”이라며 환호를 질렀다. 정 씨는 아무 말이 없었다. 결과는 3-7. 김 씨와 이 씨는 30만 원씩 손에 쥐었다.

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점심도 거른 채 베팅에 열중했다. 11경주와 12경주 두 경주를 남겨 놓고 김 씨는 50만 원, 이 씨는 100만 원을 잃었다. 반면 정 씨는 50만 원을 따고 있었다.
김 씨는 11경주와 12경주는 승부경주라고 했다. 자신이 금요일부터 공부를 해와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씨는 11경주 1번마 롱스피드는 예상지들의 예측과는 달리 분명히 순위 안에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롱스피드가 3주 전부터 고난도의 훈련을 해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했다. 이번에는 삼복승식까지 걸어도 된다고 했다. 삼복승식은 도착 순위에 상관없이 1~3등까지의 마필을 맞히면 된다.

김 씨는 5번마 와츠빌리지와 7번마 최강실러만 보면 된다며 1번마를 놓고 1-5번에 10만 원, 1-7번에 10만 원, 1-5-7번에 10만 원, 도합 30만 원을 걸었다. 김 씨의 말에 이 씨와 정 씨도 똑같이 30만 원을 베팅했다. 기자도 따라서 9천 원을 베팅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장내에서는 “5번마 와츠빌리지 선두로 치고 나갑니다”라는 아나운서의 쉼 없는 빠른 설명이 흘러나왔다.

결승지점이 가까울수록 김 씨와 이 씨, 그리고 정 씨는“롱스피드, 뛰어라 뛰어”라는 고함을 질렀다.
말들이 결승점에 도착하자 이들에게서 “우~우”하고 탄식이 흘러 나왔다. 들어온 순위는 7번 1등, 5번 2등, 1번 3등이었다. 김 씨의 예측이 50%만 맞았다. 복승식에 베팅한 20만 원은 휴지가 됐다. 다만 삼복승식을 맞혔다. 5.7배였다. 30만 원을 베팅해 57만 원을 얻었다. 손해 본 장사가 아니었다. 

합법도박 시장을 도박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스포츠로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 뉴시스

대박 노리는 회심의 베팅 준비

김 씨는 나름 아깝다며 흥분한 상태에서 마지막 12경주를 준비했다. 우승예상마는 2번 실버울프와 8번 장산대로다. 김 씨는 8번 장산대로가 훈련이 별로 좋지 않다며 8번 대신 9번 이스트퀸을 추천했다.

정 씨는 오늘 70만 원을 넘게 땄다며 50만 원을 7-9번에 베팅하겠다고 했다. 김 씨는 비록 오늘 20여 만 원을 잃었지만 한방이라며 7-9번에 30만 원을 베팅했다. 배당률은 9배였다. 들어오면 정 씨는 450만 원, 김 씨는 270만 원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씨의 생각은 달랐다. 8번 장산대로에 올라탄 자키가 문세영이라며 그가 반드시 2착 안에는 들어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세영은 과천경마장에서 1등 기수로 통한다.

이 씨는 어차피 오늘 70만 원을 잃었다며 마지막 돈까지 탈탈 털어 2번과 8번에 80만 원을 베팅했다. 배당은 2.7배다. 들어오면 200만 원을 넘게 챙길 수 있다.

기자가 이 씨에게 오늘 너무 많이 잃은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돈을 날리면 속상하지 않나 묻자 이 씨는 “어차피 한방이다. 모험 없이 미래 없다”며 냉정한 말투로 간단히 답했다.

마지막 12경주가 시작됐다. 말들이 뛰고 선두에 선 2번 실버울프와 9번 이스트퀸이 치고 나왔다. 김 씨와 정 씨가 흥분한 채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들은 경마화면에 시선을 집중하고 고함을 쳤다. “야 더 빨리 더, 그렇지”라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 경주에 푹 빠졌다. 마권을 한 손에 쥐고 연신 연호했다.

하지만 곧 8번마 장산대로가 치고 나왔다. 이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경주에 집중했다.
결승선은 2번과 8번이 들어왔다. 이 씨의 예상이 적중한 순간이었다. 이 씨는 환호성을 지르며 자신의 분석이 정확했음을 자랑했다. 하지만 김 씨와 정 씨는 고개를 숙였다.

패인 분석…잃은 돈 만회 위해 내일 또 베팅 

김 씨는 오늘 패인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11경주에서 삼복승으로 승부를 내야 했는데 복승을 간 게 패인”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70만 원을 잃다가 12경주에 맞혀서 50만 원을 딴 이 씨는 “어차피 1~2경주 승부를 놓고 고액 베팅을 해야 맞힐 수 있다.  마사회가 30% 가까이 고리로 가져 간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딸 수가 없다”며 자신의 베팅전략이 주요했음을 자랑했다.

정 씨는 “요즘 경마 해서 따 본 적이 없다”며 “다시는 오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마약처럼 끊기가 어렵다”고 후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후회는 잠시였다. 내일 다시 만나 오늘 잃은 것을 만회하겠다며 의지를 불살랐다. 김 씨는 기자와 헤어지면서 “내일 좋은 정보가 있다. 전화할 테니 기자 양반도 꼭 베팅해라. 어차피 인생은 한방”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도박 중독, 합법 시장 < 불법 시장, 규제 줄여 지하경제 활성화 막아야

도박중독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에 따르면 평생 동안 합법이든 불법이든 사행활동을 경험한 사람 전체의 80%를 넘어선다.

특히 최초 사행활동의 경험이 ‘친목목적의 게임(62.7%)’이었다는  조사 결과에서 도박 중독이 우리 생활에 인접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도박 중독 환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 지난해(2013년 8월~2014년 7월) 2만4373건을 돌파했다. 도박센터는 매일 10통 이상의 도박 중독을 상담하고 있다.
대부분 20~40대가 차지했고, 그중에서도 30대(41.2%)의 비중에 월등히 높았다.

도박 유형별로는 스포츠토토(41.0%), 카지노(15.5). 카드(13%), 경마(7.5%) 순으로 집계됐고, 오프라인(43%)보다는 온라인(57%)에서 중독 현상이 높게 나타났다.

상담은 본인이 직접(42%) 요청하는 경우보다 가족(58%)이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국가가 인정한 합법도박(32.5%) 시장보다는 불법도박(67.5%) 시장에서 도박에 중독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행산업 관계자는 “합법 도박 시장에서는 베팅액이나 이용시간 등을 제한하고 있지만, 불법 도박 시장은 24시간 운영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합법도박 시장을 규제하고 제재할 거이 아니라 합법 도박 시장을 확산시켜 불법 도박 시장을 끌어들여한다. 그래야 지하경제가 양성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합법 도박 시장보다 불법 도박 시장에서 도박 중독이 많이 발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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